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또는 음주 일기 05
오후 5시. 어떤 계절이든 하루가 저무는 시간이다. 적어도 직장인들에게는 그렇다. 이 시간쯤이면 오늘 하루의 할 일을 대략 마무리하거나 혹은 오늘 안에는 절대로 끝나지 않을 일들을 미워하기보다는 인정하며 야근을 준비하는 때다. 아직 한낮의 기운이 쨍쨍한 여름이든, 이미 어둠이 시작된 겨울이든 오후 5시는, 그래서 마음이 좀 풀어지고 오늘 저녁 하루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가늠하는 여유를 갖게 되는 시간이다.
한국일보에 다닐 때, 오후 5시는 '석양주'라는 주신이 마음속으로부터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시간이었다. 대개는 마감된 원고를 최종적으로 데스킹을 마치고 한 숨 돌린 차장급 형들로부터 시작됐다.
"야, 석양주 한 잔 하러 가자!"
레이다에 걸리는 눔덜에게 이 한마디면 줄래 줄래 굴비 엮이듯 형을 따라 회사 부근 술집으로 향했다.
95년부터 1년 반 정도 한국일보를 다녔는데 (그 당시) 놀라운 문화 두 가지는 보통 언론사에서 '선배'라고 부르는 호칭을 그곳에서는 '형'이라 부른다는 것과 술 잘 마시는 것이 능력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이었다. 부장 급 정도 되면 술 왕창 마시고 크게 실수한 경험담이거나 선배, 혹은 높은 사람에게 당당하게 기어오른 무용담 하나 정도는 다들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적당히 자랑하여도 흉이 되지 않은 문화였다.
선배를 형 (남녀 구분 없다)이라 부르는 것은 처음엔 정말 적응이 안됐다. 하지만 부르다 보니 선배보다는 한껏 정겨운 것도 사실이었다. 일 년 남짓밖에 근무를 안 해서 내가 느꼈던 한국일보의 문화가 일반적인 것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있었던 부서에서 느꼈던 건, 한국일보의 선후배 관계가 다른 언론사의 그것에 비해 훨씬 떠 끈끈하다고 생각되었다. 어쩌면 '형'이라고 부르는 호칭에서 비롯된 착시였는지도 모르지만.
고백하건대 나는 석양주 마시러 가는 것을 좋아했다. 사실 석양주는 대개 오후 5시에 시작해서 6시 내지 7시면 끝이 났다. 그 시간이면 기자들은 회사로 돌아가 다음날 신문 가판 (예전엔 조간신문을 그 전날 저녁에 발행해서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역 등에서 판매를 했다)을 확인해야 했다. 혹여 내 기사 내용에 틀린 부분은 없는지, 더 중요하게는 다른 신문 가판을 보면서 물먹은 내용은 없는지를 확인하고서야 그날 저녁을 맘 편히 보낼 수 있었다.
따라서 석양주 모임에서는 하루 노동을 끝내고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소주나 막걸리를 "캬~!"하는 감탄사도 뱉어가며 맛있게 한 모금 들이킬 수 있었다. 우리는 마치 가족들이 저녁 상에 모여 앉아 두런두런 하루를 정리하는 것처럼 그날 취재하면서 겪은 얘기도 나누고 형들을 술자리에서나마 놀리기도 하며 웃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로 마무리되는 술자리는 깔끔하고 산뜻했다. 물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혹은 그 이상이었을지도... -_-) 막내를 보내 가판을 확인하고 2차로 이어지는 술자리도 있었지만.
한국일보 형들은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96년 내가 사업을 해보겠노라고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을 때 탐탁지 않아하던 형이 회사를 만들고 한 달 여 되었는데 밥 사준다며 나를 불렀다.
'너 영어 좀 하지? 인터넷 신문에 국제 기사를 좀 보강하기로 했어. 하루에 한 건 정도 외신 종합해서 기사 작성 좀 해라.'
예의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지만, 회사라고 차려놓고 굶어 죽지 않을까 걱정스러워 '일감'을 연결해 줬던 거였다. 그래, 그땐 그랬었다. 아무런 조건 붙이지 않고 후배를 도와주는 선배도 있었고, 그 마음 씀에 고마워하며 더 열심히 노력해야지 결심하기도 했었다.
이제 와서 석양주가 그리운 옛 추억으로 남게 된 것은 술맛 때문만은 아니다. 술과 함께 들이켰던 형들의 따뜻한 마음이 기억 속에 묻어 있기 때문은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