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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산진의 요리왕국

깐깐한 미식가의 요리에 대한 생각

by 이지선

먹방, 쿡방의 시대라고 해서 그 어느 때보다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하긴 '맛집'을 찾아다는 게 큰 낙인 시대가 되긴 했다. 그런데 왜, 주변에 갈 만한 식당이 없어지는지 모르겠다. 검색 리스트에 오른 소위 블로거 맛집을 찾았다가 실망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상한 재료들을 배합해서 '신기한' 음식을 만들어 음식 또한 단기간 마케팅으로 이용하는 예가 너무 많다.


얼마 전부터 '나카무라 아카데미'라는 곳에서 기본적인 요리법을 배우고 있다. 요리 강좌는 내 요리 실력을 향상시켰다기보다는 음식을 만드는 것에 대한 생각을 가다듬게 했다. 첫날 다시 내는 법을 배우면서, 음식 만들기에 '기본'에 충실하지 않았던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내 성격이지만 뭔가 시작할 때 책부터 산다. 책을 통해 기본 지식을 이해하면 훨씬 더 주제에 다가가기 쉽게 느껴진다. 요즘 요리에 관한 책을 꽤나 많이 샀다. 레시피를 담은 책도 있었고 [음식과 요리]라는 1천 페이지가 넘는 학술서적에 가까운 책을 샀다가 엄두도 못 내고 있기도 하다. 많고 많은 요리 관련 책 가운데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 [로산진의 요리왕국] (기타오지 로산진 지음, 안은미 옮김/정은문고 201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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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산진(1883~1959)은 일본의 서예가이며 도예가이지 요리인으로 알려졌다. 여러 방면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고 특히 미각이 발달해 요리를 하나의 종합예술로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25년에는 도쿄에 회원제 식당까지 운영했다고 한다. (언젠가 여건이 허락한다면 꼭 해보고 싶은게 바로 회원제 식당인데...)


이 책은 그가 쓴 글과 강의 내용 등을 엮은 것이다. 여러 곳에 게재된 글과 강연을 묶어서 다소 산만한 측면은 있다. 하지만 글을 읽다 보면 음식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요리란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인지 그 진심을 충분히 전달받을 수 있다.


그의 글은 까질 하기 짝이 없다. 실제로 만날 순 없지만 아마 대단히 직설적이고 자기 고집이 강했던 사람인 듯하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돌직구 그대로 요리에는 정성과 친절을 담아야 한다는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한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첫 번째가 재료가 좋아야 한다는 것, '요리법'에 집착하기보다 음식 만드는 일을 대하는 마음 가짐이 중요하다는 점, 그리고 더 좋은 요리를 만들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가르침이다.


책 가운데 마음에 드는 구절 몇 가지를 소개한다.


- 요리의 첫 번째 수는 좋은 재료를 얻는 것이다. 좋은 재료가 9할이다. 그리고 무작정 '도미는 커야 하고, 살아있는 것이 좋다'는 식의 고정관념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좋은 재료를 얻기 위해서는 계절의 흐름도 알아야 하고 토양의 특성도 이해해야 한다.


- 세상의 존재하는 식재료는 하나하나 모두 독자적인 본연의 맛을 지니고 있다. 모든 재료는 본 맛이 있고, 그 맛은 다른 재료로 대체할 수 없다. 요리란 결국 재료의 본 맛을 살리는 일이다.


-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먹이사슬의 본 맛 하나하나는 안타깝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의 잔꾀로 모조리 망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설탕을 함부로 쓰면서 본연의 맛을 파괴하고 본질을 엉망진창으로 만든다. 설탕만 넣으면 맛있다고 믿는 오늘날 요리는 미각의 저하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외식사업가로 성공한 백 모씨를 떠올리게 되는 구절이다. 난 사업가로 백 모씨를 좋아하지만 그의 식당은 별로 가고 싶지 않다. -_-)


- 공자가 말했듯, 먹고 마시지 않은 이가 없건만 맛을 아는 이는 드물다.


음식을 만드는 일, 식재료를 다루는 일, 먹을 것을 대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늘 진심을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이 진심은 '상업성'과는 단기적으로는 반비례하는 개념이다. 늘 진심을 담으면 마진이 떨어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일을 하는가를 생각하면 마땅히 해야 하는 도리를 저버리면 안 된다. 짧은 동안 배우고 느꼈던 업에 대한 접근법을 깐깐한 미식가의 책에서 발견하니, 반갑고 고마웠다.


저자의 식견 때문인지 번역가의 솜씨인지 이 책은 술술 읽힌다. 그러나 한 번 읽고 마는 책이 아니라 곁에 두고 가끔씩 찾아봐야 할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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