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또는 음주 일기 01
때로 음식은 '맛' 때문이 아니라 그 음식과 얽힌 '추억'때문에 먹고 싶어 지고 굳이 찾아 먹는다. 겨울에 감기 들었을 때마다 엄마가 끓여주었던 김치 콩나물국을 먹으면 꼭 감기가 나을 것 같다던지 가끔씩 돌아가신 아빠가 그리울 때면 생선전이 먹고 싶다든지 뭐 그런 것 말이다.
내게 술은 대표적으로 맛보다 추억이 그리워서 혹은 그것이 습관이 되어서 먹는 음식이다.
대학교 입학해서 아주 우연히 내가 술을 꽤나 잘 마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입생 때는 자리에 어울리기 위해 한, 두 잔 먹었으나 내 주량이 얼마인지도 몰랐는데 2학년이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나의 숨겨진 재능을 살리는 쪽으로 음주 생활이 이어졌다.
계열 모집으로 인문대에 입학해 2학년이 되어 영문과에 진학했다. 새로 친구들을 사귀어야 했으니 자연스레 학년 초부터 술자리를 갖게 되었는데 3월 말, 봄이 오는 길목에선 관악산 등산로 앞에 간이 테이블에서 물소리 들으며 막걸리 마시는 게 꽤나 운치가 있었다. 열 명 남짓의 친구들이 모여 막걸리를 마시는데 내 앞에 앉은 키 큰 남학생이 마주 앉아 술잔을 부딪치다 그만 대취했다. 키도 작고 얼굴도 까무잡잡 어려 보이는 내가 막걸리를 쭉쭉 마시니 남자로서 자존심이 상했던지 (주량이 센 것은 천하에 자랑할 것이 없는 일이었는데 어렸을 땐 그것으로도 으쓱해지고 또 반대로 여자보다 술을 잘 못 마시는 것이 자존심도 상하고 그랬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다) 안 그래도 되는데 죽기 살기로 따라 마셨다. 덩치는 산 만한 아이가 몸을 잘 못 가눠 주변에 있던 남학생 두어 명이 부축해 택시 태워 보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왜 그렇게 술을 급하게 마셨던지, 잔에 담기면 그대로 원샷을 해야 직성이 풀렸다. 나야, 술에 대해 무얼 알았겠나 그저 선배들이 그리 마시고 내 앞의 친구들이 그리 마시니 보조를 맞춘 것뿐이었다.
우리 대학 시절에는 자나 깨나 시위가 있던 시절이었다. 사실 1학년 때는 학교 교정에 사복 경찰들이 상주했고 2학년 2학기에는 총학생회의 시험 거부 방침이 내려져 전경이 들어와 있었으니 학교는 언제나 부딪치는 곳이었다. 앞서서 짱돌을 던지는 용기와 체력은 없었지만 나는 그저 과 행사 열심히 참여하고 시위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의 대출이나 리포트 써주기로 미안한 마음을 달래곤 했다. 하긴, 학교가 암울했으니 해가 지면 술 마시는 낙밖에는 없었나 보다.
내 주량을 처음으로 확인한 건 2학년 중간고사 때였다. 학생회는 시험거부 지침을 내렸고 일부 학구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을 보러 들어갔고 솔직히 내가 왜 시험거부를 해야 하는지 정확히 이해도 못하고, 그 결정에 동참도 하지 못했으면서도 대세를 따르자 했던 나와 한 무리의 친구들은 낮에는 어설프게 학교를 배회하다 저녁이 되면 술자리를 전전하곤 했었다. 막 스물을 넘긴 나이에 허구한 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안주 삼아, 식어가는 짬뽕국물도 떠먹어 가며 쓴 소주를 들이켤 때였다.
그날은 같은 과 친구가 시위에 주동 뜨다 잡혀갔다는 소식도 들리고 과대표는 시험 거부로 인한 징계를 걱정하고 있고 학교는 아수라장이고 앞날은 막막했다. 처음에 함께 도서관 다니고 점심 먹으러 다녔던 친한 친구들 댓 명이 모여서 시작했다는 기억은 생생한데 김치찌개에 소주를 마시고 막걸리에 2차를 했는지 어땠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술자리에서 설움을 이기지 못하고 엉엉, 코도 펑펑 풀어가며 울었던 것까지는 꿈인지, 생시인지 아련하게 느껴지며 새벽에 깼는데 집이었고 내 방에서 얌전하게 잠 옷까지 갈아입고 자고 있는 내가 영 어색했다. 어떻게 집에 왔는지가 기억나지 않는 당혹스러움. 머리는 깨질 듯이 아픈데 그것보다는 뭔가 낯선 나라에 떨어진 듯한 두려움과 불안으로 어떻게든 지난밤의 기억을 떠올려 보려 노력했다. 처음 필름 끊어지는 경험을 했던 것이다.
다음날 일어나 나는 짐 싸들고 절로 들어갔다. (사실이다!) 어차피 학교 가보았자 어수선할 테고 또 술을 마시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고 무엇보다 기억이 끊어지도록 술을 마신 것은, 엄중한 사태에 내가 중심을 못 잡고 흐느적 거렸기 때문이라는 자기반성이 컸기 때문이었다. 불교 신자이셨던 엄마가 할머니 제사를 모시는 절에 스님에게 말씀드려 며칠 묵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읽을 책 한 두 권과 A4 노트 한 권 들고 갔다. 딱히 서두르는 사람은 없지만 누구도 게으르게 보내지 않는 절에서 사흘 머물면서 노트 절반 정도를 채울 만큼 열심히 무언가를 썼다. 밥 먹는 시간, 가끔 법당에 앉아있는 시간, 절 주변을 걷는 시간을 빼고는 내 마음속에 있는 생각들을 탈탈 주머니까지 뒤집어 탈탈 먼지를 털어내듯 쏟아 내었다.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그저 적었다.
다시 '속세'로 돌아와서 노트에 적은 대로 살아왔는지는 솔직히 기억나지 않는다. 절에까지 가게된 것은 술 먹고 필름이 끊어지는 경험이 컸던 것 같은데, 그렇다고 그 후에 술을 끊지도 못했다. 온통 술을 곁들여 관계를 쌓는 사람들로 둘러 쌓인 사회에서 그런 독하고도 위대한 일을 해낼 만큼 강인하지는 못했다. 나도 습관적으로 술이 관계를 두텁게 한다고 믿으며 살았으니 말이다.
어찌 되었든 스무 살부터 시작된 나의 음주는 꽤 오랫동안 지속됐다. 요즘은 마음속으로는 술 좀 끊어야지 생각하고 있다. 횟수와 양이 많이 줄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가끔씩 술 생각이 나는 것은 '술'이 좋아서라기 보다 술과 함께 했던 사람들, 그 추억들이 그립기 때문인 것 같아서, 좀 부끄러운 사연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야기를 적어보기로 했다. 스무 살 시절, A4 노트 반 권을 채웠던 절실함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끔씩 떠오르는 술자리의 추억들을 머리 속에서 털어 내면 나의 금주가 좀 순조롭지는 않을까 싶다. 어쩌면 애주가 스타일로 내 젊은 날을 추억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