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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선 Jun 06. 2016

짜장면 한 그릇의 교훈

미물일기 (6)

효창공원 옆에 위치한 '신성각'은 짜장면이 맛있기로 유명한 집이다. 일 년 전 수요미식회에 소개된 후 알게 됐는데 그때는 찾아간 날이 휴일이어서 허탕을 쳤다. 짜장면이 맛있어 봤자... 하는 마음으로 잊어버리고 말았는데 오늘 문득, 생각이 나서 점심시간에 다녀왔다. 


신성각은 테이블이 4개밖에 안 되는 아주 작은 가게이다. 삼십 년이 넘은 노포인데 맛을 아는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유명해진 곳이다. 오늘이 공휴일이라서 또 혹시 허탕을 치는 게 아닌가 싶어 전화했더니 자동응답기가 받았다. 11시 37분부터 영업을 시작해서 재료가 떨어질 때까지만 운영을 하며 일요일과 신정연휴에는 쉰다는 안내 후 자동으로 끊어졌다. 오늘은 '일요일'은 아니니.. 속는 셈 치고 가보았다.


끊이지 않을 정도로 기다리는 줄이 있었지만 또 줄이 길게 이어지지 않고 바로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5분쯤 기다리다 작은 가게, 작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부부로 보이는 두 분이 운영하는 가게는 그야말로 오래된 낡은 식당이었다. 메뉴도 짜장면, 간짜장, 짬뽕, 군만두, 탕수육 등 몇 개 되지 않았다. 


'카드를 받지 않고 배달 및 포장이 안되며 술을 주문할 수 없다'는 불친절한 손글씨 안내문이 한쪽 벽 면에 붙어 있었다. 주방에는 아저씨가 계시고 홀은 아주머니가 담당한다. 주문을 받으면 그때 그때 국수를 수타로 만드시는 모습이 보였다. 


옛날 영화의 장면 같은 식당의 모습. 한 참 기다려서야 주문한 간짜장과 군만두가 나왔다. 


누군가 이 집의 짜장면 맛을 '짜장면의 평양냉면' 같다고 표현했다고 들었는데 적절한 비유였다. 다른 중국집에서 먹던 짜장면과는 과연 맛이 달랐다. 달지도 않고, 면은 (강화제를 넣지 않고) 밀가루와 물로만 반죽해서 잘 끊어진다. 부추와 양파를 달지 않은 춘장에 볶은 맛. 독특한 짜장면 맛이었다. 마치 야채 춘장 볶음에 면을 곁들여 먹는 느낌. 



양껏 짜장면을 먹었다. 색다른 맛인데, 가볍게 유혹하는 맛이 아니었다. 젊은 처자의 눈웃음치는 화사함이 아니라 삼십년 면벽 수도한 스님의 보일 듯 말 듯한 편안한 미소라고나 할까. 보통 다른 집에서 짜장면을 먹으면 단맛에 질리기도 하고 속이 더부룩해지기 쉬운데, 한참을 먹었는데도 편안한 맛이었다. 


함께 먹은 군만두 피도 독특했는데, 그다지 감탄 스런 맛은 아니었다. 


짜장면을 이렇게 감탄하며 먹은 것은 처음이었다. 


식당 아줌마 답게 대략 하루 매출과 이익을 생각해보았다. 분명 유명 맛집이지만, '대박'이 나는 집은 아니겠다 짐작이 되었다. 


대신 매일 재료 준비를 해서 정해진 시간에 문을 열고 재료가 떨어질 때까지 한 그릇 한 그릇 정성껏, 그것도 힘들게 국수가닥 뽑아서 면을 준비하는 주인 어르신 부부의 정성이 짜장면 가닥과 함께 마음에 쌓였다. 짜장면은 가장 흔한 음식 중 하나다. 배달 음식으로도 넘쳐나고 간단하게 한 끼 때울 때 생각나는 음식이다.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얄팍한 입맛에 맞추기 위해 더 달아지고 더 느끼해지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그런 속에서 좀 더 건강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삼십 년 넘게 지켜 왔다는데, 정말이지 존경의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왔다.


내가 식당을 시작하면서, 다른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불편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좀 더 이익을 내기 위해서, 혹은 좀 더 쉽게 가기 위해서 음식을 제대로 만들기보다는 보이는 것만 그럴싸하게 모양내는 식당이 너무 많다고 느꼈다. 그래서 갈수록 간은 세지고 맛은 강해지며 '퓨전'이라는 이름 하에 이것저것을 말도 안 되게 섞은 음식들이 너무 많아지는 게 싫었다. 기본기에 충실한 식당을 만들고 싶다는 게 평소 내 꿈이었는데, 오늘 신성각에서 닮고 싶은 롤 모델을 보았다. 


가끔 토요일에 점심 먹으러 가게 될 것 같다. 짜장면 한 그릇에 너무 많은 것을 배웠다. 천천히 소화시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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