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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Sep 17. 2020

M에게 보내는 편지.

에니어그램 8번, 그녀는 낭만적일 뿐.

M, 그대는 낭만이라는 말을 알고 있겠지요.

참, 많이 쓰이는 말인데 그 말을 쓰는 사람들에게 묻는다면 '낭만'의 정의는 다 다를 거예요.


처음, 그대가 수줍게 마스크를 벗으며 얼굴이 발그레해질 때

직업적으로 저는 보았답니다.

예쁜 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가지런하게 정리하고 온 착한 여자,

복잡한 마음을 털어놓고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막연함에 답답하다고 울어버린 그날,

당신이 가지고 있는 마음이 참, 낭만적이라는 것을.


M,

괴테는 이렇게 말했어요.

낭만은 병이자, 한 무리의 미친 시인과 가톨릭 반동주의자들의 나약함, 병약함, 요란한 함성이라고.

우리가 낭만이라는 말의 복합성을 잘 몰라요.

우리는 낭만이라는 말이 천의 얼굴을 가진 것을 잘 몰라요.


M,

장형으로 태어난, 8번 유형은 머리형 7번과 장형 9번의 성격을 표출하고 살기 때문에

하루에도 수십 번 마음이 변하는 그래서 어쩌면 자주 얼굴이 화끈거리는 그 홍조의 의미를 몰라요.


8번은 그래요.

강한 지도자 유형이지만, 가끔은 시인이 되는 7번 유형이 되어, 밝은 미소로 사람을 편하게 해 주고

갈등이 싫어서 중재하는 9번의 날개를 성격으로 표출하고 살아요.

그래서, 그대는 나약함과 병약함을 감추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아요.

하지만 그건 마음에서 요란한 함성이 되어서 그대를 괴롭혔을 거예요.


M,

그림을 그리면서 내면 여행을 시작한 날, 그대는 고객을 응대하는 과거의 직장생활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울면서 이야기했어요.

그러다... 자연스럽게 그대의 아버지 이야기가 나왔지요.


버스를 두 번이나 환승하고 아주 많이 걸어 들어가는 시골길, 그 길을 걸으면서 혼자 살고 있는 아버지가 불쌍했지만..-왜 나만 아버지를 돌봐야 해요? -왜 아버지는 그렇게 나약했을까요?


M, 저는요.

그대의 눈물이 나의 가슴을 파고 들어올 때, 결심했어요.

'8번 유형답게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싶다.'



M,

사실, 시골길은  낭만적이에요.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시골길을 걷노라면 숨통이 트이고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계절이라면

푸릇푸릇 나무가 막 노랗게 염색을 하는

그러다 더 깊어진 가을이라면

온 천지가 색의 향연이 되겠죠.


그런데 M은 말했지요.

아버지를 보러 가는 길이 행복하지 않았어요.
공장이 있었고, 낡은 폐가가 있었어요

맞아요. 아픈 아버지, 혼자 사는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그 어린 M은 행복하지 않았을 거예요.

풀이 보이고 나무가 보이는 아름다운 시골길이 아니라, 낡은 폐가만 보이는 무서운 길이었을 거예요.

M,

오늘은 그대를 위해 그림을 그렸어요.

어쩌면, M의 기억 속 아버지는 그림에 있는 낡은 폐가 일 수도 있어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림자로 남은 폐가 말이죠... 그런데요, M.


그대를 위한 기도가 그림이 되는 날,

꼭 말해주고 싶었어요.

누구에게나 아픈 그림자가 있어요.

그 그림자를 묻어두면 안 돼요. 꺼내서 봐야 돼요. 직면해야 해요.

M,

사실 폐가 옆에도 그리고 폐가를 받쳐주고 있는 땅에서도, 새로운 생명이 파릇파릇 싹트고 있었을 거예요.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느끼고 싶은 것만 느끼고 있는 그 순간에도

자연은 우리를 위해 미소 짓고 있을 거예요.

    


M, 니체는 말했어요.

낭만은 병이 아니라 치료, 즉 병에 대한 처방이라고.

그대가 쏟아내는 글을 읽으면 저는 느껴요.

그대는 참 낭만적이구나...

M, 고마워요.

솔직한 이야기를 말해줘서.

이제 시작이에요.

마음의 이야기를 마음껏 풀어내세요. 눈치 보지 말고 마음껏요.

그래야 진짜 8번 유형으로 살 수 있어요.

M,

그대는 참, 멋진 지도자 유형의 8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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