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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선 Jan 26. 2016

나의 운동화 편력기

어려서부터 키가 작았는데 (신기하게도) 한 번도 키 작은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감추려 하지 않았다. 내 키가 153cm라는 것을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었고 작은 키를 덮기 위해 힐을 신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구두를 신을 수밖에 없는 때가 있었고 그런 용도로 구두를 사기는 했지만 그저 검정색, 평범한 것을 골랐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운동화만은 욕심을 냈다. 대학교 때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제일 먼저 호사를 부린 건 하얀색 나이키 운동화였다. 천이 아닌 가죽스런 재질에 빨간 칼 무늬의 신발은, 멋졌다. 보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신발은 신을  때마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그 후로도 몇 개의 나이키 운동화를 더하며 대학 시절을 보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운동화와 잠시 이별했다. 내 맘은 변한 게 없었지만, 나는 그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직장은 보험회사였는데 여직원이 바지를 입는 것도 잔소리하는 상사들이 있었다. 여직원은 '블라우스에 치마를 단정하게 입어야 한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던 고리타분한 시절이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구두를 신어야 했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 '기자'가 되었으나 운동화와 다시 만나지는 못했다. 작은 키에, 어려 보이는 얼굴로 '기자질'을 하기 위해서는 의복이라도 정장을 갖춰야 했기 때문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먹고사는 일이 엄중하여 운동화와 가까워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는 사이 세상도 변했다. 어쩌다가 운동화를 사러 가도 내게 맞는 운동화를 찾기 어려웠다.  그동안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 발이 모두 커졌는지 내 사이즈에 맞는 운동화를 찾을 수가 없었다. 220mm (미국 사이즈 5)의 운동화는 찾기 어려웠다. 대체로 225나 230mm에서 사이즈가 시작됐다. 내가 운동화를 멀리하는 동안, 어느새 그도 나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운동화를 신으려면 깔창을 깔고도 큰 것을 참고 신는 수밖에 없었다. 가끔씩 아동용에서 내게 맞는 신발을 골라 산 적도 있었으나, 유치한 디자인을 참고 신어야 했다.  나도 운동화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애쓰지 않고 점차 소원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다시 운동화와 친해진 건 늦깎이로 유학을 하던 시절이었다. 학생은 무릇 운동화를 신어야 했다! 게다가 내가 유학생활을 보냈던 LA는 5 사이즈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걱정할 것이 없었다.  마음껏 운동화를 고르고 또 색깔 별로 사서 번갈아 신고 다녔다. 


그때 알았다. 운동화는 그저 운동화가 아니라 내 발을 편하게 해 주고, 내 머리까지 자유롭게 풀어준다는 사실을. 정장 입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공식적인 자리나 의전을 중시하는 장소를 좋아하지 않았다. 사실 싫어했다. 어쩔 수 없는 자리에 참석하면서도 가능하면 피하고 싶어 했다. 그건 내 성격이고 취향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과장하자면) 나는 당연히 운동화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운동화와의 오붓하고 행복했던 시간도 잠시, 서울에 돌아와 다시 회사 생활을 시작하자 우리는 다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나이도 먹고 세상을 알게 되어 얼마간의 이별은 견딜 수 있게 됐다. 더 서운했던 건 서울에선 내 발에 맞는 운동화를 찾기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LA에서 산 운동화를 밑창을 바꿔가며 고집처럼 십 년 넘게 신었던 건, 내가 알뜰해서가 아니었다. 그만한 디자인에 내 발에 맞는 신발이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변해서 이제 운동화는 웬만한 자리에서는 결코 어색하지 않은 신발이 되었다. 오히려 잘 골라 신은 운동화는 그 사람의 패션 지수를 높이는 포인트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제 다시 나는 아주 편안하게 운동화를 신을 수 있게 됐다. 서울에 220mm가 없으면 어떠랴! 직구를 하면 되는 것을. 내가 아마존에서 산 아이템이 책 보다 운동화가 더 많을 것이다. 계절에  한 번씩 아마존에 들어가 운동화를 검색하는 것은 내 습관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내 페이스북  오른편에는 늘 운동화 광고가 뜬다) 


이제는 좀 더 편안하게 일하다 보니 지난  늦가을부터는 운동화만 신었다. 어쩌면 이제는 구두를 신고 하루를 다닐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오래 멀어졌던 운동화와 방해받지 않고 만남을 이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에 멋진 운동화를 하나 득템했다. 스위스의 기능성 신발인 '조야(Joya)'(홈페이지 http://joya.co.kr/)라는 브랜드다. 처음 듣는 브랜드이지만 '편안한 걸음걸이'를 위해 탄생했다고 한다. 독일에서는 척추에 좋은 신발로 인정도 받았다니, 뭔가 좋은 것 같다. 이제 건강을 생각할 나이라며 후배가 추천해줬다. 

 


사실 내겐 척추건강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디자인을 보고 골랐다. 과하지 않게 반짝 거리는 게 맘에 든다. 물론 신발의 '기능'을 중요하게 생각하진 않지만 신어서 발이 편해야 하는 건 기본이다. 며칠 신어보니 과연 가볍고 편안했다.


봄이 오면 하얀 운동화에  도전해봐야겠다. 편안한 신발 신고, 좀 더 편안하게 일상을 움직여 보아야지. 발이 편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덩달아 머리도 편안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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