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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Aug 27. 2020

서툰 감정 4.

냄새가 먼저였다.

일러두기.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 나름으로 불행하다.


냄새가 좋아요

향기가 아닌 ‘냄새’라는 단어는 부정어일까?


-선생님, 남편과 데이트할 때 냄새가 너무 좋았어요.


[향기가 나요.]라는 시적인 표현이 아니어도 나는 상상이 됐다. 그 남자의 냄새를 알 것 같았다.


-데이트할 때마다 씻고 나온 듯한 그 냄새에 취해 일부러 남편 몸에 붙어 킁킁대곤 했어요.


샴푸 냄새겠지? 아닌가? 비누 냄새인가? 그녀가 남편과 데이트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그 scene에 나는 조연처럼 앉아있었다.


 아, 냄새나요.

‘냄새’는 부정어일까?


-아침에 눈을 뜨면 남편에게서 냄새가 나요.


씻고 자도 밤 사이 벌어지는 화학적 작용이 남편의 온몸을 돌고 돌아 몸 구석에 냄새가 배고, 꽉 다문 입을 열어 “잘 잤어”라고 말하면 냄새가 나겠지.


-밥 먹는 것도 꼴 보기 싫고, 발가락 만진 손으로 물 컵을 건네주는 손은 더 싫어요.


심각하다. 시작하자. 그녀와 내면 여행을 그리고 그녀가 불행하다고 뱉어내는 이유를 들어주어야 한다.



초 여름 볕이 좋아 묵은 이불을 아파트 베란다에 널면서 울컥한다고 했다.

드럼 세탁기에 1시간 20분이면 끝난다고 쓰여 있는 빨래 종착지가 1시간 40분이 되어야 끝났을 때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했다.

남편이 밥을 먹을 때 내는 소리가 싫어서 따로 먹는다고 했고, 남편이 오는 시간에 일부러 화장을 지우고 아줌마처럼 옷을 입는다고 했으니...

그녀는 일반적인 진단으로는 [우울 감정]이 맞겠지.


그런데, 내가 웃겼다.

그녀의 삶이 나름 나름으로 행복해 보였으니 말이다.

상담을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가 종알거림으로도 행복해했을 때 남편과 함께 왔다.


아, 좋은 냄새가 나요!

미쳤다. 하도 냄새 이야기를 들어서 인가? 실수했다. 남의 편, 그녀의 남편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


부부가 손을 잡고 나가고 상담 횟수가 늘어날수록 상담실 복도, 그 좁은 복도를 굳이 남편에게 안기고 나갈 때 생각했다.

‘내 처방이 탁월했어’

고만 고만하고 나름 나름 한 역사를 안고 오는 상담은 내게 너무 쉽다.

사랑을 주고받는 방법을 알려주면 된다.

이제 겨우 30대 후반인 그들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사랑을 받는 방법이 그렇게 보수적이니, 숨겨 놓은 서툰 감정이 서툰 표현으로 나올 때마다 그들은 싸웠던 것이다.


-뭐가 문젠데?

-아 저리 가 냄새나!


그들에게 내린 처방은 말이다.

[호텔 데이],

그녀는 냄새에 민감하다. 모텔이 아니라 호텔이어야 하고, 입구부터 전해지는 냄새가 달라야 한다고 했다.

연애할 때 갔던 그 호텔을 굳이 찾아가라고 처방을 한 건 그녀가 기억하는 그 냄새를 찾아주고 싶었던 것이다.

집 밖에 몰랐던 그 부부는 매주 수요일, 그 호텔로 간다.

남편은 회사에서, 아내는 집에서 출발하지만, 남편은 불륜을 저지르는 것 같은 은밀함이 있다고 했고, 아내는 냄새를 찾으러 간다고 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사랑을 확인하고 서툴렀던 표현을 확인한다.

이런 부부상담은 내게 너무 쉽다. 가끔 부러울 뿐이다.


아, 오늘은 나도 모텔이 아니라 호텔을 가야겠다. 내가 좋아하는 큰 욕조에서 러블리 블리 부 거품 입욕제 풀어놓고 쉬다 와야겠다.


사실, 행복한 가정은 다 고만고만하고 불행한 가정은 다 나름 나름 하다.


사실, 나도 나름 나름의 이유로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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