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물고기 (11)
여름이니 민어를 팔고 싶었다. 살 오른 민어에서 느낄 수 있는 깊은 맛, 과연 생선회의 으뜸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판매자의 입장에서, 더구나 작은 규모 식당에서 민어는 다루기 까다로운 식자재이다. 대체로 생선이 그런 편이지만 민어도 커야 맛있다. 최소 5 킬로 넘어야 풍미가 깊어진다. 그래서 5킬로 전후로 1킬로당 가격이 달라진다. 3 키로 정도의 민어 값이 100이라면 5킬로 넘는 것은 150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이게 킬로당 단가이다 보니 6킬로쯤 되는 민어를 사면 그 가격의 차이가 훨씬 더 벌어진다. (3킬로 2마리는 600이지만 6킬로 민어는 900)
6킬로 정도의 민어를 구매하면 대략 수율이 45~50% 정도이므로 생선살 만은 3킬로 정도. 미친물고기 모듬회 기준으로 20인분 정도 되는 양이다. 문제는 수요 예측인데 민어는 그 맛을 아는 사람들이 여름 한철 (큰 맘먹고) 먹는 생선인데 아무리 광고를 해보아도 미친물고기에 사람들이 민어 먹기 위해 줄을 설 것 같지는 않았다. 민어 전문점도 아니니 말이다. 물론 민어는 충분히 숙성시킬수록 그 맛이 깊어져 2-3일은 회로 팔고 전감으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지만 만약 재고가 많이 남으면 다른 생선에 비해 크게 손해를 보게 된다.
민어를 좋아하는 소비자 입장에서도 민어는 선택에 제약이 있다. 민어 전문점을 가자니 민어회 / 전 / 탕을 합쳐 1인당 7만 원 이상은 줘야 한다. 물론 민어 전문점은 큰 생선을 쓰고 잘 손질해서 제공하니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대개 민어 전문점의 민어회 양은 안습이다. 회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시식한 수준일 뿐이다. 다음으로는 수산시장을 찾아 회를 뜨고 식당에서 먹을 수도 있다. 널리 이용되는 방법이지만 이 또한 해 본 사람은 안다.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든다. 횟값은 전문점에 비해 월등히 싸지만 역시 민어는 다른 생선에 비해서는 결코 싸지 않다. 게다가 수산시장 식당에서의 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 기본 상차림 1인당 몇천 원에 전감을 가져가도 부쳐주는 조리비 1만 5천 ~ 2만 원, 탕 조리비 2만 원 이렇게 가랑비에 옷 젖다 보면 합산으로는 원래 생각을 웃도는 금액이 나오기 일쑤다. 그래서 민어 애호가들은 하루 날 잡고 10명 이상 모아서, 1인당 회비 갹출해서 수산시장을 가든, 아는 횟집을 전세 내서 민어를 주문하는 방식을 택한다. 번거로우니 자주 하기 어려운 일이다.
미친물고기 식당을 처음 연 지난해 여름에는 민어를 잘 팔지 못했다. 손님이 언제 와서 민어를 찾을지 몰라 미리 구매하기 어려웠고 예약주문만 받는다고 했지만 그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자, 올해는 어떻게 해야 하나. 마치 '여름철 회 덕후들에게 맛있는 민어를 먹일 역사적 사명을 띤 것'처럼 고민했다. 일단 공동구매 형태를 생각해냈다. 미리 주문을 받아 수요를 예측해서 판매하면 큰 민어를 살 수 있을 것이었다. 공동구매에 참여하는 소비자의 혜택은 당연 가격이 싸다는 것이었다.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민어 가격을 예측하고 100g 당 가격을 산정해냈다. 초복부터 말복까지 민어 가격은 널을 뛴다. 하루 상관에 3, 40% 이상 가격이 오르는 것은 다반사이다. 그렇다고 가격이 오를 것을 감안해 가격을 산정하면 공구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터였다. 이런저런 거 다 따지다 보면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그래, 해보는 거다.
그렇게 민어계를 시작했다.
http://crazyfish.info/221045909095
페북에도 올렸다. 반응은 고무적이었다. 회 덕후의 한 사람으로 고민한 흔적이 배어 있는 프로모션이니까. (^^) 하지만 바로 주문이 오지는 않았다. 이리저리 어찌어찌,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지더니 처음 시작한 목, 금, 토 매일 민어를 한 마리씩 잡고 있다.
민어계 하면서 많이 배웠다.
첫째, 역시 해산물은 제철이다. 모든 음식이 그러하지만 생선회나 해산물은 더더욱 그렇다. 미친물고기를 시작할 때 제철 생선을 맛있게 공급하는 게 목표였지만 식당 운영에 연연하다 보니 원래 생각했던 것을 실현하는데 소홀했다. 식당은 안정적인 식재료 공급이 핵심이다. 제철/자연산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찾아보고 고민해야 한다. 식재료만 구한다고 다가 아니다. 식당에서 팔 수 있는 레시피로 조리를 해야 하는데 이 것 또한 쉽지 않다. 자연스레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는 식재료에 의존하고 변화를 두려워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재미없어진다.
민어계를 하면서 '제철'에 대한 사람들의 요구를 다시 한번 느꼈다. 다시 회 매니아의 서비스인 미친물고기의 초심으로 돌아가야겠다는 결심!
둘째, 지인 찬스는 위대하다. 민어계를 알리고 이틀 동안 주문이 오지 않았다. 아, 망했구나. 그동안 자주 하지 않았던 지인 찬스를 발동했다. 찬스라기보다는 애걸복걸이라고 해야 할까. 그동안 부담스러울까 연락하지 않았던 친구, 선배 그룹에 굽신굽신 민어계를 시작했으니 부디 관심 가져달라고 부탁했다. 직접 메시지도 보냈다. (민어를 먹어달라고 메시지 받으신 분은 회덕후 이거나 저와의 친밀도가 아주 높으신 거임^^) 역시 주변의 회 덕후님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소개받아서 민어계에 참여하는 사람까지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굽신 모드로 메시지를 보냈지만 이건 결코 강매는 아니다. 유유상종이라고... 내 주변에는 '여름철 민어 한번 먹고 넘어가야 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좋은 생선 가져다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먹이고 싶은 마음일 뿐이다. 부수적으로 오랜만에 선후배 얼굴을 보는 이득까지 얻을 수 있었다.
셋째, 역시 나는 저지르는 게 취향에 맞다. 요즘 여러 가지로 고민도 많고 일도 많고 복잡 복잡하던 터였다. 인생의 어느 한 구절 고민이 없었던 적이 없었지만 특히 요즘은 극에 달한 느낌이었다. 판교와 여의도를 오가며 지식노동과 자영업을 밤낮으로 번갈아 하는 매우 복잡 다난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 잠깐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이기도 했는데 머리 속으로만 고민을 쌓아 둘 것이 아니라 뭔가 움직이고 해보고 하면서 활력을 얻는 것 같다.
민어계 주문하러 가기. https://goo.gl/forms/IL649qJ5RV3EbDfh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