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또는 음주일기 02
애주가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들만의 술에 얽힌 사연이 있다. 술을 많이 마셔 실수한 얘기며 새벽까지 술 마시다 시험 보러 간 사연이며, 부끄러운 기억들이 어느새 '술'이라는 포장지를 얻으면 그럴 수 있는 일로 용서가 되는지 다들 술 한잔 들어가면 술 마신 경험담을 안주 삼아 털어놓는다. 술 마시다 벌어진 에피소드를 책으로 엮으면 두산 대백과사전 몇 질 분량은 채워질 게다.
한때는 애주가임을 자처했으니 물론 내게도 숱한 기억이 남아 있다. 많이 마신 기억보다는 얼마나 절박하게 '주님'을 찾았는지가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제약이 있어야 절박함이 더욱 빛난다. 그래서인지 술 마시고 놀기에는 눈치가 보이는 시험 때 기억이 떠오른다.
때는 대학교 3학년 6월 초쯤이었다. 슬슬 기말고사가 다가와 휴일에도 학교 도서관에 자리를 잡아야 안심이 되곤 했다. 하지만 6월 그 쨍쨍한 햇빛과 녹음이 펼쳐지는 때 바로 초치기도 아니고 시험공부가 술술(?) 풀릴 리가 없었다. 이럴 땐 점심시간을 조심해야 한다. 오전에 도서관 자리 잡고는 적어도 한 시간은 공부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데 점심시간에는 식당에서 자연스레 친구들도 만나게 되고 식후 커피 한잔으로 노닥 거리다 보면 날을 좋고, 젊음의 에너지는 넘치는데 우중충한 도서관에서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누군가 주동을 뜨면 줄줄이 엮이는 굴비 신세로 도서관 짐을 챙기게 된다.
그날은 그나마 점심시간 유혹을 칼같이 떨쳐내어 일군의 친구 무리들이 공부를 접고 나간 뒤였다. 3시쯤이나 되었을까 점심의 유혹을 물리쳤다는 기쁨도 있고 해서 잠시 쉬다가 도서관에 남은 친구 두 명과 커피 한잔을 마시게 되었다. 커피를 매점에서 마셨으면 무사히 보람찬 하루를 마칠 수 있었을 텐데 하필 도서관 옆 잔디밭에서 자리 잡고 노닥거리다 보니, 그만 두 번째 유혹을 떨쳐내지 못했다. 낙성대에서 막걸리 한잔 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누가 먼저 꺼냈는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결단코 나는 아니었다!) 암튼 우리 셋은 이제 그만 철수를 하자는 쪽으로 마음을 모았다. 문제는 주머니를 다 털어 보았는데 막걸리를 마실 돈이 없었다. 내가 가진 2천 원가량의 지폐가 전부였다. 술 먹자고 합의를 보기 전에 가진 돈을 확인했어야 했는데, 이미 마음은 낙성대 막걸리 집에 앉아 있는데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격이었다.
머리를 짜내던 우리는 '구걸'을 하기로 했다. 물론 나는 2천 원의 '회비'를 이미 출자하였으니 구걸에서 면제를 받았고 두 친구는 도서관 열람실을 돌며 1학년 때 같은 반, 서클 친구, 중 고등학교 동창, 선후배를 총망라하여 커피 마시게 100원만 내놓으라는 구걸인지 삥 뜯기 인지 모를 기술을 펼쳤다. 생각보다 쉽게 많은 돈이 모였고 우리는 무사히 마음을 따라 낙성대 막걸릿집에 안착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일화는 더욱 애절하다. (제약이 있으면 욕망이 더욱 커진다는 것을 입증하듯) 그때도 역시 시험기간이었다. 다음 날 시험공부를 어느 정도 마치고 늦은 시간에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나와 술친구인 남자 친구는 도서관에서 정문으로 향하다가 둘 다 소주가 너무너무 마시고 싶다는 의견 일치를 보았다. 그때도 문제는 돈이었다. 지갑을 털털 털어 보았자 포장마차에서 술 한잔 하기에 조금 부족했다. 얼마였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어찌어찌 닭똥집 한 접시에 소주 반 병을 시킬 정도의 돈이었다. 바퀴벌레 같은 우리 커플을 불쌍히 여기신 포장마차 주인아주머니가 반 병 값에 소주 한 병을 주시는 은혜를 베푸신 덕에 술 고픈 영혼을 달랠 수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맛있는 술 중에 하나였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열정으로 공부를 했더라면 '박사' 학위라도 땄겠지만 아쉽게도 공부는 그만큼의 '없으면 되게 하라' 정신을 살려내지 못했다. 이제와 생각하면 정말 내가 '술'을 좋아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친구들과 할 수 있는 문화적 활동이 별 게 없었기 때문은 아니었던지. 어쨌든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는 좋았다. 그땐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내가 술을 마시며 괴롭고 슬프고 답답한 시절을 살아내야 하는지 잘 모르던 때였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