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꾼들의 아지트 - Bar jinn

동경 식도락 여행기(5)

by 이지선

먹자판 동경 여행에서 물론 밥만 먹은 건 아니다. 좋은 음식이 있으니 술이 따라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맛난 것과 곁들여 깔끔한 사케 한잔 마시면 정말 좋지만 다음 순간 뭔가 부족한 듯 느껴진다. 숙소에 돌아간 들 딱히 할 일도 없어 긴자 골목들을 어슬렁 거리며 2차 장소를 찾았다.


일본은 바(Bar)들이 많고 혼자 가서 한잔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긴자에 왔으니 내가 아는 가장 멋진 바 '커피 바 K' 본점을 찾아가 볼까도 생각했지만, 내가 특별히 그곳의 단골도 아닌데다, 저녁은 숙소 부근에서 그때 그때 결정한다는 나름의 원칙도 있어 가지 않았다. 저녁을 마치고 하루 종일 걸어 지치기도 하여 일찍 쉬어 볼까 생각하고 숙소로 오는 길에 지하에 있는 진(jinn)이라는 바를 발견했다. 삼십 년 애주가(?)의 입장에서 보건대 간판과 입구만 보더라도 술꾼들의 아지트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그런 곳이었다.


자석에 이끌리듯 지하를 내려갔다. 어둠침침한 실내, 주인장은 역시 얼굴에 '나 술 좀 마셔'라고 쓰여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바에는 기모노를 입은 중년 여성과 남성이 앉아 유쾌하게 술을 나누고 있었다. 그 술집에 들어가게 된 건 기모노 입은 여성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뭐랄까, 일본스러우면서도 여장부 같은, 포스가 그대로 느껴졌다.


자리 잡고 야마자끼 위스키와 커피 향이 나는 일본 소주를 시켰다. 음악은 재즈풍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옆 자리 남녀와 마스타의 얘기가 (실제 알아들을 순 없지만) 무척 재미있게 이어졌다. 조금 있다가 직장인으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들어와 우리 옆에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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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사람 얘기가 다 들리지만 누구도 방해받지 않는 공간, 술 먹기 딱 좋은 분위기. 흥에 겨워 위스키와 와인 한두 잔을 더했다.


우리가 술을 더 시키고 편하게 떠들기 시작하자 옆자리에 혼자 온 남자가 어떻게 이 곳에 왔느냐며 말을 건넸다. 십 년 단골인데 외국인을 만난 건 처음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마스타 받아서 가끔 외국인들도 온다고 답을 했다.


뭐 사실 그 바에 간 외국인이 우리가 처음인지 아닌지는 상관없다. 그곳은 관광객들이 좋아할 분위기는 아니었고, 상당히 일본스러웠고, 그러나 술을 부르는 그런 공간이었으니... 저녁 8시나 되어야 문을 열고 29시 (=새벽 5시)까지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이다.


대학교 다닐 때 봉천동에 자주 가던 [레벤디게스]라는 술집이 있었다. 서울대 다니다가 중퇴한 주인 형은 낭만파였고 그 당시 우리보다는 훨씬 나이 많은 어른 이었지만 기분 파에다 결코 철은 들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사람이었다. 생맥주집이었는데 맥주값만 내곤 안주는 화장실 다니면서 말린 콘 한 주먹, 대구포 한두 개씩 집어 들고 와서 해결하던 곳이었다. 세상의 고통을 모두 모아 어깨에 진 듯이, 고민하는 것으로 멋을 부리던, 어릴 적 치기와, 그 나이 때의 낭만이 서려 있던 곳이었다. 오랜만에 전혀 낯선 긴자의 술집에서 내 젊은 날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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