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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선 Aug 17. 2016

나는 매일 칼을 간다

미물일기 (9) 스테이지원을 준비하며

미친물고기 식당을 하겠다고 생각했을 때, 아니 앱을 만들 때부터 언젠가는 내가 생선회를 직접 뜨는 법을 배우겠구나 생각했었다. 그건 대단한 예지력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나 자신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잘 모르거나 확신이 서지 않으면 너무나 불안해진다는 것. 그래서 뭔가를 배우려 하고 내가 잘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반문하는 게 내 성격이다.


횟감을 잘 다루기로 따지면 노량진 수산시장의 협력사인 영광수산 사장님만한 분이 없을 것이다. 삼십여 년의 경력을 따라갈 수는 없을 테다. 단순히 횟감을 손질하는데만 초점을 맞추면 얼마든지 사람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횟집사장'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으면서도 생선을 다루지 못한다는 것은 늘 나를 불안하게 하는 일이다. 내 안에 스스로에 대한 불안감이 있으면 난 아마도 이 일을 오래 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래서, 본격 무대에 오르기 전에 요리의 기초를 배우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요리학원을 등록 했다.



일본 요리 학원에서 첫날 가장 먼저 매우는 것은 칼 가는 법이다. 회를 뜨는데 칼의 성능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 그래서 매일 요리를 시작하기 전에 15분 정도 칼을 간다. 하지만 칼을 가는 것은 단순히 기능적인 의미만을 갖지 않는다. 칼을 갈며 마음을 정리하고 차분하게 요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준비시키는 것이다. 단순 작업을 반복하면서,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를 생각하고 오늘 배울 것에 대한 기대를 정돈시킨다. 놀라운 일이지만 직접 해보니 칼 가는 일에 이처럼 심오한 뜻이 담겨 있었다.



첫 날, 광어회 뜨기를 배웠다. 생선을 다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 번에 척추 끝을 찍어 눌러 숨을 멎게 하고 피를 잘 빼야 좋은 횟감으로 다듬을 수가 있다. 사실 나도 놀라웠다.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뼈를 발라내고 비늘과 껍질을 벗기고 포를 뜨는 작업 하나하나가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이다. 그동안 내가 집에서 즐겨했던 예를 들어 전을 부친다던가 고기를 재서 굽는 것보다는 훨씬 정성이 필요했다. 초밥 만들기는 더욱 그러했다.


요리 실습 세 번째에 초밥을 만들었다. 모든 수강생들을 격려하는 것은 선생님의 몫인지라, 나를 가르치는 선생님도 '센스 있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하지만 듣는 나는 의례 하는 말로 여기지 않았다. 나는 칭찬에 가슴이 뛰고 무대에서도 잘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아, 정말 배우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몇 번이고 했다.



배움은 깨우침을 준다. how to를 배우면서 때론 생각하는 방법까지 깨친다. 그리하여 가장 중요한, 자신감을 던져 준다. 물론 자신감을 찾아내는 건 배우는 자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미친물고기 백스테이지 운영 네 달만에 본격 무대인 스테이지 원을 열기로 결정했다. 두번 째는 조금 쉬울 거라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처음만큼이나 힘든 작업이다. 첫 번째를 했던 경험이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그때는 생각 못했던 어려움이 이미 버거울 만큼 쌓여 있다.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제는 무대에 설 때이다. 친한 인맥으로 손님 만들기도 아니고 경력의 특이함으로 주목받는 것도 할 만큼 했다. 오직 맛과 서비스로 청중석에 앉은 고객과 마주할 때다.


매일 칼을 갈면서, 무대에 오르기 전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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