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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익은 '숙성회' 문화

view#04 미친물고기 메뉴 (1)

by 이지선

식당의 경쟁력은 뭐니 뭐니 해도 음식의 맛에서 나온다. 식당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메뉴와 그것을 만드는 레시피이다.


미친물고기에서 가장 고심했던 메뉴는 당연히 생선회였다. 처음엔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판매하는 생선회를 앱으로 주문, 배달을 연결해주는 서비스였지만 오프라인 식당이 문을 연 이후에는 숙성회를 제공했다. 먹다 보니 숙성회가 월등히 맛있었기 때문이다.


해산물, 특히나 생선회는 다루기 까다로운 메뉴이다. 생선회를 즐기는 우리나라와 일본은 그 방식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우리는 수조에 있는 생선을 바로 회로 떠서 먹는다. 씹는 맛은 있을지언정 깊은 맛을 즐기긴 어렵다. 생선은 (종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잡아서 3~4시간 이상 숙성시키면 살이 부드러워지고 감칠맛이 증가한다. 해산물 특유의 달콤한 맛을 낸다. 이렇게 일정 시간 이상을 숙성시킨 숙성회가 훨씬 먹기에 좋다. 일본은 보통 2-3일씩 숙성시킨 선어를 즐긴다. (관련내용은 해산물 관련해서 가장 믿을 만한 입질의 추억 블로그 참조 - http://slds2.tistory.com/2023)


숙성회를 맛있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 덧붙여 재료가 좋아야 한다. 대체로 생선은 크고 중량이 많이 나갈수록 맛이 있다. 이런 생선을 숙성시키면 더욱 깊은 맛이 난다. 하지만 적당한 숙성 온도에 보관을 잘해야 한다. 또한 값도 비싸다.


미친물고기에서는 좀 더 깊은 맛의 숙성회를 식탁에 내기 위해 2.5Kg 이상의 대광어를 사용했다. 물론 대부분 양식 광어를 들여왔다. 가격과 식재료 공급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Kg 당 가격이 2Kg 미만 짜리에 비해 40% 이상 비쌌다. 예컨대 1.5Kg 광어는 킬로당 18,000원이라면 2.5Kg 광어는 킬로당 25,000원 정도였다.


연어는 노르웨이산 연어를 다시마 숙성해서 제공했다. 다시마에 정종을 뿌리고 연어를 올린 후 굵은소금을 뿌리고 다시마로 다시 덮어서 3-4시간 정도 숙성시킨 후 소금을 털어내고 랩핑 하여 냉장고에 보관한다. 연어의 기름진 맛을 감춰주고 흐물 흐물한 살에 탄력을 더한다. 게다가 다시마 맛이 향이 배어든 것도 독특한 맛을 선사한다. 가장 좋은 점 중에 하나는 보관기간을 늘려준다. 연어는 대체로 보관기간이 3-4일이다. 래핑 잘해서 냉장 보관할 경우다. 다시마 숙성으로 1, 2일 정도는 무난하게 먹을 수 있다.


이렇게 저렇게 생선을 맛있게 숙성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했다. 필레 상태로 진공 포장하면 더 오래 보관할 수 있어 큰 생선들은 그렇게 진공포장기를 이용했다.


자,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 왜 미친물고기의 맛있는 숙성회를 위한 이런 노력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것일까?


삼면이 바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생선보다 고기를 즐겨 먹는다. 우리 식습관으로 볼 때 해산물은 다소 어려운 영역이다. 회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조차도 접시에 담긴 생선회 이름을 맞추지 못한다. 빨간 생선은 연어, 하얀 생선은 광어 정도를 구분해내는 정도다.


게다가 횟집은 (횟값이 일단 비싸기 때문에) 한상 쓰끼다시로 쫘악 깔려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야 배불리 먹을 수 있으니까.


조금 진보한 회매니아들이 철에 따라 봄 도다리, 여름 민어, 가을 전어, 겨울 방어를 찾아다니지만 전문점에서 비싼 돈을 주고 먹거나 아니면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가끔씩 속아 가면서도 상대적으로 싼 값에 만족하는 정도다.


미친물고기를 운영하는 동안 좋은 재료를 가장 맛있게 숙성해서 내려는 마음은 흐트러짐 없이 유지했다. 하지만 고객들은 푸짐한 쓰끼다시를 원했고, 바닷가에서 선장이 잡아 올린 그물에 가득한 제철 생선 세꼬시를 찾았다. 물론 우리 숙성회의 맛에 찬사와 응원을 보내는 고객들도 있었지만 말이다. 나 혼자서 사람들의 '회식' 습관을 바꿀 수 있을지 조바심이 났다.


사업을 그만두고 가장 아쉬운 건, 회 먹을 곳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회를 너무 좋아해서 미친물고기를 시작했는데, 내가 좋아하는 회를 충분히 많은 사람이 좋아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만 해도 슬픈데 이제 회 먹을 곳을 잃어버렸다. 간혹 바닷가 여행을 가게 되면 맛있게 회를 먹지만 서울에서는 노량진 수산시장을 찾기에도 그렇고, 마땅한 횟집을 발견하지 못했다. 일류 일식 요리사가 있는 식당이라면 맛있는 생선회를 먹을 수 있겠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니 말이다. 아, 이제 낚시를 다녀야 하는 건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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