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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선 Jun 02. 2016

입장 바꿔 생각해 봐

미물일기 (5)

# 1. 김건모는 노래했다.

'이런저런 핑계 대지마. 입장 바꿔 생각해 봐. 니가 지금 나라면 넌 웃을 수 있니...'


세상을 "잘" 살기 위해서 절실하게 필요한 건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는 공감 능력이다. 상대를 이해할 수 있으면 내 마음이 덜 괴롭고 더 기쁠 수 있다. 일을 할 때도 더 쉽게 풀릴 수 있고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그럼에도 대개 사람들은 입장 바꿔 생각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싫어한다. 어려운 일이니 입장을 바꿔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로 가고 싶어 한다. 흔히 말하는 '갑'의 위치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양 쪽 끝에서 줄다리기 끈을 잡고 있다. 이쪽의 미세한 움직임이 저쪽으로 전달되는 구조다. 원래 줄다리기야 힘으로 상대를 넘어 뜨리면 되는 것이지만 세상살이는 그렇지 않다. 줄 끝에 있는 상대를 잘 이끌어서 함께 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상대를 넘어 뜨리고 나면 다시 내 줄을 잡아 줄 사람을 찾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 2. 나는 체구도 작지만 워낙 식사량이 적어서 어딜 가든 1인분으로 주어진 식사를 다 먹지 못하고 남긴다. 밥뿐 아니다. 커피도, 음료도 내 작은 위에는 너무 양이 많아 남기는 일이 허다하다. 우리 나이 때에는 밥 남기는 것을 죄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나는 스스로를 위로하며, 왜 식당에서 곱빼기는 팔면서 절반 양은 팔지 않는 거냐며 밥 남기는 핑계를 대었다.


식당일을 하면서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을 치울 땐 뭔가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대신 조금을 넘어서 절반 가까이 음식을 남긴 모습을 보면 급 우울해진다. 음식이 맛이 없었을까 하는 걱정이 그 첫째이지만 모든 것을 떠나 음식이 잔뜩 남은 그릇은 기운을 뺀다. 


문득 예전에 내가 남긴 그릇을 치우며 많은 사람들이 기운 빠져했겠구나... 생각하며 반성했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니 인과응보랄까.. 남은 음식 치우는 수고를 많이 끼쳤으니 이렇게 갚게 되는구나 싶었다.


# 3. 예전엔 내가 친구들이나 지인들 중에 '맛집 꽤나 다녀본' 축에 속했다. 분위기 맛 괜찮다는 맛집 얘기를 들으면 꼭 가보고 친구들에게 추천할 것인지를 내 나름의 기준으로 정하는 편이었다. 친구들도 내게 적당한 식당 추천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예약할 일도 많았었는데, 나 만의 꼼수도 있었다. 원래 인원보다 1, 2명 정도 넉넉하게 예약하는 것이다. 특히 2명이 갈 때는 좁은 2인 테이블에 자리를 줄까 봐 3인으로 예약을 하곤 했다. 


식당을 해보니 나뿐 아니라 꽤나 많은 사람들이 그런 꼼수를 쓰고 있었음을 알게 됐다. 2명이 오면서 3인으로 예약을 하거나 6자리 예약하고 4-5명 오는 정도는 그러려니 할 수 있다. 10명 예약에 6명이 온다든지 할 때는 정말 난감했다. 우리 식당에서는 열 명 정도 예약을 하면 아예 한쪽을 일렬로 테이블을 붙여서 세팅을 한다. 그렇게 여섯 명이 앉으면 네 자리를 빼서 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도 수를 줄여 와주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며칠 전 6명 예약하고 이른바 '노 쇼(no-show)'가 있었는데 좀 황당했다. 30분이 지나 전화했더니 회식장소 바뀌었는데 연락을 못했다고... 


줄을 맞잡은 저쪽 편에서 세상을 바라보니 이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많은 것들이 보였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기란 그래서 중요한 것 같다. 늘 식당 손님으로 가다가 손님을 맞는 위치로 오고 보니, 느끼는 것이 많아 다른 일에 대해서는 입장 바꿔 생각해보는 일이 늘었다. 


# 4. 세상에는 살면서 한 번도 입장 바꿔 생각해볼 필요가 없는, 없었던 위치의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평생을 공주로 살아왔다거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평탄하게 살아 본 사람들 말이다. 심하게 배고파 봤다거나 세상 일이 될 듯 될 듯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 포기하기까지 마음을 졸여 봤다거나 하는 세상의 어려운 일을 별로 겪지 않았던 사람들은 '입장 바꿔 생각하기' 근육이 쇠퇴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입장 바꿔 생각하기 어려워진다. 


사실 난 평탄한 인생을 산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매력이 없다. 그들이 가진 것들이 그다지 부럽지도 않다. 귀공자처럼 생긴 사람보다 눈매가 날카로운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건, 내 취향이다. 


얼마 전 안철수 대표가 지하철역에서 스크린 도어 공사를 하다가 사고당한 젊은이를 위로하면서 트위터에 올린 글로 비난 세례를 받은 적이 있었다. 안 대표를 예전에 기자 시절 인터뷰했던 적도 있는 터라 야박하게 얘기하고 싶지 않지만 그는 '입장 바꿔 생각해볼 필요가 없었던 사람'의 전형이다. 나쁜 의도는 없었겠지만 공감을 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감동을 주기는 어렵다. 


# 5. 나이 오십이면 인생에서 배울 만큼 배우고 느낄 만큼 느낀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다. 요즘 내 배움의 원천은 '입장 바꿔 생각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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