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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선 Mar 20. 2017

포케몬고에서 인생을 배운다

몇 주 동안 주말에 포케몬 잡으러 열심히 다녔더니 드디어 레벨 30으로 올랐다. 갤로그, 테트리스 말고는 별로 게임을 해본 적이 없는 내가 이토록 게임에 집중하는 게 신기할 정도다.


처음엔 귀여운 몬스터들 잡는 게 재미있었고 진화시키고 강화시키며 키우는 맛이 있었다. 조금 더 하다보니 각 포케몬 별로 성향을 이해하고 각자 가진 주특기를 파악하는 등 공부할 것이 생겼다. 그런데 이 점이 게임을 그만두게 하기 보다는 더 파고들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무엇보다 남편과 같이 하다보니 더욱 재미가 있었다. 매일 밤 자기 전에 그날 잡은 포케몬들을 정리하고 진화시키며 서로 득템한 포케몬을 자랑하는 것도 낙일 뿐더러 파란팀이 점령한 체육관을 보면 참지 못하고 빨간팀인 남편과 노란팀인 내가 힘을 합쳐 깰때의 통쾌함도 대단하다.


하다보니 포케몬고는 정말 잘 만든 게임이다. 게임에 빠져 있다 보면 어느새 '놀이' 뿐아니라 사람 살아가는 이치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포케몬고에서 배우는 인생의 법칙을 내나름의 개똥철학으로 풀어보면 이렇다.



1.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성향을 갖고 태어난다.


호박이 수박되지 않는다. 알에서 부화될 때 미뇽이면 망나뇽의 기질을 가지고 태어난다. 물론 열심히 사탕을 모아야 하고 갈고 닦아야 하지만 말이다. 포케몬들은 저마다의 속성과 주특기를 가지고 태어나며 이를 잘 진화시키고 강화시켜 주면 훌륭한 재목으로 성장할 수 있다. 똑같이 '비행' 속성을 가지고 있어도 크로뱃은 절대 망나뇽의 위용을 가질 수 없다.


2. 인생은 도전하는 자의 것이다.


포케몬고의 하이라이트라면 열심히 몬스터를 키우고 강화시켜 체육관에서 다른 팀들과 대결을 통해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다. 잉어킹의 사탕 400개를 모으려고 열심히 선유도를 돌며 잉어킹을 잡는 것은 체육관 4대천왕이라 할 수 있는 갸라도스를 얻어 멋지게 체육관에 배치시키기 위함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하지만 CP 3000 넘는 갸라도스를 CP2000 쁘사이저로 충분히 잡을 수 있는 것도 승부의 세계다. 체육관 레벨이 높지 않다면, 몬스터가 가진 주특기를 잘 살리기만 한다면 체급 낮은 몬스터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


3. '돈'이 있다면 원하는 바를 얻기 좀 더 수월하다.


포케몬고에서 경험치를 얻고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몬스터를 열심히 잡아야 한다. 몬스터의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별의 모래가 필요한데 이는 몬스터를 잡거나 포케스탑에서 얻은 알을 부화기에 넣어 열심히 걸어다녀야 한다. 알이 부화할 때 별의 모래가 꽤 많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몬스터볼이나 알 같은 아이템을 얻으려면 열심히 다니며 포케스탑을 돌려야 하지만 알 부화기는 무한대로 쓸 수 있는 것 한 대가 전부다. 알부화기 한 대로는 레벨업의 욕망을 쉽게 채우기 어렵다. 돈이 필요하다. 돈이!


4. 살아가는 일은 '노가다'를 수반한다.


하지만 코인을 왕창 산다고 모든 것을 얻을 수는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동하는 짬짬이 포케스탑 돌리고 몬스터 잡고 알 부화시키고 포케몬 정리하고 진화하고 등등 열심히 움직이지 않으면 레벨업과 체육관 점령은 꿈꾸기 어렵다.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밥먹고 열심히 몸을 움직여 출근하고 일하고 밥먹고 그렇게 살아야하는 인생사와 너무 닮았다. 언제까지 반복될지 모르는 노동... 그게 삶을 이어가는 원동력임을 문득 문득 느끼게 해주는 게임이 바로 포케몬고이다.


5. 세상 일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나는 기운 쎈 포케몬을 얻어 체육관을 털겠다는 의지 보다는 예쁜 몬스터들을 도감에 멋지게 정리하고 싶은 욕심이 더 크다. 2세대 포케몬들이 생겨나면서 포케스탑에서 특수 아이템을 얻어야만 진화가 가능한 경우가 생겼다. 아무리 열심히 뺑뺑이를 돌아도 용의 비늘을 구할 수 없어 절망하고 있다. 킹드라를 진화시키기 위해 쏘드라의 사탕을 200개 넘게 가지고 있지만 그러면 뭐하나.. 용의 비늘이 없는 것을... 반면 나의 포케몬 친구 남편은, 태양의 돌, 용의 비늘 등등을 모두 얻어 특수 진화를 다 시켰다. 심지어 여분의 용의 비늘을 가지고 있다. 아, 내게 없는것이 남에게는 너무 흔한 이 불공평한 세상.


6. 세상사 우연의 연속이다.


포케몬고를 하면서 가장 궁금한 것이 포케스탑에서 얻는 아이템이 사람마다 다른데 어떤 로직으로 이루어지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같은 자리에서 거의 같은 순간에 포케스탑을 돌려도 아이템이 다르다. 얻는 사람의 레벨이나 이런 것도 반영되는 것도 같고 그 장소만의 특성도 있는 것 같은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하긴 살아가면서 내 앞에 벌어지는 일이 어떤 이치로 이루어지는 지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니 알려고 하지 않는게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포케몬을 켜먼서 오늘은 어떤 몬을 만나게 될 것인지, 알에서는 어떤 아이들이 나올 것인지 기대하는 것만으로 설레임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7. 올라갈수록 빡세다.


포케몬고 역시 여느 게임처럼 경험치를 쌓으면 레벨이 올라간다. 그런데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레벨업을 위해 필요한 경험치가 현격하게 높아진다. 예를들어 29레벨에서 30 레벨으로 업그레이드를 위해서는 350,000 경험치가 필요한데 30레벨에서 한단계 높아지기 위해서는 500,000 경험치가 필요하다. @@ 39레벨에서 업하기 위해서는 5,000,000 경험치가 필요하다는데... 그냥 마음 내려놓고 뚜벅뚜벅 가야겠다.


오늘 포케몬고의 고수 두 분이 우리 식당에 왔었다. 그 중 한 분은 게임에서 주는 알통 하나로 코인을 한 푼도 사지 않고 35레벨에 오른 그야말로 초절정 고수였다. 1년 넘게 걸렸다고 한다. 경의를 표한다.


덧. 포케몬고 게임을 통해 서울 곳곳에 공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실제 가보게 됐다. 낙산공원, 선유도 공원은 두 번을 갔고 세빛섬과 국립현충원에도 가봤다. 걷는 것에 대한 부담이 없어졌다! 포케몬고 게이머들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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