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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세번'으로 탄생한 스테이지원

미물일기(10) 미친물고기 스테이지원 오픈 일지

by 이지선

한 번 해본 일은 쉬울 줄 알았다.

'아무것도 모르고도 한 번 했는데, 그래도 경험치가 쌓였으니 훨씬 쉽겠지...'라고만 생각했다.


미친물고기 Backstage를 열고 5개월, 주변 오피스 빌딩에서 늘 찾아 주는 단골도 생겼고, 단순한 레시피에 순한 맛을 좋아하는 손님들도 많았다. 시험 삼아 시작했던 Backstage에서 한걸음 나아가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다음 순간은 'easysun표 실행력'을 앞세워 거침없이 식당 공간 확보하고 인테리어 업체를 찾았다. 지하 죽어가는 공간을 화사하게 바꾸는 일도 쉽지는 않았지만, 그때까지의 어려움은 그래도 조금만 노력하면 해법이 보이는 문제였다.


가장 힘든 건 '사람'이었다.


9월 초부터 모집 공고를 내고 이력서를 뒤적였다. 백스테이지는 정말 요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시작했기 때문에 경력자를 뽑는데 초점을 맞췄다. 의외로 정말 마음에 드는 사람들을 (그것도) 둘이나 뽑을 수 있었다. 추석 지나고 출근한 후 메뉴 점검하고 9월 말 오픈하는 일정을 짰다. 그때까지는 정말 어려움을 몰랐다.


그런데, 미친물고기의 시즌 2를 화려하게 시작할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던 주방인력 캐스팅에 문제가 생겼다. 미국 일식집에서 일했던 A 씨는,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 못 오게 됐노라고 문자로 통보했고 외식업계 스타트업에서 일한 경험이 있던 B 씨는 하루 일해보고는 '다시 시작하는 일을 내가 사랑하면서 다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남기고 그만두었다.


다시 이런저런 구직 사이트에 올라온 이력서들을 벼 이식 줍듯이 훑었고 어찌어찌 2명을 뽑을 수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면접 일정 잡고 안 오는 친구들이나 출근하기로 결정한 날 아침에 문자로 일을 못하겠다고 통보한 사람들은, 그냥 잊기로 하자. 집이 인천이지만 차가 있어서 큰 걱정은 되지 않고, 미친물고기가 자신의 새로운 진로에 딱 맞는 곳이라고 흔쾌하게 얘기했던 C 씨는 결국 출근 삼일 만에 역시 집이 멀어서 안 되겠다는 말을 남겼고, 입사 첫날 바닥청소에 온갖 구석 먼지까지 털던 D 씨는 그나마도 이유도 밝히지 않고 그만두며 며칠 일한 일당을 언제 보낼 거냐고 문자를 보내왔다.


그러는 사이 이주일 정도 식당 오픈은 늦춰졌다. 사실 오픈이 열흘 넘게 늦춰진 건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계속 뽑아놓으면 며칠 일하다 그만두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 것일까'를 되새기며 지냈던 날들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사실 C와 D가 함께 의논하여 그만두었을 때 뒤통수를 맞은 듯 머리가 띵했는데 그다음 발걸음을 어디로 해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자신감이 바닥을 치는 경험이랄까...


아무리 어려운 일을 겪어도 어쨌든 나는 일상을 살아 내야 했다. 또 구인구직 사이트를 뒤적이며 엄청난 양의 이력서를 보았고 그 가운데는 친숙한 이력서도 생기게 되었다. 그렇게 다시 팀을 꾸렸고 세 번째 팀으로 스테이지 원을 오픈했다.


오픈 일주일째, 이제 본격적으로 무대에 올라 미친물고기의 이야기를 펼칠 수 있게 됐다.


힘들었던 '오픈 사태'를 겪으면서 또 몇 가지를 배웠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일상은 계속된다는 것.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에 마음은 너덜너덜 상처를 입었는데, 그래도 내가 해야 할 일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는 것. 처음 A, B를 뽑을 때에 비해 세 번째 팀에서는 뭘 기준으로 삼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떤 사람을 뽑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 황당함도 겪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닌 척해야 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언제라도 평상심을 유지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력서를 몇 백통을 보다 보니 느껴지는 것도 생겼다. 이 시대의 코드는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는 않는다는 것. 내가 배웠던 것과는 정말 다른 가치관이다. 우리는 오늘 힘들어도 내일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절대 선이라고 배웠는데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 열심히 노력해서 찬란한 미래를 만들어 보자. 그러면 너는 경제적 이익뿐 아니라 성취의 기쁨도 느끼게 될 것이다'라는 말이 하늘의 달을 따다 준다는 말만큼이나 현실 감 없이 들린 다는 것. 우리 세대는 힘들게 현재를 희생하면 더 나은 미래가 온다는 것을 보고 듣고 자란 반면 요즘 젊은이들은 그렇지 않을 테니 그들을 원망하거나 할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현재를 막사는 젊은이들은 없다. 다들 뭔가를 모색하고 최선을 다해 자신을 가꾸려 노력한다. 내가 익숙지 않았던 건 말하는 방식이었다.


오픈하고 주말에는 정말 무기력하게 침대와 친구가 되어 시체놀이를 했다. 꼬박꼬박 졸면서 나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래, 이렇게 나는 무대에 섰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결국 좀 더 편안한 무대를 만들었고 그 자리에 섰다. 이제 정말 건강하고 쿨한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다.


고생했다. 우리 삼세번 팀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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