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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Nov 23. 2023

9_가을에는 불국사를

평일, 그리고 여유롭게

올해는 윤달이 껴서 그런지 단풍이 예년보다 늦다.

예년 기준으로 이맘때면 단풍나무 잎이 다 떨어지고 겨울로 들어갈 준비를 하곤 하는데

아직 물들지 않은 단풍나무도, 그리고 이제 물이 들기 시작하는 단풍나무도 곳곳에 보인다.


11월 말이면 겨울 준비를 해야 하는데 아직 가을이라 한편으론 다행이지만, 이상기후로 늦어지는 것 같기도 해서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그래도 아직 가을이 곁에 머물고 있으니 함께 하는 동안은 잘 만끽해 보자.


오늘 소개할 곳은 사실 낯선 곳이 아닌, 너무도 익숙한 곳이라 식상할 수도 있지만

가을 풍경이 너무도 아름다워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곳

바로 불국사다.



신라시대 창건된 불국사는 경주를 대표하는, 아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리고 아마 90년대생까지는 적어도 한 번은 와봤을, (하지만 90년대생인 나는 불국사를 서른 살에 처음 가보았다!) 수학여행의 성지인 곳이다. 불국사는 우리에게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한국여행 시 꼭 가봐야 하는 곳으로 여겨지나 보다. 경주를 찾는 외국인의 80% 이상이 불국사와 석굴암을 보기 위해 경주에 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불국사엔 봄 벚꽃철과 가을 단풍철에 주로 국내 관광객이 몰리는 반면 외국인 관광객의 발걸음은 일 년 내내 이어진다. 그들에게는 1300년 가까이 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장소가 낯설게 느껴질 테니까.




사실 불국사는 사계절 언제 찾아도 좋다.

봄에는 불국사 앞 잔디밭에 벚꽃과 겹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여름에는 초록의 신록이 우거진 사찰의 풍경도 퍽 멋스럽다. 눈이 잘 오지 않는 경주지만 불국사는 토함산 자락에 위치해서 그런지 종종 눈 내린 설경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직까지는 나도 불국사의 설경은 사진으로만 봤기에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본 불국사 최고의 풍경은 역시 가을이다.



가을의 불국사가 좋은 건 어느 한 곳에 단풍나무 군락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찰 전체에 단풍나무가 심어져 있어 어디서든 가을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단풍으로 물든 가을의 불국사는 평일에, 그리고 오전 방문을 추천한다. 그래야 비교적 조용하게 고요한 산사의 가을 정취를 마음껏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입장료가 무료가 된 이후 (예전에는 성인 기준 1인 5,000원이었다) 주말의 경우엔 정말 어마어마한 인파로 혼잡하다. 원래도 유명했지만 경주의 가을 단풍 명소로 대표적인 곳이다 보니 가을 여행철을 맞아 경주로 여행 오는 분들은 모두 불국사를 찾다 보니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럼에도, 혹 시간이 안된다면 주말에라도 불국사를 추천한다. 비록 사진 찍기는 힘들 수도 있지만 사진보다 중요한 건 내 눈으로 보는 것, 그리고 이 가을날의 추억을 쌓는 것이니까.




불국사에서만 장장 4시간을 보냈다.

사진촬영을 한 것도 있지만 한적한 불국사의 가을이 너무나도 좋았기 때문이다.

걸었던 길을 다시 걷고, 걷다가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가을을 바라보기도 하고.

불국사의 가을을 즐기는 추천하는 방법은 천천히, 느리게, 그리고 다시 보는 것이다.


가을의 불국사는 시간을 여유롭게 두고 거니는 걸 추천한다. 사람이 너무 많아 복잡하다면 잠깐 밖으로 나와도 좋다. 벚꽃이 피는 정원에는 지금 메타세쿼이아가 가을옷을 갈아입었다. 불국사 안 보다 여기가 오후의 햇살을 느끼기 정말 제격이다. 벤치에 누워서 잠깐 눈을 붙여도 좋다.



언제부터 이렇게 단풍나무가 많았는지 모르지만

이곳을 지나갔을 수많은 사람들의 시간을 생각한다.

역사가 있는 장소는, 시간의 흐름을 간직하고 있는 장소는 상상을 할 수 있는 공간이라 좋다.

혼자 왔을 사람도

가족이나 친구, 연인과 함께 왔을 사람도

각자 다양한 이유에서, 다양한 생각과 함께 이곳을 찾았을 거고

그리고 오늘 이곳을 찾은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일 거다. 동시에 나의 걸음도 역사가 되고 흔적이 되고 누군가에게 상상의 존재가 된다. 그리고 먼 훗날 누군가와 다시 찾았을 때 나의 흔적을 함께 공유할 수도 있다.




경주라는 도시가 주는 매력은 거기에 있다고 본다. 다시 찾아도 여전히 그대로 있는 공간이 많다는 것.

많은 것이 빠르게 바뀌고 흘러가는 오늘날 그대로 멈춰있는 것 같아 편안함이 느껴지는 곳.




올 가을이 가기 전

많은 이들이 불국사를 걸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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