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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S Apr 28. 2019

(책리뷰)데미안 - 헤르만 헤세


데미안 – 헤르만 헤세


‘자신에 이르는 길’로 대표되는 소설,


데미안은 이번이 네 번째 읽는 책이다. 상실의 시대와 더불어 한 책을 여러 번 읽은 책은 데미안이 유일하다. 읽을 때마다 나에게 다가오는 메시지가 매번 다르다는 점이 이 책의 독특한 매력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만큼 내 삶에 큰 영향을 주었던 책이기도 하기 때문에 다시 읽어보고 싶었다.



나 역시 이전까지 타인이 정해준 대로, 남들이 갔던 안전 하다고 여겨지던 길로 살아왔기 때문에 어릴 때는 책의 메시지에 공감하기 어려웠다. 처음 입사한 기업에서 스스로의 결정으로 퇴사하는 순간, 비로소 30대에 이르러서야 내면의 나를 바라보는 경험을 할 수 있었고 이것이 ‘데미안’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이 책을 관통하는 문장이다. 신과 악, 인성과 수성, 이성과 욕망, 개인과 전체와 같이 상반되는 두 속성을 가지는 하나의 존재 아브락사스는 우리 개개인, 즉 한 인간을 의미한다. 태어난 인간은 저마다의 고유한 세계를 가진다. 하지만 처음의 그 세계는 ‘알’로 대변되는, 깨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세계이다. 이 세계를 깨고 나오는 시기를 우리는 흔히 ‘사춘기’라 부른다. 으레 10대 청소년기를 지칭했던 이것이 발현되는 시기는 실제로 사람마다 다르다. 10대일 수도 있고, 40대일 수도, 죽을 때까지 깨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도 있다.



하지만 ‘알을 깨는 행위’는 우열의 가치가 아닌 개인의 선택적 가치이다. 영화 ‘매트릭스’처럼 파란 약을 먹으면 있는 매트릭스 세상에서 편하게 있는 그대로 살아갈 수 있다.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을 외면할 자유도 있는 것이다. 타인에게 자아를 찾으라고, 내면을 깨라고 백번 천 번 말해봐야 그것은 수행되지 않는다. 그것은 스스로 보지 않으면 닿을 수 없는 과정이며, 고통스럽고 지난한 과정이다. 마치 진리를 찾아 순례길을 떠나는 구도자와 같다. 자신의 내면을 무너트리는 것이 자신인 것처럼, 그것을 행하는 선택 또한 자신의 몫이다.



데미안은 스스로의 내면에 눈뜨는 순간 온전한 하나의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행위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한데 그 에너지는 아이러니하게 우리 내면을 파괴하는 과정에서 생긴다. 프란츠 크로머라는 최초의 두려움을 마주하고 이전에 전혀 알지 못한 세계에 눈뜨는, 이전까지 세상의 질서라 여긴 성경의 내용인 ‘카인과 아벨’에 대한 완전히 다른 해석을 보여준 데미안을 만난 싱클레어처럼, 기존에 딛고 있던 세계가 뒤집히고 무너짐으로써 그 에너지는 발현된다.

그것이 발현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카인의 표식은 자신의 세계를 파괴하고 양 극단의 세계를 품고 세상으로 나온 증거이다. 세계는 이 표식을 지닌 자들에 의해 움직인다고, 데미안은 말한다. 기존의 질서, 태어나면서부터 존재해온 가치에 편승하는 것이 아닌 그것을 깨고 나와 전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행위가 결국 세상을 움직인다는 작가의 메시지가 아닐까.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싱클레어이면서 동시에 데미안이다. 이 둘을 스스로에게 하나로 받아들여 알을 깨고 날아갈 것인가는 역시 개인의 선택일 것이다.




p.51. 누구나 이런 어려움을 겪는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인생의 분기점이다. 자기 삶의 요구가 가장 혹심하게 주변 세계와 갈등에 빠지는 점, 앞을 향하는 길이 가장 혹독하게 투쟁으로 쟁취되어야 하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의 운명인 이 죽음과 새로운 탄생을 경험한다. 삶에서 오로지 한 번, 유년이 삭아 가며 서서히 와해될 때, 우리의 사랑을 얻었던 모든 것이 우리를 떠나가려고 하고 우리가 갑자기 고독과 우주의 치명적인 추위에 에워싸여 있음을 느낄 때 경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이 절벽에 매달려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지나간 것에, 잃어버린 낙원이 꿈에, 모든 꿈 중에서 가장 나쁘고 가장 살인적인 그 꿈에 한평생 고통스럽게 들러붙어 있다.


p.100.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p.135. 나는 자연이 던진 돌이었다. 불확실함 속으로, 어쩌면 새로운 것 에로, 어쩌면 無에로 던져졌다. 그리고 측량할 길 없는 깊은 곳으로부터의 이 던져짐이 남김없이 이루어지게 하고, 그 뜻을 마음속에서 느끼고 그것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것, 그것만이 나의 직분이었다. 오직 그것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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