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그녀의 모습으로 기억하는 사랑

스틸 앨리스 (Still Alice)

by 룰라

가끔 늘 사용하던 고유명사들이 떠오르지 않고, 막연히 무언가를 지칭하는 애매한 단어들로 대화를 이어가는 경우가 생긴다. 기억하는 것들, 내 과거의 시간 속에 차곡 차곡 쌓아진 것들. 어느날 그것들을 서서히 잃어간다면......


삶의 공포는 여러가지가 있다. 교통사고가 난다면, 암에 걸린다면, 사랑하는 이를 잃는다면...모든 기억을 잃고 내가 아닌 나로 세상에 존재하게 된다면...알츠하이머, 치매야 말로 가장 끔찍한 삶의 공포이다. 내가 사라지는 것. 그리고 사라지고 있는 나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 그런 삶은 어떤 모습일까? 정말 나를 인식하지 못할까? 아니면 적어도 그 현재, 그 순간의 나만을 인식하는 것일까?


<스틸앨리스>는 누구보다 아름답고 지적인 언어학 교수인 앨리스가 40대 후반 어느날 갑자기 희귀성 알츠하이머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모습을 담은 영화이다. 그녀의 병은 더욱 희귀한 것으로 유전적 성질을 가지고 있어, 자신뿐만 아니라 자식들에게까지 유전될 수 있는 병이기에 더욱 끔찍할 수 밖에 없다. 앨리스는 자신 주변의 소소한 것들에 대해 매일 질문하고 답하며,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의 나를 위해 삶과 기억의 끈을 붙잡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 그리고 한편으로 기억의 끈을 더 이상 잡고 있지 못하게 되는 경우에 대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도록 미래의 앨리스를 위해 자신에게 보내는 영상을 촬영해 놓는다.


그녀에게는 사랑하는 남편이 있고, 두 딸과 한명의 아들이 있다. 모든 가족들이 그렇듯이 그들은 서로의 삶에 간섭하고 조금씩 문제를 가지고 있는 평범하고도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불행은 평범하고, 행복한 삶 속에 반갑지 않은 손님처럼 갑자기 찾아와 떠날줄 모르고 자리를 차지한다.


앨리스역의 줄리안 무어는 영화 내내 아름답고 환한 미소를 보인다. 영화의 첫 머리에서 그녀의 모습이 지적인 교수, 아름다운 아내, 당당하고 자랑스런 엄마의 모습이었다면, 점점 그녀는 조금 수척해지고, 흐트러지지만, 부드럽고 편안하며, 아이와 같이 순진하고 맑은 미소를 가진 앨리스가 되어 간다. 어제 있었던 일도 잊어버리고, 이제는 방금 전의 일도 기억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연히 찾게된 그녀가 과거에 남겨놓은 비디오를 보고 본인도 모를 자살을 시도하지만,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그녀에게 과거 그녀의 치밀한 계획따위는 아무 의미도 없을 뿐이다. 앨리스는 짧은 바로 그 순간만을 인식한다. 그리고 그 순간 순간은 절대로 잊혀 지지 않는 하나의 기억, 바로 '사랑' 으로 이어지기에 그녀의 모습은 끝까지 아름답다.

영화는 알츠하이머에 대한 공포와 가족들의 슬픔, 괴로움에 주목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망각해도 늘 존재할 수 밖에 없는 현재와, 절대 잃어 버리지 않는 한 가지 '사랑' 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앨리스는 여전히 그녀이고, 아름답다.


<스틸 앨리스>는 줄리안 무어에게 87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선물했으며, 리처드 글랫저 감독에게는 유작이 되었다. 영화촬영 이전부터 루게릭 병으로 투병중이었다 얼마 전 사망한 리처드 글랫저 감독은 본인의 절망 속에서도 알츠하이머라는 더 절망적인 병을 소재로 가장 아름답게 현재를 살아가는 앨리스를 만들어 냄으로 그의 삶의 마지막을 희망으로 마감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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