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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Dec 05. 2023

10_왜 사진을 찍을까?

당신에게 사진의 의미는.

오늘은 경주를 걸으면서 사진으로 추억을 선물하는 일을 하고 있는 이야기를 기록하고자 한다.


근 1년 가까이 스냅촬영을 해 오고 있다. 

그동안 걷다, 경주를 왜, 어떤 이유에서 하게 되었는지 이야기 한 적은 있었지만 

사진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적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관광도시 경주를 주목했다. 사진. 디지털카메라와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특별한 날에만 찍던 사진이, 이제는 누구나 찍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경주는 연중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도시인 만큼 여행객을 대상으로 사진을 촬영하고자 하는 수요는 일정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단순히 사진을 찍어드립니다에 그쳐서는 안됐다. 동시에 상품성을 고민해야 했다.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비용을 지불하고 사진을 찍을 이유가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돈을 내고 찍을 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 단순히 폰으로 찍은 것보다 화질이 좋다 그 이상이 있어야 했다. 기념하기 위한 목적 그 이상이 있어야 했다. 


직접 다니면서 알게 된, 잘 알려지지 않은 경주의 아름다운 풍경과 경주의 정체성을 생각했다. 경주가 관광도시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도시가 가진 산물, 역사 문화재 때문이다. 4년 동안 걷기여행길을 만들기 위해 경주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잘 알려지지 않은 풍경이 아름다운 곳에 대한 정보를 많이 쌓아놨다. 계절별로 언제 어떤 모습인지 사진으로 모두 기록을 해 두었기에 언제쯤 어떤 사진을 찍기 좋은 지도 알고 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과 쉼을 위해 경주를 찾는 경우가 많은 만큼 제철 꽃이 피고 새소리가 들리는, 자연 속에서 쉼을 누릴 수 있는 장소를 소개하면 좋을 것 같았다. 



미추왕릉 앞의 돌담&벚나무(좌)와 낙선당 고택(우)은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사라지지 않을 거다. 경주의 자연과 문화재가 만드는 풍경은 경주만이 가진 특별함이다.


문화재에는 이야기가 있고 시간이 담겨 있다. 문화재는 자연재해나 전쟁과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이상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죽고 난 뒤에도 여전히 그 자리 그곳에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반면 내가 어릴 적 살았던 곳이나 다녔던 학교, 뛰어놀았던 놀이터가 사라지는, 추억이 담긴 장소가 사라지는 경험이 한 번씩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화재는 그렇지 않다. 즉 나의 추억을 쌓아나갈 수 있는 곳이다. 같은 장소지만 언제, 누구와, 어떤 상황일 때 왔느냐에 따라 쌓이는 추억은 달라진다. 사람들이 경주를 한 번만 찾는 것이 아니라 계속 찾는 도시로 기억되게끔 하고 싶었다. 촬영이 끝나고도 항상 말씀드린다. 봄에 촬영을 진행할 땐 가을에 단풍이 참 아름다우니 보내드린 일정표를 잘 보관해두셨다가 다음에 여행 오시면 꼭 가보시라고. 1년 전 봄에 찾았던 월성과 가을에 다시 찾은 월성, 그리고 5년 전 수학여행 때 찾았던 월성. 같은 장소에 나의 추억이 쌓여 있다는 건, 추억이 쌓인 장소가 있다는 건 살아가는 데 큰 위로가 된다. 좋은 추억이 쌓여 있는 장소는 삶이 힘들 때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이 되곤 하니까. 


 sns의 활성화로 사진 그 자체가 목적이 되기도 하지만 사진의 본질은 기록에 있다. 나의 시간을, 나의 이야기를 담는 보관함이다. 기록은 모두 같을 수 없다. 기록하는 사람마다 다 달라야 한다. 나 혼자 찍는 사진이야 어찌 되었든 상관이 없겠지만 남에게 돈을 받고 찍는 사진이라면 오래도록 보고 싶은 사진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사진, 복제된 것 같지 않은 사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이야기가 담긴 사진을 전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시작한 사진이 걷다, 경주였다. 소중한 사람과의 특별한 추억을 선물해 드립니다.라는 모토로 시즌 별 추천 장소를 묶은 코스를 걸으면서 사진촬영을 진행하고 촬영 중에 소소한 이벤트도 함께 마련했다. 사진을 위한 사진이 아닌, 경주라는 도시의 매력을 전하고, 경주에서의 추억을 만들어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과물로 사진을 제공하지만 사실 걷다, 경주를 찾아주시는 분들이 비용을 지불하고 가져가시는 가장 큰 결과물은 다름 아닌 추억이다. 전국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추억을 구매하는 상품이지 않을까. 


월성에서 많은 촬영을 진행했지만 이 느낌의 사진은 1장뿐이다. 왜? 이런 장면을 보여준 분들은 이 커플이 유일했다. 연출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순간을 사진에 담는다.

걷다, 경주를 스냅촬영이 아닌 투어 프로그램으로 소개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경주라는 도시가 가진 매력을 다양한 방법으로 전하기 때문이다. 장소마다 담긴 이야기를 소개하고 여기서 어떤 추억을 담을지 대화 주제도 제안 드리면서 같은 장소지만 다른 이야기를 쌓아나간다. 월성에서 많은 커플들과 촬영을 진행했지만 그곳에서 쌓아나간 커플들의 이야기는 전부 다르다. 어떤 커플은 결혼 후의 삶을 이야기했고 또 어떤 커플은 이제 막 시작한 우리의 이야기를, 또 다른 커플은 결혼 1주년의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이야기로 쌓아나가기에 같은 장소지만 다 다른 사진이 나온다. 


생소한 방식이었지만 사진에 대한 확신은 있었다.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모습을 많이 촬영하는 사진이기에, 그래서 셀프로 촬영하거나 삼각대로 촬영을 해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사진이기에 결과물에 대해서는 확신이 있었다. 결과물에 대한 불만족 시 50% 환불을 진행한다는 원칙을 세운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촬영해서 단 한 번도 환불 신청이 들어온 적은 없었다. 좋은 시간과 사진을 남겨주셔서 감사하다며 선물을 주시는 분도 있었고 첫 촬영 때의 좋은 기억으로 다시 찾아주신 분도 있었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사진의 본질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촬영 예약은 다른 촬영 희망자들의 기회를 가져가는 것이기도 하기에 단순 변심이나 개인 사정으로 취소 시에는 촬영 예정일 7일 전까지는 전액 환불이 진행되지만 이후는 위약금을 받고 있다. 하지만 촬영 당일 비가 온다거나 날씨가 추워서 촬영이 어려울 경우 위약금 없이 전액 환불을 진행하고 있다. 항상 먼저 의사를 물어본다. 이런 상황인데 촬영이 다소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촬영을 희망한다면 그에 맞는 사진촬영을 진행해 드리겠다. 실제로 촬영을 취소한 분도 있었고 반대로 개의치 않고 진행한 분도 있었다. 어떤 선택이든 각자의 판단에 의한 것이기에 무엇이 더 낫다고 할 수는 없지만. 모두가 맑고 쾌청한 좋은 날씨에서 촬영하는 모습을 상상했을 것이고 또 그런 배경을 바탕으로 사진을 찍고 싶었겠지만, 날씨란 게 우리 인생과도 같아서 항상 좋을 수만은 없다. 하지만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였을까, 궂은 날씨에도 촬영을 진행한 분들의 사진을 보면 더욱 특별하다. 그 시간에 집중하고 즐기는 모습이 사진 속에 더 잘 드러난달까. 그리고 힘든 추억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오히려 그렇게 찍은 사진이 더욱 오래도록, 더욱 특별하게 그분들에겐 기억될 것이다. 


흐린 날씨였지만 즐거운 대화로 촬영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예쁜 부부. 중요한 건 날씨가 아닌 그 시간을 함께 보내는 우리.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평생 함께할 동반자라면.


찍기 싫은 사진을 억지로 찍고 싶은 마음은 없다. 물론 취소로 인한 손해는 아프지만... 내가 이익을 얻기 위해 (그분들의 불행까지는 아니지만) 좋지 않은 추억을 전하고 싶지는 않았다. 비는 내리고, 취소는 할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찍은 사진이 보고 싶은 사진이 될까. 


1인 촬영 나의, 경주는 신청자가 찍고 싶은 사진을 기획하는 스냅촬영이다.


이번에 새롭게 시작한 1인 촬영 나의, 경주도 마찬가지로 사진의 본질에 집중하고자 했다. 내가 기록하고 싶은 나의 기록. 영화 속 주인공처럼, 멋진 포스터 속 주인공처럼 나의 모습을 기록하기.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것조차도 쉽지 않은 시대다. 유지해야 하는 것보다 포기해야 하는 것이 더 많게 느껴지는, 그래서 상실감이 크게 느껴지는 시대다. 하지만 삶의 주인공은, 시대의 중심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에게 있다는 것을 사진을 통해, 사진을 찍는 경험을 통해 전하고 싶었다. 사진을 디지털 파일로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고 대형 인화지에 사진을 출력한 결과물도 제공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살면서 내가 내 사진을 크게 출력해서 내 공간에 걸어두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 경험을 해 본 사람은 안다. 사진 한 장으로 방의 분위기는 물론 삶을 살아갈 용기와 꿈 꿀 희망을 놓지 않게 해 준다는 것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나 스스로 나를 위로하는 경험이 된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 우리 모두는 소중한 존재니까. 


나의, 경주는 사진에 이야기를 담는 데 신청자의 자율성을 좀 더 높였다. 걷다, 경주가 내가 기획한 투어 프로그램에 신청자가 ‘참가’하는 성격이 컸다면 나의, 경주는 어디서 어떻게 사진을 찍을 것인가에 대해 신청자가 기획부터 준비까지 진행하는 사진촬영이다. 나는 촬영 경험과 갖고 있는 장소 데이터를 바탕으로 원하는 촬영을 하기 적합한 시간대와 장소 그리고 상상 속에 있을 장면을 현실화하는 것을 돕는다. 


이렇듯 나의 사진은 본질에 집중한다. 그리고 사진에 이야기를 담고자 하고 더 나아가 사진으로 위로를 전하고자 한다. 모든 사람이 사진에 이야기를 담고 위로를 받고자 사진을 찍지는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정말 필요한, 그리고 이런 경험 이전과 이후의 삶이 많이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어나가고자 한다. 


그리고 사진을 촬영하는 일을 하면서 위로를 많이 받았다. 이렇게 멋진 삶을 살아가는 분들도 있구나. 이렇게 예쁘게 사랑하는 분들도 있구나. 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만나는 것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촬영 때마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기분이라 그 시간에 몰입하며 촬영하다 보면 촬영 시간을 넘기기 일쑤다. 사진을 통해 세상을 만나고 삶의 경험을 넓히는 이 시간에 참 감사하며 오늘도 새로운 인연을 만날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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