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언어 유희

거친 비단이 열국의 어머니가 되다.책, RE:BORN

거친 비단[사라]는 열국의 어머니[사라]였습니다.

by Sabina
불빛 없는 성북동 길 위에는 밝은 달빛이 깁을 깐 듯하였다.-이태준[달밤]

이태준은 형용사 하나하나의 정확성을 따지고 한번 완성된 문장이라도 몇 번이고 고쳐 바로잡는 섬세한 문장 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게 이루어진 묘사는 생생한 묘사와 함께 독특한 분위기로 드러난다. [달밤]에 등장하는 황수건에 대한 애상적인 묘사와 비감 어린 분위기가 '밝은 달빛 깁을 깐 듯하였다.'와 어우러질 때, 나는 찾았다. 이태준이 몇 번이고 찾아보고 고쳤을 단어 [깁]


깁- 명주실로 바탕을 조금 거칠게 짠 비단. ≒사라 2(紗羅). 예문-엷은 깁 남치마 자락이 적장의 손바닥 안에 사각사각 닿아진다. 출처 <<박종화, 임진왜란>>

'버림받은 아이' '쓸모없는 쓰레기'라고 잘못 정의했던 정체성을 '온 세상의 복덩이'로 새롭게 적용하기 위해 개명을 했다는 작가가 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표현하는 '감사'가 흐르는 책, 그녀의 스토리는 리:본 [Re:Born]이라는 제목으로 탄생했다.

작가의 본명 홍 선주에서 홍[사라]가 되는 개명의 이유에,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고 사래가 사라가 되는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이 큰 민족을 이루고 이름을 창대하게 해 주겠다고, 복덩이가 될 것이라고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면서 살던 집을 떠나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은 단호하고 용감하게 고향을 떠나 나그네로 살았다. 큰 민족을 이룬다고 했는데 아브라함은 99세가 될 때까지 아내 사라를 통해 아이를 낳지 못했다.(...) 자식이 없는 노부부에게 하나님은 '열국의 아버지' 아브라함, '열국의 어머니' 사라로 이름을 개명하게 하셨다. 현실은 자식이 없지만 마음속으로 믿고 바라보라고 하신 것이다.-홍사라 [리본] 중에서

사래의 이름이 사라로 바뀌는 창세기를 읽으면서 작가는 전율했나 보다.

지금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중요하다고 보는 [관찰자 효과]를 언급하면서 여전히 어려워 보이는 순간마다 믿고 나아가면 열국의 어머니가 되고 '복덩이'로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었나 보다.

바닥을 치던 자존감이 살아나고 자신을 드러내는 모든 공간에 Hongsara라고 쓰고 의미를 부여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기독교는 사라를 단순한 역할 모델만이 아니라 신이 선택한 민족의 어머니로 간주하고 있다. 현재도 사라(sarah)라는 이름은 종교권과 문화권에서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데, 그 이름을 [리본]에서 만났을 때,

불빛 없는 성북동 길 위에는 밝은 달빛이 깁을 깐 듯하였다

이태준 작가의 [달밤]이 떠올랐다.

불빛이 없어 깜깜한 골목길에 밝은 달빛이 마치 비단[깁, 사라]처럼 펼쳐져 있어 어두운 곳을 환하게 비춰주는 그 풍경은 자존감이 바닥이었던 주인공 황수건도 위로받았지만 가보지 않았던 성북동 골목길에 내가 서있고 환한 달빛이 나만 비추고 거친 비단이었던 사라[깁] 길 위에서 미끄러지듯 살아가고 싶은 자존감 바닥이었던 나에게도 큰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울림이 큰 단어 [사라]가 [Re:Born]을 쓴 작가이고, 지금 나는 홍 사라 작가의 책에서 또다시 위로를 받고 있다.




전환점이란 무얼까?

작가가 말하는 다섯 가지의 전환점마다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있었다.

거절당한 느낌을 가지고 살았던 유년기의 결핍이 서서히 치유되어갈 즈음, 갑상샘 암과 유산의 경험은 의존하지 않고 자생하고 성장하는 잡초 같은 그녀의 삶을 눈물로 얼룩지게 했는데, 그녀는 그것을 위기로 보지 않았다.

매 순간 도약하려고 발돋움하고 있었고, 세상을 비판과 불평에서 긍정과 확신이 넘치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녀에게 전환점은 가던 길에서 몸을 돌리는 수고가 아니라, 비단이 깔려 있는 길을 알아보는 시선만 필요했던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혜안이라고 한다.

홍 사라 작가는 사시사철 푸르른 소나무만 보지 않았다.

유일하게 소나무와 잘 어울려 자라는 나무가 있다. 바로 맥문동이다. 햇빛을 좋아하는 소나무와 달리 맥문동은 음지 그늘을 좋아한다. 이파리가 난을 닮아 가늘어 떨어지는 솔잎도 잘 피할 수 있다. 소나무처럼 사계절 내내 푸르름을 지닌다. 소나무 아래 척박한 땅에서도 여름이면 꽃을 피워낸다.(...)

맥문동을 관찰하고 음지를 이해하는 그녀의 시선이 혜안이 될 수 있는 비결은 다음 문장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소나무의 양지 취향과 맥문동의 음지 취향 하늘 높이 자라는 소나무의 고고함과 어우러지는 낮은 키의 맥문동, 맥문동은 소나무를 사랑하는 연인이었다.

조화로운 자연의 이치를 설명하면서 그녀만이 볼 수 있는 시선을 책 곳곳에 펼쳐주었다.



나는 읽을 수 있었다. 맥문동이 그녀이고, 내가 그녀를 닮은 맥문동인 것을.

동화하듯 읽어 내려간 책에서 척박한 과거쯤, 전환점이었다고 고백하고 독수리 날개 치듯 도약하는 쪽을 택하는 것이 혜안이고 지혜인 것을 발견했다.

책을 다 읽고 발견한 책의 뒷날개에서 그녀가 고백한 [수줍은 고백]은 내가 읽어낸 작가의 시선이, 시련을 대하는 작가의 소신이 결국 맞았다는 것을 입증했다.

[홍 사라 작가의 수줍은 고백]
그대가 양지를 좋아하니
나는 음지를 좋아합니다.
그대가 하늘 높은 곳까지 높이 자라니
나는 낮은 곳에서 늘 머물러 있겠습니다.
그대의 사철 푸름과 고고함과 강인함을
나는 무한 사랑하고 닮아가고 싶습니다.
그대 곁에 아무도 없어도 외롭지 않게
늘 그대의 벗으로 머물러 있겠습니다.



작가는 다시 태어났다.

사래가 사라가 되는 아브라함의 아내가 열국의 어머니가 되었듯, 작가는 이제 독자를 품어주는 열국의 작가가 될 것이다. 그녀는 [사라]이다.

매일 수십 번 마음 아파하고 다시 수백 번 다짐하는 나도 다시 태어났다.


거친 비단, 사라가 열국의 어머니 [사라]와 동음이의어로 불려도 우리는 모르고 살아간다.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는 오늘도 나만 아프고 나만 힘든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책을 읽는다.

나를 깨워 줄 좋은 책을 읽는다.


그래서

우리는 늘 Re:Born이다.



유희에게 언어가 말합니다.
거친 비단, 사라는 밟히고 밟혀 열국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당신도 누구나 좋아하는 사라가 될 수 있습니다. 그만 밟혀도 됩니다.
잘 참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비나가 작가에게 보내는 수줍은 고백.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안개가 걷히는 시간, 비로소 보이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