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물일기 (8) 이상한 횟집 주인의 변명
횟집에 가서 회를 먹은 후에는 살을 발라낸 머리와 뼈 등 서더리로 끓인 매운탕을 먹는다. 국물을 좋아하는 우리네 식습관에 덧붙여 늘 그래 왔으니 하는 관성 때문에 횟집에서는 매운탕이 생각나기 마련이다.
미친물고기 백스테이지를 운영하면서 초기에는 노량진 수산시장 식당 스타일로 열심히 매운탕을 끓여 내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난 매운탕 끓이기가 싫어졌다. 정말 큰 일 날 소리다. 횟집의 연관 주제어인 '매운탕'이 끓이기 싫다니 횟집 주인의 직무유기일 듯.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식당을 운영하면서 가장 기분 좋을 때는 손님들이 우리 집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 이왕이면 남기지 않고 그릇을 비우는 것이다. 그런데 매운탕은 끓이기는 상당히 번거로운데 이미 그득하게 다른 음식들을 먹고 마무리로 먹는 음식이어서 그런지 절반 이상을 남겼다. 매운탕 냄비를 설거지 하는 일은 다른 것의 두 배, 세 배의 노력이 드는 일이다. 우수수 부서진 뼛조각과 살 조각, 무른 야채들 음식물 쓰레기의 양이 장난 아니다. 물론 이 모든 수고를 다하더라도 모두들 맛있게 드신다면 보람이라도 느꼈을 텐데... 기껏 한 냄비 끓여 절반 이상 남은 음식물 쓰레기를 치우는 일은 고역이었다.
그리고 또 이건 억지일 수 있겠지만 서더리 위주로 끓인 매운탕에 맛을 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다시마나 멸치 육수를 내고 야채를 충분히 넣지 않으면 제 맛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오래 끓여야 하는데 그럴 여건이 안 되는 경우 이런저런 재료들이 서로 겉도는 맛을 가리기 위해 보통은 MSG, 인공 조미료를 넣는다. 그런데 나는 조미료 넣은 음식이 싫었다. 개인적으로 식당을 운영하면서 '내가 먹어도 맛있는 음식만을 낸다..'는 개똥철학, 혹은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미료를 넣고 싶지는 않았다. 우선, 우리 식당에는 조미료가 없었으니...
사실, 생각했던 것보다 매운탕을 찾는 손님들도 그리 많지 않았다. 생선회와 매운탕을 곁들여 먹는 노량진 수산시장 내 식당들과 달리 미친물고기 백스테이지에는 자체 개발 해산물 메뉴들이 있어서 생선회와 함께 먹으면 충분히 배가 불렀다. 거기에 매운탕 한 그릇을 더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사람들도 꽤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국물로 마무리를 하고 싶다는 손님들의 요구는 만족시켜야 했다.
나의 대안은 해물라면. 원래 점심, 저녁 메뉴를 다르게 운영하고 있었지만 예외적으로 점심 메뉴인 해물라면을 저녁에도 준비했다. 손님들의 반응은 훨씬 좋았다. 매운탕 한 그릇이 부담스러운 마무리 타임에 해물라면을 여럿이 나눠 먹으면 깔끔하게 정리되는 맛이 있었다 (솔직히 우리 집 해물라면이 좀 맛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물과 '탕'을 찾는 고객들이 있다. 마치 매운탕 없는 횟집이 과연 횟집으로 자격이 있는지 묻는 듯했다. 내 대안은 '해물탕'이었다. 개인 취향의 문제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미더덕과 조개, 새우, 낙지, 꽃게 등을 넣어 끓이는 해물탕이 생선 뼈로 끓인 탕 보다는 국물이 시원하고 맛있다. 해물탕이면 굳이 조미료 넣지 않아도 조화로운 맛을 내었다. 물론 여전히 우리 집 해물탕이 싱겁다며 라면을 주문해 수프를 넣어 드시는 고객도 있다 (나빠요... -_-). 그럴 땐 나는 무척 슬픈 표정으로 행복해하는 손님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다.
식당은 마땅히 고객이 찾는 음식을 맛있게 제공해야 할 소명이 있지만, 가끔 내 취향과 맞지 않을 땐 갈등도 생긴다. 식당 운영 초보자의 배부른 소리인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정도의 밀당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