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bina Aug 28. 2020

세상을 향해 외치다. 2.

언제까지 기다려요? 기다리지 말고 믿어주세요.

오늘의 일러두기는 가슴이 조금... 아프다.

억양의 고조가 없고, 감정이 전이되지 않으며, 그런데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너무 정확해서 소름 끼치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가 구석에서 책을 읽고 집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할 때 나는 심리학을 배워서라도 그 아이를 이해하고 싶었고, 그 아이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

그 아이가 [네가 무엇을 하든 누가 뭐라 하든 나는 네가 옳다] 주인공 하율이었는데...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고 상담실을 열 때, 나는 몰랐다.

그 건조한 에니어그램 5번 유형을 가장 많이 상담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들의 세상은 적막하고 고요했으나 자신이 만든 판타지 안에서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을 거부한 채 혼자 웃고 혼자 울었다.

사람들은 상처가 많아서 숨어 지내는 그들의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고 그들의 무관심과 무응답에 지쳐갔다.


말이 없어요. 속을 알 수가 없어요

에니어그램 5번 유형을 설명할 때, 나는 건조하다고 말했다.

무대의 중심에 들어가지 않고, 미러링을 통해 배운 세상을 감정 없이 말하기 때문에 어느 날은 그들에게 상처를 받고, 어느 날은 서운함을 토로해도 반응이 없는 그들과 대화를 거부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날은 미러링 한 사람들을 평가하는 것이 소름 끼치게 정확해서 그 비판의 대상이 내가 아니어야 했다.


그 말이 없는 사람들이 그래서 속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왔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상담을 받으러 오지 않는다. 부모의 손에 이끌려 오는 반항하는 아들의 모습으로 오기도 하고, 갑자기 일을 그만두고 방에서 칩거하는 나이가 꽉 찬 미혼의 아들을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는 노모가 데리고 왔다. 그리고 소파와 한 몸이 돼서 텔레비전만 보는 말 없는 남편에게 상담을 받지 않으면 이혼을 하겠다고 협박을 하는 아내와 함께 왔다.

그리고 상담이 끝나고 그들은 각자의 세상에서 외치고 있었다. 그들의 외침은 여전히 건조했고 눈에 띄게 변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안다. 그게 그들의 속도라는 것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타인들보다 나만의 고독을 좋아했습니다. 가끔 책을 읽거나 판타지 게임을 하면서 즐겁게 지냈습니다. 형제들이나 다른 아이들과 노는 것보다 어떤 사물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알아내는 것이 내게는 더 중요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총명한 아이라고 했고, 몇 안 되는 친구들은 모두 나와 지적인 관심을 공유할 뿐, 저는 ‘외톨이’였습니다.

에니어그램 5번은 철저하게 만들어진다. 다른 유형도 부모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부모의 싸움과 폭력 앞에서 움츠린 공간에서 숨어 있어야 했고,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형제자매의 일탈을 보고 괴로워하는 부모를 지켜보면서 그들은 결심한다. 힘이나 애교로는 어떠한 것도 얻을 수 없다고.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력감이 구석진 공간과 애착 사물로 환치가 되어 혼자 노는 아이로 성장하게 된다. 혼자 살아가는 방법으로 지식이나 지적인 관심에서 만족감을 얻고 타인의 인정이나 보살핌보다는 내적 자원을 개발하는 것에 공을 들이게 된다. 그래서 그 남자는 영리했다.


-왜 일을 그만두었나요?

-사기를 당했어요. 동업하자는 제안에 그에게 돈을 맡겼는데... 말도 안 돼요. 제가 사기를 당하다니...

책을 많이 읽었고, 다른 사람을 미러링 하며 정확하게 평가할 줄 아는 5번 유형의 그 남자는 사기를 당하고 세상을 잃었다고 했다. 폐인처럼 살았다는 자기 비하 표현 대신에 [자발적 은둔]이라는 말로 포장을 하며 힘들어진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힘든 과거를 회상하는 동안에도 울지 않았다. 말하는 속도와 억양의 고조가 일정했기 때문에 내가 이끌어내는 드라마틱한 치유법은 먹히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전이되는 것이 그에게는 약한 모습이고 자신에게만 집중해야 삶을 유지한다는 왜곡된 시나리오 안에 살고 있었다.

그의 판타지를 깨고 그의 시나리오를 수정하는 방법은 없다. 절대로 코칭을 하거나, 명령을 해서 바꿀 수 없는 유형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5번 유형은 변화가 되지 않을까?


5회의 상담으로 내가 한 것은 그를 지지하고 칭찬하는 것 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상담에 요구했다.

그가 좋아하는 책을 읽으면서 [친구]가 되어주겠냐고.

그렇게 책을 읽고 토론하는 시간에 나는 노력했다. 동공이 풀린 그의 판타지 세계 안에 들어가서 그를 이해하고 더 이상 ‘외톨이’로 살아가지 않기를 기도했다.

알고 있는 지식이 많고 고집이 세도 그는 자신의 생각을 종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의견대로 따르지도 않았다. 그 간격이 벌어지는 날 나의 언어가 달라지고 미간이 찡그러지는 것을 그는 목격했다.

-제가 이제, 스스로 자립해보겠습니다

거리두기를 제안하는 목소리에서 떨림이 있는 배려가 느껴지고, 나 또한 그의 자립을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우리는 쿨하게 헤어졌다. 그리고 한 달도 안 돼서 그와 조우했다.


단양 패러글라이딩은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 선택에 따라 항공에서 비행을 할 수도 있고 동영상 촬영을 할 수도 있다.

몸이 녹아들어 간다고 했던 그는 새로운 일을 시작했고, 새로운 취미생활을 시작했다.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적당하게 살이 빠지고 탄력이 붙은 변화된 몸을 자랑하며 이제는 거의 매일 운동을 하고 있다고 수줍게 웃었다.

선생님... 제가 패러글라이딩을 했습니다.
하늘과 구름이 너무 가까운데,  경이로운  장면 앞에서 소리도 지르지 못했습니다.
흘러내린 눈물을 닦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마음속으로 말했습니다.
 버텼다.
다시 시작해 보자.
  있지...?

그와 만나는 매주 수요일, 나는 복싱으로 만들어지는 그의 달라진 몸에 놀랐고, 건조한 목소리에 촉촉함이 들어가고, 가끔은 버터 가득한 농담이 나올 때 놀랐다.

그리고 그가 건네 준 필사 노트를 보고 놀랐다.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외치고 있었다. 세상을 향해 나갈 준비를 하면서 말이다.

I’ll change someday,
If only I had someone who believed in me



작가의 이전글 서툰 감정 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