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물일기 (13)
아침에 노량진 수산시장 장보러 갔다. 싱싱한 청어가 눈에 띄었다. 아, 청어... 꽁치보다 담백하고 고등어보다 부드럽고 살폿한 맛. 청어 눈을 보고 있자니 '맛있겠쥬?' 하며 말을 거는 것 같아 한 상자 사고 말았다.
미친물고기에는 청어를 재료로 한 메뉴가 없다. 그래도 거리낌없이 청어 한박스를 들였던 건, 못 팔면 내가 먹지 하는 맘도 있었을테지만 저녁에 예약주신 단골 손님들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전어구이를 무척 좋아하셨던 M님, 청어 구워 드리면 좋아하겠다 싶었다. 뭐든 미물 신메뉴는 먹어보고 싶어하시는 K님께도 드리고 싶었다.
예상했던대로 청어는 싱싱했고 맛있었고 나의 단골님들은 청어구이를 무척 맛있게 드셨다. 때마침 친구들과의 번개 모임으로 우리 식당을 찾은 L님도 청어 알에 감탄하며 청어구이 맛을 즐겼다.
미친물고기 식당 문을 연지 어느새 1년을 훌쩍 넘어섰다. 식당일은 고되고, 너무나 생각하고 처리할 것이 많아 늘 종종걸음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계속하게 하는 힘은 내가 준비한 음식을 손님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기쁨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 뿌듯함이란. 그럴 땐, 단지 순간일지라도, 손님이 내가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정겹다.
미친물고기 식당을 시작할때 누구는 덕담으로 "여자 백종원이 되겠다"고 말해 주었다. 이제는 그 말이 실현되지 않을 것을 안다. 지난 일년여의 경험으로 식당 경영에 그만큼의 재주가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게됐다. 사실 성공하지 못할지라도 그렇게 식당을 하고 싶지 않아지기도 했다
작은 식당의 쓸데없는 아집일지 모르겠으나 나는 프랜차이즈가 과연 우리의 식문화를, 외식생활을 이롭게 했는지 의문이다. 식당의 체계화에는 기여했겠지만 레시피의 획일화, 단순화가 우리 외식생활을 따분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계절마다 새로운 메뉴를 선보이고 잘 계량된 재료로 만든 음식은 만드는 사람의 '관여도'를 한껏 낮춰 놓았다. 정해진 레시피에 따라 조리해도 되니 십수년을 한 분야에서 일한 사람을 고용할 필요도 없다. 편안해졌지만 개성이 없어졌다. 성형수술로 쌍커플도 생기도 코도 높아졌지만 표정과 개선을 잃은 강남미인들처럼.
한때는 미친물고기의 프랜차이즈를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그냥 나는 아침에 물좋은 청어 사다가 저녁에 손님들 대접하는 주방이모 정신을 잃지 않을 때까지 이 일을 열심히 하겠다 다짐한다. 다만, 청어 한 상자로 단골 몇 분 대접하는 것보다는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맛보게 할 방법은 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