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이 정당화 될 수는 없다

경덕왕릉을 떠올리며

by 동네창작꾼 지수

12월 31일. 어느덧 2025년도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연말이면 주변 지인들에게 감사인사도 전하고 새해 덕담도 전하면서 지나온 시간을, 그리고 새로 맞이할 새해의 시간을 생각하곤 하지만 올해 12월 31일의 공기는 사뭇 무겁게 느껴진다.


간혹 뉴스로 과로사 소식을 접하게 되면 건강상의 문제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청문회를 통해 공개된 그들이 처했던 상황을 들었을 땐 그 상황에 놓이면 누구도 극한의 한계를 겪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정말이지 악랄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는 그행태에 정말이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른다,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다 그래도 사람으로서의 감정은 남아있는지 마이크 앞에 서서 동생의 죽음에 대해 처절하게 부르짖는 유족의 이야기에, 무너진 그들의 삶에 대해 말로나마 사과하는 모습에 반성은 하는구나 싶었지만 역시나 말뿐인 사과였고 책임은 지려하지 않았다.


혁신기업이라며, 취업준비생들에게 꿈의 기업중 하나로 여겨졌던 곳의 실상이 이러했다니. 법적으로만 문제가 없으면 된다며 온갖 파렴치한 행태를 일삼아 온 모습들에서 나의 소비가 이처럼 부끄러운 적이 없었다. 저렴하다고, 빠르다고 좋아했던 나의 모습이 이처럼 후회되는 적이 없었다. 나의 소비는 누군가에게 삶의 희망과 정당한 댓가가 아닌 벗어날 수 없는 수레바퀴의 부속품이 되었고 인간다운 삶이 아닌 인간답지 않은 삶을 살게하는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쓰였으니까.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노동에 대한 대가가 충분히 보장되고 있을거라는 생각은 환상에, 착각에 불과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와 오버랩되는 현실이 무섭게도 소름이 끼쳤다. 배경만, 이야기만 가상이지 우리의 현실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 슬프기도 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사람들의 일상이 이루어진다면 그건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지금 당장은 문제가 없어보이지만 그런 문제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에는 더 큰 대가를 치뤄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고 마니까.


역사에서도 그런 순간은 없지 않았다. 삼국을 통일하고 문화의 최전성기를 이루었지만 신라가 결국 멸망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은 리더가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소수의 지배층이 다수의 백성들을 착취하고 희생을 강요하면서 부를 축적하면서 사회 구조가 붕괴되었고 결국 백성들은 사회 시스템에서 벗어나 도적이 되거나 아예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떤 문제가 발생될 때는 분명 사전에 그 문제를 적절하게 조치할 수 있는 신호들이 있다. 리더는 그 신호를 제대로 인지하고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 본인이 그럴 능력이 없다면 주변에 보좌하는 이들로 부터 도움을 받아야 한다. 능력도 안되고 그런 조언을 해 줄 사람도 없는 조직과 시스템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분명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신호가 사전에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 신호를 인지하지 못한다. 왜? 역사는 옛날 이야기고 최초라는 타이틀로 성공을 할 수록 자신은 실패했던 과거의 역사와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다른 존재라는 착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미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그래서 실수를 줄일 수 있는, 참고할 수 있는 역사적인 사례들은 무수히 많다. 남들이 이루지 못했다는 성공에 취해 자신은 다르다는, ’최초‘라는 타이틀에 심취해 착각에 빠지는 순간 지금까지 이루어 온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잃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선택의 후폭풍은 단순히 지금 나 뿐만이 아니라 이후 후대로도 이어진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고 처절한 상황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존심을 굽혀가며 주변국에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그 인내의 시간을 지나 한반도 삼국시대에서 통일의 주인공이라는 역사를 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영광에 취해 안온함에 빠져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선대 왕들이 힘겹게 쌓은 역사를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소수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결과는 그들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관련이 되는 몇배나 되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더 큰 고통을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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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 내남면에 자리한 경덕왕릉. 그는 아버지인 성덕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성덕대왕신종을 만들기 시작했던 왕으로 알려져 있다. 에밀레종이라는 별칭이 붙었는데 거기에 담긴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안타까움과 슬픔이 느껴진다.

재위 시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여러 정책들을 시행했지만 큰 효과들은 보지 못했고 결국 그의 아들인 혜공왕은 강해진 신료들의 권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결국 통일 이후 즉위한 임금 중 최초로 시해를 맞는 비극을 겪었다. 이후 신라 하대는 왕을 죽이는 일들이 빈번해져 왕이 1년만에 바뀌기도 하는 극심한 혼란을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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