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기술을 새롭게 사유하는 방식

독일 뮌헨 캄머슈필 ‘알고리즘의 정치’

by 룰라

2018년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가 상영되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복제인간 로봇 리플리컨트 이야기로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화두를 던졌던 <블레이드 러너> 이후 35년만의 후속작이다. 그리고 1982년 그가 그렸던 미래는 바로 2019년 지금이다. 우리는 어쩌면 과거에 그린 미래의 시나리오 속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디지털’, ‘인공지능’, ‘가상현실’, 안면인식‘,’자율주행‘과 함께 사회 전반과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에 빠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지금 공연예술은 어떤 변화를 꾀하고 있는가? 아니면, 인간 중심의 노동 집약적 작업을 외치며 공연예술을 진정한 아날로그 문화의 마지막 보루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디지털 시대, 기술 시대 속 예술에 대한 질문은 유럽에서도 중요한 화두이다. 디지털화가 예술문화에 대한 접근, 표현, 보존, 보급 및 소비 측면에서 새롭고 혁신적인 가능성을 이끈다는 전제로 EU차원에서 예술과 기술 관련한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연극 분야의 한 예를 보면, 유럽 공공극장 네트워크인 ETC(European Theatre Convention)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Drama goes digital’을 주제로 기술을 통해 예술에 대한 접근성을 확대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공공극장과 기관, 기술, 과학, 미디어, 공연예술 분야의 다양한 전문가들이 연구와 창작 랩을 실행해 연구 결과를 공유하고 작품을 공동 제작 하였다.


디지털 시대 알고리즘의 정치


예술과 기술의 화두가 뜨거운 유럽의 축제와 심포지엄에 다녀왔다. 6월 독일의 뮌헨 시립극장 뮌헨 캄머슈필레(Münchner Kammerspiele)에서 올해 처음 열린 축제 “알고리즘의 정치(Politics of Algorithms)”와 독일 바이마르에서 열리는 문화 심포지엄(Kultur Symposium Weimar 2019)이다. 캄머슈필레 극장의 새로운 축제 “알고리즘의 정치”는 이름에서 동시대의 질문이 그대로 보인다. ‘알고리즘’이라는 용어는 페르시아 대수학의 아버지 무하마드 알 콰리즈미(Muhammad al-khwarizmi)의 라틴어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중세 시대 알고리즘은 수학 연산을 돕는 과정을 명명하는 것이었고, 현대에 와서는 기계, 디지털 컴퓨터에 의해 완전히 기계화되고, 자동화되는 논리적인 절차로 이해되고 있다. 좀 더 쉽게 본다면, 인공지능의 기술 이면에 있는 것을 알고리즘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축제 감독인 크리스토프 구크(Christoph Gurk)는 이탈리아 문화이론가 맛떼오 파스퀴넬리(Matteo Pasquinellis)를 인용해 알고리즘이 사회의 실질적 관습과 관행으로부터 나오며, 이와 유사하게 오늘날 기계 러닝과 AI의 알고리즘은 개인의 데이터를 통해 수집된 행동 양식에서 나타난다고 알고리즘을 설명한다. 그렇다면 축제는 왜 알고리즘에 ‘정치’라는 단어를 결합한 것일까? 하루에도 수십 차례 접속하는 SNS, 쇼핑몰 등에서의 물리적인 활동들은 모두 가상의 네트워크 세계로 전환되어 빅 데이터 알고리즘을 만들어 내는데, 더 이상 이용자들이 자신의 정보를 자기 주도적으로 생산하고 소유할 수 없고, 모든 정보는 플랫폼 기업이 배타적으로 소유하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결국 문제는 빅데이타가 만들어낸 알고리즘 결과의 객관성이 아닌, 어떤 내적 논리에 따라서 채택되어지는 알고리즘 설계의 주관성에서 알고리즘의 정치가 형성되게 된다.


캄머 슈필레는 과거 무대의 주인공이 인간이었던 시대에서 로봇이 인간을 대신할 수 있는 시대를 살게 될 때-이미 그런 세상 속에 있는 지금-인간은 어떠한 영향을 받고 인간과 비인간이 사회 속에서 공존하는 방법을 질문하고 있다. 그리고 그 질문을 미래에서가 아닌 지금, 알고리즘이 인간의 지능을 모방하지 못하는 지점이 무엇일지를 찾아내고자 하는 것이다. ‘알고리즘의 정치’는 6월 11일부터 16일까지 6일간 예술, 삶, 인공지능(Arts, Life, Artificial Intelligence)의 키워드를 내 걸고 공연, 전시, 토론, 강연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예술가들에게 현 시대에 직면한 변화와 도전에 대한 다양한 접근 방식으로 관객과 만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였다. 강연과 토론 주제는 ‘예술과 기술의 만남’, ‘정치, 정체성, 패미니즘’, ‘로봇 연극’ 등 사회 정치적 이슈뿐만 아니라 예술 창작에 있어 알고리즘과 로봇 공학의 역할 대두 등이 포함되었다. 또한 인간이 하나의 종으로서가 아니라 네트워크의 일부인 데이터 기반 요소로서 간주되어지는 기술 사회에서의 권력 관계를 탐구하고, 과학자가 인간보다 더 믿을 수 있는 기계를 만들고 연극을 창작하기 시작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리고 디지털 세계에서 안전하다고 믿었던 연기의 영역조차 로봇 공학의 발전으로 인간이 대체 된다면 예술창작의 결과는 달라지는가? 등의 다양한 질문이 오고갔다.


퍼포머와 관객의 새로운 관계 맺기


9개의 공연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그 중 리미니 프로토콜(Rimini Protokol)의 신작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에서는 하이테크놀로지가 결합한 휴머노이드 로봇이 무대에 유일한 배우로 등장한다. ‘언캐니 밸리’는 로봇이 인간과 닮을수록 호감도가 증가하다가 어느 구간에서 갑자기 강한 공포감, 거부감,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는 로봇공학 이론이다. 본 작품은 로봇으로 카피된 독일 작가 토마스 멜레(Thomas Melle)의 강연 공연이다. 극장에 들어가면 인간 모습을 한 로봇이 무대 위 소파에 앉아 있다. 그가 인간이 아닌 로봇이라는 것은 의도적으로 전자 장치가 보이도록 열어놓은 머리 뒤의 부분이 없다면 충분히 혼란스러울 정도로 로봇은 정교하다. 토마스 멜레는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관객에게 ‘불안정성’에 대한 강연을 한다. 어린 시절의 사진을 보여주며,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하고 관객은 그의 이야기에 공감을 하다가도 그가 진짜가 아닌 카피된 인형과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혼란스러워진다. 진짜 토마스 멜레가 영상으로 등장해 무대 위 카피된 또 다른 자신을 지칭하고 바라본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토마스 멜레를 보며, 질문을 던진다. 나의 과거부터 현재의 기억까지 모두 카피된 존재라면 그것은 나 자신이라고 할 수 있는가? 공연 내내 그의 강연을 들으며, 로봇의 원본에 대한 수행력에 놀라고, 그에게 공감을 느끼는 나의 감각에 놀라게 된다. 하지만 공연이 끝난 후 인간과 로봇이 공유했던 공감의 기운은 차갑게 식어 버린다. 장치가 꺼진 로봇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공연 후 관습적으로 박수를 보내던 관객은 또 다시 혼란에 빠진다. 누구에게 보내는 박수인가? 나는 누구와 대화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또한 관습적인 연극의 형식에서 누구보다 충실한 관객의 역할을 하고 있는 나와 다른 관객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관습적 연극에 관객으로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언캐니 밸리>는 인간의 복제, 인간과 로봇의 공존 그리고 전통적 연극에서의 퍼포머와 관객의 관계 맺기와 역할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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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from 독일 뮌헨 캄머슈필 ‘알고리즘의 정치’ 웹사이트


<언캐니 밸리>가 하이테크의 알고리즘으로 만든 작품이라면, 작은 무선 프린터 하나만을 이용해 만든 작품도 있다. 공연의 제목은 <알고리즘>이다.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연극 단체 터보 파스칼(Turbo Pascal)이다. 관객은 지정된 자리에 앉아 있고, 퍼포머는 무선 프린터로 인쇄 되어 나오는 작은 종이를 한 장씩 순서대로 관객에게 전달한다. 종이를 받은 관객들은 잠시 후 일어나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자신이 받은 종이를 또 다른 이에게 전달한다. “이 방에서 누가 당신과 비슷하게 생겼나요? 누가 돈을 가장 많이 벌까요? 당신이 정치범으로 몰렸을 때 누가 당신을 숨겨줄까요? 누가 당신에게 아무 조건 없이 100만원을 빌려줄까요? 누가 당신보다 똑똑할까요?” 관객들은 지속적으로 이동하고 질문지를 주고받으며 스스로 분류되어 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현대인들은 사회적 지위, 소비 패턴, 사회적 행동 양식에 따라 지속적으로 평가받고 분류되며 계급화 된다. <알고리즘>은 사람들을 프로파일링 하고 있다. 작품 속에서 관객은 알고리즘의 대상이 되고 동시에 다른 분류 과정을 바라보며 그 안에서 비교, 패턴인식, 그룹형성, 선택과 결정의 기본적인 알고리즘의 이동경로를 파악하는 목격자가 되는 것이다.


<필로우 토크(Pillow Talk)>는 제목 그대로 베개와의 대화이다. 높고 낮은 산처럼 보이는 쿠션들이 만들어 놓은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 조명이 비치는 자리를 차지하고 베개를 베고 누워 잠시 기다리면 베개가 말을 걸어온다. 이름을 교환하고 간단한 소개를 하고는 소소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눈다. 누워있는 관객이 보는 풍경이라고는 또 다른 쿠션의 산들이고, 곳곳에서 소곤거리는 대화들이 파편이 되어 공간에 떠다니고 있다. 소소한 이야기들과 끝말잇기 게임 그리고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고, 관객은 어느새 인간이 아닌 비인간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고 낮잠에 빠진다. 잠을 깨우는 목소리가 꿈결처럼 들려오고, 관객은 디지털 시대에 누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지, 사람인지, 기계인지, 불확실한 시대에 살고 있음을 경험하고 쿠션의 풍경을 빠져나온다.


젊은 여성들로 구성된 단체 본 운드 미트 더 에이전시(Von Und Mit The Agency)의 작품 <보이스 스페이드(Boys Space)>는 포스트 디지털 시대 가부장제의 남성성과 우익 사고의 관계성을 바라보며, 극단적 진보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알고리즘이 어떻게 차별을 강화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공연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두 개의 레이어로 동시 진행되며, 공동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각자 제공받은 캐릭터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동시에 무선 헤드폰에서 나오는 안내에 따라 공간을 탐방하며 퍼포머들을 만나게 된다. 이들은 작품 속에서 가부장적 남성다움을 약화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가부장적 남성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대안의 공간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사용하고 있다. 사실, 작품은 이들의 의도만큼 명확히 전달되지 않으며, 또한 온라인과 오프라인, 가상과 실제 공간과의 관계성을 만들어 내는데 실패해 보인다. 이 작품 관람 과정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가상의 공간 속 관객에 대한 통제권과 관련한 질문이다. 공연이 모두 끝나고, 우리는 일행 중 한명이 작품에 대한 부정적 발언을 한 직후 아무도 모르게 온라인 플랫폼에서 추방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대 관객은 점점 더 작품의 능동적 수행자로서 초청받게 되고, 관객은 객석을 벗어나 자유롭게 이동하며, 심지어 VR과 온라인 플랫폼과 같은 가상의 공간에서 새로운 역할을 부여 받는다. 창작자, 퍼포머, 관객과의 새로운 관계 맺기, 역할에 대한 재 규정 등 창작 과정에서 고려해야 하는 점들이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 관객들에게 부여하는 자유와 그들에 대한 통제의 범위와 방법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가? 관객에 관한 디지털 시대의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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