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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소문, 구원의 동아줄?!

view#03 식당의 시작

by 이지선

스마트폰에서 노량진 수산시장 회를 주문할 수 있게 해주는 O2O 앱 [미친물고기]를 서비스하다가 식당을 오픈하기로 한 결정은 '단순, 무식, 용감'한 것이었다.


2015년 8월 앱을 출시해서 계속해서 사용자 수도 증가했고 그에 따라 주문량도 서서히 늘어갔다.

하지만 두 가지 걱정이 있었다. 하나는, 주문량이 늘면서 고객들의 불만도 생기기 시작했는데 대부분 배송 시간 (퀵서비스의 문제), 포장의 품질 (노량진 협력업체의 성의의 문제), 와사비 등 주요 물품 누락 (이 또한 노량진 협력업체의 문제) 등이 주로 불거졌다. 사용자 경험이 향후 성장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던 측면에서 우리가 영향을 미치기 어려운 외부 요소 때문에 불만이 쌓인다는 점이 걱정이 됐다. 두 번째는 매출의 문제였다. 주문량이 조금씩 늘면서 주말에는 손쉽게 일 매출 1백만 원이 넘어섰고 2백만 원을 웃도는 날도 생겼다. 앱 다운 수와 주문자 수, 재주문 비율, 그리고 주문당 평균 구매액 등은 긍정적인 수치들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O2O 서비스의 수익모델은 수수료. 평균 15% 수수료를 계산해 보면 하루에 2백만 원 주문액을 처리할 경우 순매출은 60만 원에 불과했다. 결국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너무나 갈 길이 먼 것처럼 보였다.


당시로는 서비스 향상을 통해 고객 경험을 향상하고 매출도 늘릴 수 있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는데, '오프라인 매장'이 답이라고 믿었다.


식당 운영은 초보인 사람들이 시작했기 때문에 7평짜리 작은 매장을 얻었다. 식당 이름도 [미친물고기_Backstage]라 이름 붙였다. 본격적으로 무대에 오르기 전 준비를 하는 공간이며 '미친물고기'라는 멋진 서비스를 만드는 무대 뒤 공간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모든 것이 어설펐다. 장소도 접근성이 그다지 좋지 않은 곳, 허름한 오피스텔 지하인 데다 '주방장'도 별도로 없었다. 횟집이었지만 횟집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수조 따윈 없었다. 벽면에 제철 생선 그림이 소박하게 걸려있는, 결코 일반적이지 않은 식당이었다.



그런데 식당은 초기부터 예약이 줄을 이었다. '맛집' 추천에 전문성 있고 엄청난 소셜 파워를 가진 마냐님의 리뷰 (<미친물고기> 이건 사회공헌이지 말입니다) 덕분이었다. 정식으로 문을 연 다음날 마냐님이 친구들과 함께 미친물고기를 찾았다. 회를 좋아하는 마음만 있었지 밥도 잘 안 할 것 같은 사람이 식당을 차렸다니 얼마나 걱정이 심했을까. 실제로 그날 마냐님으로 부터 여러 가지를 지적받았다. 접시를 좀 키워라, 이 가격으로 받았다간 조만간 망한다, 아무런 장식 없이 그대로 내어 놓은 아나고 튀김에 파슬리라도 올려라 등등.


수많은 맛집 리뷰가 떠도는 곳이 소셜 공간이지만 맛집 선정에 까다로운 기준을 가진 마냐님의 추천인 데다가 사진만 봐도 뭔가 달라 보이는 미친 횟집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테이블 4개, 16명이 앉으면 꽉 차는 식당에는 '만석'으로 예약을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손님들 중에는 여러 번 만에 예약에 성공했다며 함께 온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그룹도 있었다.


입소문의 위력은 과연 대단했다. 고수의 추천으로 찾은 맛집이니 여의도 구석에 자리 잡은 위치도 크게 문제 되지 않았고 (맛집은 찾아가는 맛과 기다리는 묘미가 함께 하므로) 현란한 장식 대신 소박하게 작은 접시에 담은 플레이팅도 우리 집의 강점이 되었다. 작고 아기자기한 인테리어는 심야식당 분위기 나는 곳으로 표현됐고 수족관 없는 횟집, 사무직 출신들이 멋모르고 차린 것조차 '특이함'으로 기억됐다. 사실 중요한 것은 맛이었는데 노량진 수산시장이 가깝고 주방이 작아 보관시설이 마땅치 않아 매일 수산시장에서 장을 보았으니 싱싱함은 보장된 데다 조미료와 양념을 최소화한 레시피로 해산물의 싱싱함을 강조했으니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입소문이 작은 식당에게는 구원의 동아줄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바로 그 지점에서 동아줄을 타고 어느 방향으로 뛰어오를지 좀 더 신중하게 생각했어야 했다. 아쉽게도 나는 이제 본격적으로 무대에 오를 때라고 생각했다. 미친물고기 두 번째 식당 Stage01을 기획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의사 결정을 할 때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현상유지가 될 것이라는 전제하에 어느 방향으로 갈지를 생각한다. 방향을 틀어 지금 손에 쥔 것을 놓칠 수 있다는 생각은 웬만하면 털어 버리려 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나도 그랬다. 미친물고기 Backstage의 성공으로 맛과 분위기 면에서 충분히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O2O 서비스보다는 훨씬 매출 구조가 좋았지만 테이블 4개짜리 작은 식당이다 보니 또 그 자체로 한계가 있었다. 결국 2.5배 규모의 식당으로 옮겨가는 것을 결심하게 됐다.


미친물고기를 접으면서 가장 뼈아프게 느껴졌던 게 바로 Backstage 성공 이후 곧 Stage01로 넘어가기로 한 결정이었다. 설사 어쩔 수 없이 그 방향을 선택하고 나아갔다고 해도 좀 더 면밀하게 계획을 세워야 했었다. 실제로 7평짜리 식당을 운영하는 것과 17평짜리를 운영하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그 달라진 환경과 그에 수반되는 문제점들을 예측 없이 맞다 보니 좌충우돌했고 그 과정에서 원래 사업의 시작이었던 O2O 서비스가 약해졌다는 것이 패착이었다.


소심한 성격 탓에 무슨 일을 시작하기 전에 곱씹어 보는 편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용감하게, 혹은 다소 무모하게 시작하는 것처럼 비쳐도 내 안에서는 수많은 경우의 수를 연산하느라 허덕거리는 편이다. 왜 그때는 이런저런 시뮬레이션을 하지 않았을까, 왜 좀 더 객관화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수십 번을 되뇌어 봤지만, 결론은 바보 같은 결정이었다로 모아졌다. Stage01을 좀 더 잘 운영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내가 이전에 식당 경험이 있거나 그런 사람을 파트너로 함께 했으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규모가 조금 더 커지니 훨씬 많은 시간을 오프라인 매장 운영에 매달려야 했고 그것이 익숙지 않은 내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