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잠시 일을 했었다. 사서도 아니고 직원도 아닌 잠시 아르바이트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나는 큰 결심을 했다. 그 결심은 아직도 굳건하며 글로써 나의 느낌을 나누고 싶었다.
그곳을 방문하는 이용자들은 다양하고도 다른 개인들이다. 첫인상으로 누군가의 모든 것을 판단하기란 섣부른 일이다만, 마주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빌려가는 책들을 구경하는 행위는 무료한 반복 작업 속 발견한 재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의 당신은 어떤 책을 빌렸나요?' 책을 빌려 가는 이용자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저분은 왜 저 책을 빌리신 걸까? 어떠한 감정을 느끼고 싶은 걸까, 어떤 지식이 필요한 걸까?
궁금증은 내가 앉은 작은 책상 너머로 마구마구 솟구쳤다. 책 표지가 주는 분위기로, 제목으로 나름대로의 추리소설을 써가며 책을 빌린 이용자들에 대해 나만의 답을 유추해나갔다.
나를 돌아보자면, 한창 자기 계발과 위로가 가득할 법한 책 제목들에 꽂힌 적이 있었다. 나름의 좋은 책을 고른다고 고른 건데 사실상 비슷한 말들이 담겨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계속 그런 책들을 골랐던 것은. 나는 위로받고 싶었던 것 같다. 사회에서, 사람에게서 나의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받고 위로를 얻는 일은 꽤 생동감 넘치고 행복하기도 하다. 하지만 가끔은 설명하지 않아도 보장된 위로를 얻고 싶어 질 때가 있다. 혹은 평소에 듣기 쉽지 않은 말들을 책을 통해 보장되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더욱이 사람들이 집어 든 책은 결코 단순한 호기심 때문만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무의식 중 혹은 은연중에 자신이 제일 원하고 필요해 하기에 집어 든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 그렇기에 사람들의 빌린 도서들에 관한 궁금증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일반화할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빌려 가는 책과 장르를 보면 비슷한 연령대와 성별이 일치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아무리 베스트셀러 필독도서라 하더라도 결국 자신이 보고 싶지 않으면, 집어 들지 않았을 것이다. 트렌드를 따르더라도 행동으로 이어져 결정하기까지에는 본인 스스로의 선택적 과정이 동반되는 것이다.
그때만 해도 내 또래와 비슷해 보였던 여성 20대 분들은 자기 계발서 종류의 책들을, 30대 분들은 주식과 재테크에 관한 책들을 꺼내오셨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관심사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우리는 비슷한 고민과 걱정을 안고 사는구나를 느끼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가끔 내가 선택한 책들이 단순 유명하고 트렌드를 따라 사는 게 아닐까 고민하기도 했는데, 결국엔 내가 그 시기에 그 시점에 필요했기 때문에 사기로 결정하게 되었구나도 깨닫게 되었었다.
책 선물을 좋아하던 나였다. 내가 소중하게 발견한 문장을 함께 나누고 싶었고, 상대에게 필요할 수도 있을 지식이라 권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어쩌면 이런 나의 모습은 권유가 아닌 '강요'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일을 하며 사서 분과 이야기를 하다 책 선물을 자주 하시냐고 여쭤본 적이 있었다.
답은 NO. 이유인즉슨 선물의 취지는 좋지만, 받은 사람이 책을 잘 읽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선물할 때는 내 마음일지 몰라도 읽는 것은 받은 사람의 자유라는 것.
나는 머리를 땡- 하고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마치 지금까지 나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던 것 같다.
받은 책을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은 선물을 주는 사람으로서 벗어날 수 없는 기대였다. 하지만 내 바람은 거기까지 주는 대로 그쳐야 한다. 왜냐하면, 읽는 것은 결국 본인의 마음인 것이니깐. 책을 온전하게 본인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권리를, 선물을 준다는 대가로 뺏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한마디로 어련히 필요하면 알아서 읽을까 하는 것이다. 일 년에 책은 한두 번 살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에게, 한 달에 한 권 읽을까 말까 하는 사람에게 책을 주고선 읽었냐, 안 읽었냐 물어보는 것은 사실 무례한 걸 수도 있다고. 그 생각을 이전에는 못했던 것 같다. 왜냐면 선물이니깐!!!
결국 자신에 필요에 따라 책은 언제든 읽게 된다는 것이다.
필요로 느끼지 않거나 호기심조차 없으면 읽히지 않을 수 있다. 당연한 것이다.
선물이란 테두리로 행위를 강요할 수 없다는 것. 너무나도 분명하고 맞는 이치인 것 아닐까.
주저리 글이 길어졌다. 하지만 하고픈 이야기는
책으로써 우리는 많은 것을 얻고자 하고,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행위의 베이스는 '자신이 필요로 할 것'이라는 전제인 것이다. 그러니 나의 필요와 만족을 다른 이에게 당연시 여기지 말 것. 책 선물은 신중할 것. 선물하더라도 강요하는 자세 내려둘 것.
그렇다면 오늘의 나는 어떤 책을 집어 들까? 나는 무엇을 필요로 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