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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Mar 11. 2023

1_내가 경주를 걷기 시작한 건

2년만의 시작

내가 경주를 걷기 시작한 건



첫 문장을 매듭짓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21년 4월에 내가 쓰려고 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20년을 살면서 한 번도 와보지 않았던 이 경주라는 도시를 처음 마주했을때의 기억은 흐린 하늘, 우중충했던 날씨다.

밝고 희망찬, 새내기로서의 설렘이나 그런것들보다 여기에서 4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게 될까. 잘 보낼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로 날씨만큼이나 심란했던것 같다.


그렇게 경주와 인연을 맺은지도 벌써 10년 하고도 세 번.

정작 학교를 다닐때보다 졸업하고 난 뒤 진짜 경주의 모습들을 보게 되었고 점점 이 도시가 가진 다양한 얼굴들을 보는게 흥미로웠다.

다른 지역에서는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소개하는 석탑들이

경주에는 지나가다보면 덩그러니 하나씩 발 닿는곳 마다 사적, 보물, 국보급 문화재가 널려있다.


그렇게 경주를 걷기 시작한 지 어느덧 4년이 지나간 지금

60여개의 도보여행 구간을 혼자서 만들어보고

제주 올레길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경주를 걷는 즐거움을 선물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마땅한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사업계획서를 쓰다가도 이 길이 가치가 있다는, 수요가 있다는걸 증명할 데이터가 없었다.

내가 걸어온 시간들이 하나의 증거이기도 했지만 객관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데이터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길은 만들었는데 이를 세상에 보여줄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혼자서도 할 수 없는 크기의 일이었다.


그렇게 깊은 침체기를 보내던 어느날 문득 내가 언젠가 하고 싶어했던 일이 떠올랐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1년 전, 혼자서 배낭 하나 매고 경주를 찾는 또래의 사람들을 종종 보고서는

그래, 그들과 함께 길을 걸어보는 동행 가이드를 해보자, 생각했다. 비슷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름도 모르고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지만 그냥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그래서 경주의 숨겨진 명소를 알려주는 일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생각에서만 그쳤을 뿐 현실로 만들지는 못했다. 돈을 벌어야 했기에.

그렇게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그러면 스냅사진 찍는 일을 해보자, 단순히 사진 찍기 좋은 곳들을 골라 다니며 찍어주는 스냅사진이 아니라 내가 만든 도보여행길을 소개하면서 사진을 찍어주는 일을 해보자.

생각이 거기에 미치니 어두웠던 터널 속 한 줄기 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내가 만들어 온, 쌓아온 자료들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였고 스냅사진 촬영을 통해 다른 일을 찾아 돈을 벌지 않아도 됐으며

관광객의 입장에서 도보여행 코스에 대한 피드백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데이터가 하나씩 쌓여가고 점점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면 내가 하고자 했던 것, 60여개의 도보여행길을 체계화 해서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도 가능하다 생각했다. 스냅사진 일은 자신있었다. 10여년 간 취미로 해 온 사진생활이지만 그 중에서는 행사 촬영이나 스냅 사진 촬영 경험도 있었고 무엇보다 도보여행길을 만들기 위해 다니면서 항상 카메라로 기록을 해 왔기에 어디에 어떤 컨셉으로 촬영이 가능한 지, 어떤 장면으로 촬영을 할 수 있을지 쌓여있는 데이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 혼자만 알고 있는 정보는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런 대가 없이 누구에게 무료로 나누어 줄 수 있는 자료는 아니었다.

나의 소중한 시간이 담겨 있는 것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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