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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Aug 29. 2020

세상을 향해 외치다 3.

한 마리의 개는,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일명 쭉쭉이라고 한다.

내가 길러 봤던 나의 반려견은 기분이 좋을 때나, 잠에서 깰 때나,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할 때 의식처럼 앞다리를 쭈욱 빼고 허리를 아주 길게 펴서 몸을 이완한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모양이다.


가슴 중심 유형 중, 4 유형은 비통에 지나치게 매달리고 2 유형은 자신의 슬픔 때문에 갈등하고 있는 반면, 3 유형은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습관적으로 감정을 마비시켜 비통을 충분히 느끼지 못한다. 자신의 진정한 존재를 부정하고 특별한 이미지를 만들어서 좋은 인상을 주려고 애쓴다.

그녀는 늘 반려견 [베르]를 데리고 왔다.

-선생님, 얘 착해요. 방해하지 않을 거예요.

방해하지 않는다는 베르는 얌전했고, 짖지 않았고, 배변 실수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베르는 불안했다. 상담을 하는 내내 그녀 곁을 떠나지 않았고, 앉지도 않고 서있지도 않은 불안한 자세로 상담을 하는 동안 나의 시선을 뺏어갔다.

-베르가 불안해 보여요.

-네, 나를 닮아서 그래요, 저도 평상시에 진득하게 앉아 있지 못해요. 다른 사람이 있으면 더 신경이 쓰이죠.

말을 하면서 그녀는 습관적으로 짧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행동을 지켜보면 패턴이 보이고 그 패턴을 분석하면 행동의 이유를 알 수 있다. 에니어그램 3번 유형은 세련된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려 한다. 그녀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면서 눈동자는 내가 아닌 상담실 문 쪽을 바라보았다.

-어렸을 때 안 배워본 게 없어요. 그런데 칭찬을 하지 않는 거예요. 저는 최선을 다했는데 항상 부족하다고 했어요.


어렸을 때 주목받지 못했거나 성과를 내야 인정을 받는다는 인식을 하게 됨으로써  3 유형의 전략은 성과에 초점을 두고 고통스러운 감정을 방어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들은 ‘행함’보다 ‘감정’을 우선시한다. 그런데 그 감정이 ‘행함’의 장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할 때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에만 집중을 한다.  그래서 자신의 이미지와 일을 동일시함으로써 무조건적인 사랑을 제공하지 않는 세상에 대처한다.


-이 공간은  저와 단 둘이 대화를 하는  은밀한 공간입니다. 아무도 엿듣지 않아요. 아무도 우리를 보고 있지 않습니다.

그녀의 눈동자를 바로 보고 싶었고, 넘어가지 않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지 않아도 예쁘다고 말하고 싶었다.

-선생님, 아니에요. 사람들은 나를 지켜보고 있어요. 저는 항상 바른 자세로 앉아 있어야 했고, 예쁜 미소로 말해야 했어요.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편안하지 않은 자세로 우리 대화에 집중하지 못했던 그녀와 내면 여행을 시작했다.



3 유형은 자신의 이익을 얻고,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자신을 어떻게 나타낼지도 알며, 목표 설정을 잘하고, 그것을 달성하며, 시간 낭비 없이 효율적으로 삶을 리드할 줄 안다.

모든 유형은 건강하게 살아가는 수직적 발달 수준이 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노출하고 자신의 뿌리를 인정하자 자유롭다고 했다. 그녀의 마음이 건강해지고 있었다.

습관적으로 눈동자를 굴리며 다른 사람들을 힐끔거렸던 행동이 사라질 때, 나는 유심히 보았다. 그녀가 습관적으로 했던 머리카락 넘기기를 하는지 지켜보았다.

제법 머리가 길어져 자연스럽게 머리를 휘날리는 행동으로 바뀐 그녀가 여전히 머리카락을 한쪽 귀 뒤로 넘길 때 나는 다른 면을 보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나를 향하고 있었고, 내가 하는 대화에 집중을 하고, 내가 원하는 질문의 답을 하면서 머리카락을 넘기고 있던 것이다.

[예쁜 척]이 아니라 진짜로 예뻐 보이는 순간이었다.


아, 잊고 있었다. [베르]!


타인을 바라보는 [투명성 착각]에서 벗어나고, 마주 보고 있는 사람에게 집중을 할 때였나 보다.

[베르]는 그녀 옆에서 코를 골고 자고 있었다.

사람들의 움직임에 민감하고, 소음에 민감했던 베르가 바뀌었다. 엄마가 불러야 깬다.

-베르야 가자!

그때야 비로소 앞다리를 쭈욱 펴고 허리를 길게 빼면서 아주 크게 하품을 한다. 그 모습을 보고 그녀는 말한다.

잘 자쪄요! 그렇지.
아이고 예뻐라
우쭈쭈
오구 오구


예쁜 아기를 보듯 온갖 추임새로 베르를 예뻐하는 그 와중에도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긴다.

어느새 나는 엄마 미소로 그들을 지켜본다.

8개월 전, 불안한 눈동자를 보이며 울고 있던 그녀 옆에 불안함으로  서성거리던 [베르]는 이제 없다.


그녀는 매일 인증샷 처럼 사진을 보낸다. 어느 날은 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어느 날은 개와 산책을 하는 모습을, 어느 날은 인문학 수업에서 읽은 책에 밑줄을 잔뜩 쳐서 보낸다. 마치 선생님이 시킨 숙제를 잘하고 있다는 전교 1등의 학생처럼 매일의 성과를 보고하는 것이다.

친구가 된 그녀에게 말했다.

아구 잘했어요!
우쭈쭈


그녀는 이제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강아지처럼 기지개를 켜고 있다.

빠르게 말하지 않고, 힘든 과거를 읊조리지도 않는다. 지금, 여기를 누리고 초록의 식물을 바라본다고 했다. 그래야 자신의 세포가 행복을 오롯이 느낀다고 했다.


그녀는 이제 세상을 느리게 호흡하고 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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