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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가 흐르는 횟집

미친물고기 (12)

by 이지선

식당 운영한 지 일년쯤 되다 보니 단골이 생겼다.


엊그제 오셨던 단골 A님. 부산이 고향이신 이 분은 가끔 광어와 도미를 헷갈리기는 하지만 해산물을 좋아하시는 것만은 틀림없다. 장안에 유명하다는 해산물 집은 줄줄이 꿰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분이 우리 집을 좋아한다는 건 그야말로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늘 후배들과 함께 오신다. 자신의 무용담으로 대화를 주도해나가는 '꼰대' 스타일인건 맞는데 그래도 재치있는 유머도 풀어 놓을 줄 알고 후배를 치켜 세울 줄도 안다. 그래서 A님 테이블은 늘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A님이 우리 식당에서 제일 좋아하는 건, (본인 표현으로는...) 말도 안되지만, 식당에서 나오는 음악이다.

"난 이집 노래가 참 좋아! 재즈가 흐르는 횟집이라니..!"

라며 감탄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음악 카페도 아닌데 음악 재생목록으로 고객을 감동시키는 이 신박함이란...


우리 식당 재생목록은 일반적이지는 않다. 이자카야 스타일의 J 팝도 아니고 신나는 아이돌 음악은 더욱 아니다. 주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 중심으로 재생목록을 넣었다. 비틀즈, 비지스, 카펜터즈에서 아델, 마룬5까지 시대와 장르를 넘나든다. 그래도 기준은 있다. 단 한가지 - 한글 가사를 제외한 음악이다. 식당 재생목록은 11시 점심 준비시간부터 밤 11시까지 무한 반복을 계속한다. 어쩌다 오시는 손님들은 흘려 버리는 음악이지만 식당 사람들은 늘 듣게 된다. 처음엔 한국 노래들이 많았다. 그런데 무의식적으로 들어도 가사가 귀에 박히는 한국 노래들을 무한반복으로 듣다보면 음악이 들리지 않아도 귓전에 노래소리가 빙빙 도는 경우가 허다하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임창정의 [소주한잔] 꺽어지는 소리와 세상을 달관한 듯한 김광석 목소리가 귀 언저리를 떠나지 않아 숙면이 힘든 적도 있었다. (두 가수 모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지만 자장가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_-) 그런 이유로 식당 재생목록은 노래 가사가 귀에 박히지 않는 '외국'음악으로 한정한다.


어떤 공간을 채우는 음악은 사실, 그 공간의 기운을 감각으로 되살리는 역할을 한다. 식당의 인테리어가 식당이 추구하는 바를 시각적으로 전달한다면, 그것을 청각으로 전달하는 것이 배경음악이기도 하다.


미친물고기 식당을 문을 열면서, 어떤 식당을 만들 것인가에 대해 무지 고민했었다. 000 이름이 붙은 쉐프와 함께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생각 (혹은 철학)을 가지고 음식을 만들고 고객을 대할 것인가에 대한 모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미친물고기 식당을 정장 차림으로 사업상 미팅을 해야할 것 같은 정통 일식집 분위기로 만들기는 싫었다. 그렇다고 이른바 00수산 류의 한국식 횟집을 생각한 건 더더욱 아니었다. 너무 어수선하고 번잡한데다 메뉴가 회와 매운탕을 빼면 선택의 폭이 적다는 것도 단점이라 생각됐다. 이자카야처럼 너무 일본색이 짙은 것도 별로였다.


그렇다. 나의 문제는 너무 새롭고 트렌디한 것을 만들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새로운 것은 관심을 끌기에는 좋지만 대다수가 '소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대중성을 확보하기 어렵고 그 때까지 시간도 많이 걸린다.


어쨌든 나는 스타일리시한 횟집을 만들고 싶었다. 우리 취향에 맞게 적당하게 숙성시켜 맛있는 회를 깔끔하고 따뜻한 곳에서 즐길 수 있는 그런 공간 말이다. 이것 저것이 섞여서 만들어 내는 그 공간, 어쩌면 '재즈가 흐르는 횟집' 이라는 단어가 잘 표현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이질적인 단어의 결합이지만 그 결과는 새롭고 편안한 것이었으면 한다.

밤 10시 정도면 미친물고기에서는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이다. 바쁜 날이었던 한가한 날이었던 배가 불러 느긋해진 손님들의 목소리가 경쾌한 소프라노에서 조금 느려지고 낮아지는 시간이다. 분주한 손짓과 걸음에 흘려 보냈던 음악이 또렷이 들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 때쯤 나는 마음의 여밈을 풀고 음악의 선율에 따라 흐느적 거려 본다. 장사가 잘 되었던 그렇지 않았던, '재즈가 흐르는 횟집'에서 무사히 하루가 저물고 있음에 감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