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01 식당 오픈 첫날
지난 몇 년간 땀과 노력을 다했던 [미친물고기]는 결론적으로 실패한 도전이다. 실패의 경험을 되돌아보는 것은 아픔이자 그리움이다. 마치 못난 자식과 같다. 내 보기에도 부족하지만, 그래서 더 마음이 쓰이고 다른 사람이 질책하면 더 아픈 법이다. 그래서 대개는 품에 가두고 꽁꽁 숨기게 마련이다.
'미친물고기' 경험을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실패의 경험이 내 안에서 박제된 아픔으로 남지 않도록 하고 싶어서이다. 나 스스로가 풀어헤쳐 낱낱이 돌아본 후에야 아픈 경험은 그 자체로 더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고 그리움은 영원히 남을 추억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
오픈 당일에 식당에 갔다면 제대로 된 음식과 서비스를 기대하는 건 무리다. 아무리 꼼꼼하게 따지고 준비해도 실제 상황에 대해 물 흐르듯 대처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2016년 4월 7일, 목요일. 미친물고기 식당은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여의도 63빌딩 옆에 있는 오래된 오피스텔 건물. 식당, 부동산, 문구점, 작은 수퍼 등이 다닥 다닥 붙어 있는 곳이다. 그 중에 열 평 남짓한 가게 터 (원래는 잡화점 자리였던 곳)를 얻어 수도를 내고 가스를 연결해 식당으로 꾸몄다. 자리는 4인 기준 4테이블이 전부였다.
좁은 공간을 친근하면서도 편안하게 꾸미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냈고 어찌 어찌 '심야식당' 이 떠오르는 곳으로 만들어 냈다. 식당 이름은 미친물고기 '백스테이지'. 구성원 중 아무도, 단 한번도 식당은 커녕 '장사'를 해 본 적이 없는 사무직 사람들의 첫 번째 도전인 만큼, 진짜 무대를 오르기 전 준비하는 공간이라는 의미였다.
전문가가 아닌 소비자 입장에서 메뉴를 짰으니 물론 시행착오도 많았다. 회덮밥용 초고추장의 비율을 찾기 위해 고추장, 식초, 간장, 고추가루 등 기본 재료를 구성비를 바꿔가며 아마도 백번 쯤 만들어 봤을 것이다. 떨리고 두려웠기에 "열심히" 준비했다. 식당 창업에 관련된 책에서 조언한 대로 몇 번 친구들을 불러 예행연습을 거쳤다.
하지만, 첫날의 혼돈을 막을 수는 없었다.
드디어 D데이가 왔다. 나는 대표였던 만큼 전면에 나서 주방을 맡았다. 나 다음으로 선배이자, 식당 오픈에 관심을 가졌던 IK와 함께였다. 아침 일찍부터 이렇게 저렇게 준비를 하고 기다리는 마음은 그 어느 시험날 보다 긴장됐다. 과연 건물 앞에 배너 하나 걸지 않고 전단지도 돌리지 않은 오픈 식당을 찾는 손님이 있을까 싶었다. 오전 11시 반을 넘어서자 사람들이 밀어닥쳤다. 물론 손님들의 절 반이상은 인생 최고의 도전에 나선 나를 응원하러 온 지인들이었지만 오피스텔 지하 식당 답지 않은 깔끔한 인테리어에 끌려 온 손님들도 꽤나 있었다.
한 번도 식당에서 일해 본 적이 없는 아마추어들이 처음으로 시작해보는 식당 일이었다. 주문을 받고 어떻게 처리하고 식사 후 어떻게 그릇을 정리하고 퇴식 그릇을 어떻게 정리하는지에 대해서 말로만 맞춰 보았지 손발로 익히지는 못했다.
메뉴는 회덮밥, 연어덮밥 등 덮밥과 해물라면. 좁은 주방 구조 상 화구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덮밥은 별도로 불을 쓰지 않아도 됐지만 해물라면은 정말 문제였다. 한 번에 4 그릇 정도의 해물라면을 끓일 수 있는 환경에서 열 그릇 이상 주문이 한 타임에 몰려왔으니, 어찌 되었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해물라면은 원래 1인분씩 끓인다는 원칙을 깨고 커다란 냄비에 3, 4인분을 끓이다 보니 이것을 다시 1인분씩 나눠 서빙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해물라면 면발은 풀어진 지 오래인 채로 손님 상에 낼 수밖에 없었다.
그 우왕좌왕 속에서도 손님은 줄지 않고 (음식이 늦게 나왔으니 체류 시간이 길기도 했겠지만 식사를 마치고 한 테이블이 비워지면 줄을 서서 기다리면 다른 손님들로 이내 채워졌다), 계속 밀린 주문이 쌓여갔다. 설상가상으로 테이블이 비워지면서 설거지들이 밀려들었는데 식기 세척기도 없었고, 빠른 손놀림으로 번개같이 그릇을 닦아낼 설거지의 달인도 없었다.
좁은 주방에는 준비가 준비가 덜 된 음식 재료가 줄을 서고 간텍기 레인지엔 언제나 해물라면 냄비로 가득 찼고 좁은 개수대엔 설거지가 쌓여갔다. 숨이 막혔지만, 죽을힘을 다해 설거지와 해물라면 끓이기의 멀티태스킹을 해내었고 '주방장' IK는 열심히 덮밥을 만들어 내었다.
나를 격려하기 위해 찾아 준 친구들이 주방 입구까지 와서 축하 인사를 건넸지만 악수는 엄두도 못 내었고 눈 마주치기도 힘들었다. 그렇게 신병 훈련 같았던 점심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3시쯤인가 지친 몸과 마음으로 점심을 먹으면서 우리는 문제점을 찾고 개선점을 마련하려 애썼다.
1. 해물라면 조리 시간을 줄이기 위해 물을 미리 끓여 두자. (그랬다. 이런 기본적이고 사소한 것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첫날'의 미숙함이다.)
2. 담당을 정확히 정하자. 나는 불로 조리하는 것을 맡고 JK는 덮밥과 설거지를 맡는다. KE는 홀 담당으로 메뉴를 순서를 정리해서 주방을 컨트롤한다. (주방에서 메뉴를 만드는데 열중하다 보면 순서 감각이 없어진다. 테이블 1번이 회덮밥과 해물라면을 주문하고 테이블 2번이 연어덮밥 2개와 문어 비빔국수 테이블 3번이 해물라면 2개를 주문할 경우, 주방에서는 1번 테이블과 3번 테이블의 해물라면을 먼저 끓이고 2번 테이블의 문어 비빔국수를 만드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만들었다가는 2번 테이블에 소요가 일어날 것이다.)
3. 장국 냄비가 화구를 점령하면 비효율 적이니 장국은 1회용 가스버너로 데운다.
4, 5, 6, 7...
그 날의 반성과 좀 더 잘하기 위한 대책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반성과 대책이 효과는 있었다. '업무 효율성'을 추구하던 사무직의 경험을 되살려 다음 날부터 더 이상은 불어 터진 해물라면이 나오는 일은 막았다. 덕분에 해물라면은 첫날부터 마지막까지, 손님들에게 사랑받는 메뉴로 자리 잡았다.
식당 운영이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시작 전부터 마지막 문을 닫는 날까지 늘 절감해왔지만 첫 날 만큼 뼈속 깊이 느꼈던 적도 없으리라. 점심시간이 이어지는 동안, 뭔가 감당할 수없는 일을 벌여 놓았다는 당혹감에 한 순간도 긴장을 놓칠 수도 없었고 두려움이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 날, 끈기 있게 기다려 불은 라면을 먹고도 맛있다고 웃음지으며 나를 격려했던 친구들에 대한 고마움은 정말 잊지 못한다. 그들은 식당 문을 닫을 때까지, 늘 미친 물고기를 열렬히 응원해주었다. 그 응원단은 처음엔 대부분 지인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미친물고기의 분위기와 맛을 좋아하는 단골들도 포함됐다. 식당을 지속할 수 있었던 에너지도 그 응원에서 나왔지만 식당을 닫은 지금, 좌절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그 응원 덕분이다. 누군가 내가 하는 일에 박수쳐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격려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게 일을 하며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의미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