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2 미친물고기의 시작
미친물고기의 시작은 설악산 등반으로 시작됐다.
자타가 공인하는 회 매니아 '노'모님, 밖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좋은 회는 다 찾아 먹고 다니는 '임'모님, 나의 룸메이트이자 부산 출신으로 어떤 횟집 사장님과의 싸움에서도 결코 지지 않는 전투력을 가진 '김'모님과 함께 백담사에서 올라 중청 대피소에서 하루 자고 천불동 계곡으로 내려오는 설악산 종주를 함께 가게 되었다. (사실 나는 한 끼 식사량이 적어서 보통 1인분의 3분의 2를 먹으면 배가 부르는 타입인데 회는 1.2인분을 먹는다. 또 매일 먹어도 3-4일은 질리지 않고 회를 먹을 수 있는 독특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
대청봉까지 오르는 동안, 다시 내려오는 길의 험난함은 생략하기로 하고 일단 속초 쪽으로 내려왔으니 서울 올라가기 전에 회 한 접시 하고 가자는데 모두가 동의했다. 속초 중앙시장에서 자연산 - 전복치, 밀치 등등 세꼬시 류의 회를 먹으면서, 당시 O2O가 유행이던 때이니 만큼 새로운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흔히 있을 수 있는 술자리에서의 사업구상이었다. [서울 사람들은 아무래도 회를 먹을 때 노량진 수산시장을 자주 찾게 되는데 속이는 가게도 많고 뭐가 뭔지 몰라 선택이 어렵다 - 이를 중간에서 코디네이션 해서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회를 먹도록 O2O 플랫폼을 만들면 어떨까 - 만약 배달까지 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사업의 얼개가 갖춰졌다. 게다가 임 모님은 앱 개발의 고수, 노 모님은 개발도 이해하고 회 매니아라는 상징적인 인물, 나는 홍보 마케팅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었으니 같이 힘을 합하면 뭔가 나올 것도 같았다. 물론 이쯤에서 술자리 잡담으로 마무리되었으면 끝이었겠지만 나는 이미 태엽 감긴 인형처럼 저만큼 앞서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미친물고기] 였다.
2015년 초부터 미친물고기 사업구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앱 기획을 시작하고 노량진 수산시장의 파트너가 될 업체를 모았다. 우선 페이스북과 카카오 톡, 전화 등을 이용해서 주문을 받고 8월에 앱을 출시했다.
때마친 미디어오늘에서 주최한 '저널리즘의 미래' 콘퍼런스에 미니 세션을 맡아 미친물고기 사업에 대해 발표할 기회를 가졌는데 다들 생선회를 스마트폰으로 주문한다는 아이디어를 신선해했다.
당시 미친물고기를 운영하는 초기 투자 비용으로 앱 개발비는 상당한 부분을 차지했다. 인건비를 제외하면 고객의 주문을 기존의 커뮤니케이션 툴 (페이스북, 카카오톡, 전화)로 처리했다면 별다른 투자비용이 필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수익 모델이 수수료 모델이었기에 구매가 일어나는 시점에서 우리 매출도 발생한다. 홍보/마케팅 비용을 제외하면 비용상의 부담은 없었다.
O2O, Online to Offline 의 개념은 우리의 실생활 공간(오프라인)과 인터넷 (온라인)을 연결함으로써 인터넷의 활용도를 한 걸음 더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대두됐다. 인터넷이 가상의 공간으로 정보를 얻고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제품이 거래되고 있으나 아직 오프라인에서 펼쳐지는 실제 생활에서는 인터넷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많았다. 예를 들어 택시를 타려면 거리에 나가 택시를 잡아야 했고, 내가 좋아하는 식당 음식을 먹으려면 직접 방문해야 했다. 하지만 다양한 영역에서 O2O 서비스가 만들어지면서 인터넷과 실생활 (오프라인)의 연결이 보다 자연스럽게 거침없이 이루어졌다.
미친물고기를 정리하는 시점에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다. 과연 미친물고기 시작을 앱을 개발하는 것이 맞았을까? 꽤나 많은 돈이 앱 개발에 들어갔기에 만약 앱을 개발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더 오래 사업을 할 수 있는 리소스를 축적할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오늘의 결정이 옳은 것이라고 100% 확신할 수 없는 것처럼 과거의 결정 또한 절대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 앱 개발이 많은 리소스를 잡아먹었던 건 사실이지만 2015년 초로 다시 돌아가 결정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앱'이라는 툴을 이용했을 것이다. 만약 지금 미친물고기 사업을 다시 시작한다면 다른 결정을 내렸겠지만 말이다.
미친물고기의 사업 아이디어의 근간이 오프라인의 행동들 (노량진 수산시장 방문 - 호객 행위가 난무하는 곳에서 생선을 직접 고르는 노하우 - 포장 혹은 인근 식당에서 회를 즐기는 것)을 온라인 (앱 서비스)을 통해 좀 더 만족스럽게 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였다. 웹 페이지이거나 앱이 필요한 시점이었는데, 당시 상황에서는 앱 서비스가 훨씬 접근성이 높았다. 모바일 웹을 통해 미친물고기 페이지에 접속하고 자주 쓰는 서비스로 홈에 등록하는 번거로움을 학습시키는 것보다는 앱이 훨씬 멋진 사용자 경험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많은 O2O 서비스들은 오프라인에서 이미 자리 잡고 있는 주체들을 연결하는 서비스의 의미가 크다. 때문에 사용자를 확보하는 것이 비즈니스 성공의 관건이고 따라서 홍보/마케팅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앱을 통해 회원을 확보하고 구매 성향을 분석하고, 상품 기획에 반여하는 일, SNS 등과 연계해서 더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는 일이 핵심이었다.
한 때 유행처럼 O2O의 개념이 확산되면서 수많은 관련 서비스들이 등장했다. 성공의 관건은 얼마나 빠른 시간 안에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사용자 베이스를 마련하는가 였다. 대체로 O2O의 수익 모델은 수수료이거나 광고였는데 두 가지 모두 사용자와 거래량이 많아야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경쟁사에 비해서 월등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 만큼 서비스가 잘 설계되어 있거나 마케팅을 통해 사용자를 커뮤니티로 묶어내는 기업이 끝까지 살아남았다.
대표적인 O2O 기업인 배달의 민족의 경우 '배달' 음식의 고객의 성향을 잘 정의해 서비스로 녹여냈다. 배달음식은 파인 다이닝 식당에서 먹는 음식과는 다르다. 배달의민족은 주 고객층의 'B급 정서'를 서비스 아이덴티티로 잘 녹여내었다. 초기부터 사용자들이 관심 가질 만한 생활의 요소들을 이벤트와 광고에 잘 반영했고 고객을 단순 이용자가 아닌 '배달의민족 팬'으로 커뮤니티화 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주최한 치믈리에 선발대회는 배민의 마케팅, 브랜딩의 핵심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모든 O2O 기업이 배민처럼 할 수는 없겠지만 O2O 서비스의 마케팅은 너무나 중요하다. 그리고 그 마케팅은 '1+1'과 같은 세일즈 프로모션에 그쳐서는 안 되고 고객의 관심사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미친물고기는 생선회, 해산물 매니아를 주요 고객층으로 하고 있어 숫자의 한계가 있는 건 사실이었다. 미친물고기의 실패 요소를 꼽자면 이 타겟 고객층을 커뮤니티로 엮어내는 데 역부족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리소스의 부족이 가장 커다란 원인이었겠지만, 그 부족한 리소스를 오프라인 매장 운영으로 분산시켰던 점이 지내놓고 보니 결론적으로는 패착이었다.
하지만, 무리한 결정에도 항상 나름의 이유는 있는 법이다. O2O 서비스를 시작한 미친물고기가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던 것도 일종의 생존을 위한 (당시로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