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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S Jun 23. 2019

(책리뷰)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

그들은 말했다.
"넌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 때문에 미친 거야."
나는 대답했다.
"미친 사람들만이 생의 맛을 알 수 있어."


자기 앞의 생의 서문. 책을 덮은 후에 다시 돌아오게 만든다. 작가의 생애가 작품만큼 유명한 로맹 가리가 다른 '생'을 창조해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낸 작품이다. 에밀 아자르라는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내 프랑스 파리 문학계에 통렬한 조소를 던진 것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다른 생을 창조한 이유가 단지 이것뿐이라고 느끼지 못할 만큼 로맹 가리의 작품들은 인간의 삶에 대한 이유, 인간의 생 본질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 작품을 통해 스스로 직접 다른 생을 창조하면서 까지 '생'의 의미에 고찰하고자 했던 로맹 가리의 집념이 느껴진다.


하밀 할아버지에게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던지는 모모, 그는 창녀의 아이로 태어났으며 그 어머니는 포주인 아버지에 의해 살해당했다.

모모를 맡아 키우는 로자 아줌마, 창녀로 젊은 날을 살았으며, 아우슈비츠에서 생존한 이 유태인은 창녀들의 아이를 맡아 기르며 살아간다. 하지만 로자 아주머니의 병으로 인해 소소한 행복을 품고 나누며 살았던 그들의 생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두 주인공은 차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는 환경에서 서로 의지하며, 사랑한다. 피는 단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지만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의지한다. 작가는 인간이 처할 수 있는 끔찍한 환경에서 결국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인간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사막에서도 꽃이 피듯이 그들의 슬픈 생 속에서도 사랑이라는 꽃은 핀다.


화자인 소년 모모를 통해 이야기 함으로써 고독하고 쓸쓸한 삶을 익살스럽고 무던하게 표현한다. 열네 살이지만, 두 번째 삶을 사는 것 같은 통찰력을 가진 모모를 통해 로맹 가리는 생의 본질에 대해 묻는다. 그리고 답했다. 그의 작품과, 실제 생에서의 선택으로(로맹 가리는 사랑하는 아내 진 세버그를 잃고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모모는 말한다. 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삶 속에서 사랑을 깨닫고 실천하는 순간 생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생이라는 토양에서 꽃을 피우게 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양분이라고, 모모는 죽은 로자 아주머니의 곁을 지키는 행동을 통해 말한다. 


각자의 생은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주어진 것이 아니다. 하지만 주어진 생을 어떻게 쓸 것인가는 자신의 선택이다. 생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꽃을 피울 것인가. 연기처럼 흩어지게 할 것인가. 선택은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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