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 연휴는 뜻하지 않게 아들 둘과 오붓한 가족 여행의 시간을 보냈다.
시대 흐름에 맞춰 명절은 휴가모드로 보내자는 며느리들의 강력한 주장으로 지난 설부터 명절에 부산 큰 집 대신 휴가지에서 만나기로 했다. 올 추석 여행지는 경주였는데 큰 집 사정으로 못 오는 바람에 우리 가족 만의 여행이 되었다.
큰 애가 결혼을 앞두고 있어 뜻하지 않게 마련된 가족 여행의 의미가 더욱 깊었다. 2주 후면 큰 아이가 결혼을 한다. 몇 달 전, '결혼을 하고 싶다'며 꺼낸 아들의 이야기가 현실이 된다. 아주 먼 일 같았던 그 날이 코 앞으로 다가 오니, '어른'이 되는 아들이 대견하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이제 세상의 온갖 고난을 방어막 없이 온몸으로 부딪쳐내야 할 아이가 안쓰럽기도 하다.
기환이는 어려서부터 꾀가 많은 아이였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인가..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 선생님에게 검사받는 학습지 공부를 시켰는데, 나가서 놀기에 바빠 학습지를 풀 시간이 없었다. 선생님 방문 전에 주말마다 학습지 검사를 하는 아빠에게 영낙없이 혼이 나겠구나 싶었는데, 웬일로 아빠가 평화롭게 학습지 검사를 마치고 나왔다. 부엌에 있던 나는 '그럴 리가 없는데...'하는 마음을 참지 못하고 아이 방으로 가서 학습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곤 '평화'는 깨졌다. 일주일치 학습지 풀기가 싫증 났던 아이는 중간중간을 풀로 붙여서 학습지 분량을 절반으로 줄이는 신공을 펼쳤다. 한 번에 여러 장을 붙였다면 두꺼워서 표시가 났을 텐데, 중간중간 잘도 붙여서 훌훌 넘기다 보면 두 장이 붙어 있는 것을 알기 어려웠다. 대범한 아빠에게는 잘 넘어갔던 수법이 내게는 발각되었고 나는 위기 극복을 위해 기발한 발상을 해 낸 아이를 칭찬해 줄 아량이 그 당시에는 없었다. 그 녀석의 잔머리에 화를 내었고, 아들은 아빠에게 기억에 남을 만큼 혼이 났다. 그때 아이의 창의력을 알아보았다면 훨씬 좋았을 것을...
엄마가 아이 둘을 팽개치고 뒤늦게 유학을 가는 결단을 하는 바람에 기환이는 한국에서 초등학교 6학년 졸업을 하지 못한 채 미국에서 중학교 1학년으로 1년을 보내야 했고 다시 엄마 없이 한국으로 돌아와 중학교 1학년에 입학을 했다. 가장 예민하고 중요한 시기에 돌봐주지 못해서인지, 중학교 들어가서 공부에 맛을 들이지 못했다. 우리나라 학교 시스템에서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아이가 지낼 방법은 두 가지다. 죽은 듯이 지내거나 말썽을 피거나. '죽은 듯이' 지내는 것은 아들의 품성에 맞지 않는 고로 얘는 곧잘 말썽을 피웠다. 사실 말썽이란 것도 아이가 공부만 잘했다면 그냥 지나칠 수 있었을 텐데 싶은 사소한 일들이었다. '말썽 피우는 애'로 찍히면 선생님의 눈에 모든 것이 문제로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결국 일이 생겼다. 자신의 여자 친구를 놀린 아이 A를 공터로 불러 한 대 때려준 것이다. 물론 우리 애는 싸움을 못한다. 덩치도 크지 않고 태권도를 배운 것도 아니었다. 다만, 우리 아들 옆에는 함께 라면과 김밥 먹으며 우애를 쌓아온 그 학교 일진 H가 버티고 A와 우리 아들의 싸움에 심판을 보았다.
이 일로 우리 애는 벌을 받게 되었고, 내가 학교를 갈 때마다 학생지도부 앞에서 무릎 꿇고 반성문을 썼다. 교감선생님은 "부모님은 이렇게 훌륭하신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라며 우리 애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했다. 순간, 버럭 해서 교감 선생님과 싸울 뻔했다. 그는 무슨 근거로 부모가 훌륭하다고 했을까? 혹시 아이의 기록부에 적힌 엄마 아빠의 학벌, 직장으로 판단한 것은 아닌지... 우리 애가 왜 그랬는지 물어보기는 했는지... 강제전학 운운하는 선생님이 미워서 일산에서 서울로 이사를 했다. 맹모까지는 아니어도, 뭔가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어쨌든 큰 애는 내게 세상에 맘대로 안 되는 일이 있구나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다.
중3 때는 오토바이가 타고 싶다고 했다. 맘이 약한 나는 헬맷과 보호대를 반드시 쓴다는 조건으로 오토바이를 사주려 했는데 아빠와 고모들의 반대에 막혀 그러지 못했다. 아들은 과감하게 피자집 아르바이트를 했다. 오토바이가 타고 싶은 열망도 풀고 돈도 버는 일거양득의 답을 찾아냈던 것이다. 기가 막혔다. 그때, 그 아이의 '뜻을 품으면 반드시 이룬다'는 돌파력을 칭찬해 주었어야 했었는데...
그러던 아이가 '미용'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공부도 지루해서 못하는 애가 훨씬 더 힘들어 보이는 일을 어찌한다는 것인지. 처음엔 그냥 해보는 말이겠거니 싶었다. 그러나 곧 진심임을 알게 되었고, 어떻게든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빠를 설득시켜 미용 고등학교를 보냈다.
고등학교에 가면서부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중학교 때 곧잘 욕이 튀어나오고 성질을 내던 아이가 밝아졌고 자주 웃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자, 열중하는 모습도 보여 주었다. 실습용 인형 (전문용어를 모르겠으니...)을 몇 개나 사서 커트를 연습하는 그 눈 빛에서 열정을 느꼈다. 고등학교에 이어 미용 전문대에 진학하고 미용실 인턴을 하면서, 힘든 시기를 꿋꿋하게 견디고 이겨내는 모습도 보았다. 어려운 시기를 거쳐 이제 자신의 이름을 걸고 디자이너로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한 걸음씩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지난봄에 1천 일을 넘긴 여자 친구와 결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조금 이르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한 마디 덧붙이지 않고 축하한다고 말해주었다. 좀 더 넓은 세상에서 기술과 경험을 쌓고 싶다는 인생 계획을 얘기하며 결혼을 해서 준비를 시작하겠다는 자신들만의 로드 맵이 있었기 때문이다.
옆에서 경험한 미용 산업은 전반적으로 '구조조정'이 필요한 분야라고 느껴진다. 초창기 어렵게 기술을 배워, 프랜차이즈로 사업을 일군 선구자들이 있지만, 업계 곳곳에는 최저임금 따위 지켜지지 않고, 부당한 근로계약, 임금 체불 등이 여전히 관행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일하는 사람들은 고되고 벌이는 시원치 않은데 소비자들에게는 여전히 서비스 요금이 비싼 분야 가운데 하나이다. 언젠가는 혁신이 시작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창의력과 돌파력을 잠재적으로 가진 우리 애가 미용산업의 혁신에 일조를 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와의 결혼이 그 긴 여정에 첫걸음이 아닐까 기대하며, 진심으로 아들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한다.
* 덧 _ 기환이의 청첩장입니다. 번거로운 주말에 걸음 하기 어려우시리라 생각됩니다. 청첩장 보시고 마음으로 축하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