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또는 음주 일기 04
애주가라고 이미 밝혔지만 나라고 술자리가 늘 즐거웠던 것은 아니었다. 졸업하고 오래 기자생활을 했는데 '여기자'에게 술자리는 간혹 인내심을 요하는 수련의 장이기도 했다. 지금의 기준으로 #ME TOO를 외치면 동료나 선배가 남아날 것 같지 않다. 함께 일 할 땐 멀쩡하던(?) 사람이 술자리에서는 어떻게 용기를 내었는지 소수 여성인 나를 향해 음담패설에 가까운 말을 잘도 뱉어 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불쾌한 경험 가운데 하나는 '룸살롱에서 접대받기'였다. 이것도 지금의 기준으로 보자면 적폐 기자질에 해당될 것이지만 삼십 년 전쯤엔 기업들에서 담당 기자단과 함께 술을 마시고 2차 가는 자리가 어쩌다 있었다. 여러 명이 저녁 먹으며 업무 자리에서 하지 못했던 얘기도 나누고 서로 서운했던 점까지 풀어내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2차를 노래방도 아니고 룸살롱을 가는 것은 좀 당혹스러웠다. (물론 흔치는 않았지만)
칙칙하게 어두운 룸. 아무리 고급스럽게 대리석 식탁으로 꾸며 놓아도 지하의 꽉 막힌 방은 칙칙하다는 느낌을 거둘 수 없었다. 대체로 ㄷ자로 둘러앉으면 그곳에서 일하는 여종업원이 들어와 중간중간에 자리를 잡았다. 남자들 틈에 섞여서 여 종업원의 '시중'을 받게 된 나도 당혹스러운 경험이지만 그 자리에 투입된 그 들에게도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을 게다. 그때는 그런 자리쯤 아무렇지도 않게 버텨내야 '기자'로 인정을 받는 그런 시대였다. 일부러 대범한 척 술도 마시고 옆 파트너와 대화도 나누고 했는데, 지나가는 말로 되뇌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도 오늘은 언니들이 있으니 얌전하시네요..."
아, 정말 지금의 기준에서 보자면 참혹한 시대를 살았다. 나는 가끔씩 궁금했다. 그 자리에 있었던 남자 동료들은 정말 그런 자리가 좋았을까? 성을 상품화하는 것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당혹스럽고 처참한 경험이 아닐까 하는 의문.
이 것과는 조금 결이 다르지만 또 다른 술자리의 불쾌한 경험도 있다. 전자신문을 나와 나는 6개월가량 C일보에서 일했다. 신문 잘 만들기로 유명한 신문,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보수 신문에서 IT 기자로 일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무척 불편해서 회사를 그만두어야겠다고 결심했던 즈음이었다.
어느 날 그 조직의 지존이신 B 대표님이 우리 팀에 술을 사신다며 모이라고 했다. 별도의 방이 있는 한식집에 열몇 명이 모였고 테이블에는 양주 몇 명이 놓여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양주는 술자리에서 최고로 대접받았다.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조니워커였으니... 대표께서 우리들을 어여삐 여긴다는 것을 한눈에 알 것만 같았다.
음식이 나오고 조니워커 베이스의 폭탄주가 돌아갔다. 그런데 그분은 '여자들이 무슨 폭탄이냐'며 여성들만 쏙 빼고 폭탄주를 돌렸다. 그 자리에 여성이라고는 딱 두 명 있었는데 나 말고 다른 한 사람은 술을 평소에도 전혀 마시지 않았으니 그 상황이 무척 고마웠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부끄럽게도 '여자'임에도 애주가였다. 아, 조니워커가 테이블에 있는데 나에게 허락된 것은 맥주밖에 없다니... B 대표 옆에 옆에 앉은 K 선배는 술 한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졌는데 벌써 몇 잔 째 잔을 받고는 괴로워하고 있었다. 얼굴은 용광로처럼 달아올랐다.
'아, 나도 조니워커 마시고 싶은데...'
먹을 것으로 차별받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어린(?) 마음에 무척이나 상처가 되었다. 그 후 어찌어찌 해외여행 갈 일이 생겼을 때 조니워커, 무려 '블루'를 사서 집에 쟁여 두고 홀짝홀짝 마셨던 경험이 있다. 그때의 설움을 떠올리며.
아마 지금 20, 30대는 내가 무척이나 과장을 했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이다. 그땐 참 힘든 시절을 보냈다. 그러고 보면 세상은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