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JS Aug 18. 2019

(책리뷰)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김영하


‘모든 작가의 데뷔작은 검은색이어야만 한다. 그건 어떤 불이 타오르고 남은 그을림의 흔적이니까.’ 작가란 무엇인가의 파리 리뷰 인터뷰 모음집 추천서를 쓴 김연수 작가의 말이다. 소설을 보면서 딱 이 문장이 머리에 스쳤다.


현재 가장 인기 있는 국내 작가를 말해보라고 했을 때, 김영하 작가의 이름이 나오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의 다른 작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죽음에 대한 갈망, 그것에서 비롯되는 삶의 허무함과 역설적인 쾌락이 그의 색채인데 이러한 주제들을 가지고 대중적인 인기를 누릴 수 있다는 점이 그의 주제의식처럼 역설적이게 느껴져 늘 신기하게 느끼고 있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작가의 데뷔작이기 때문인지 ‘검은색’이라는 비유가 너무나 잘 와 닿을 만큼 색채가 강렬하고 뚜렷하다. 일반적으로 다루기 어려운 주제들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쉽게 읽힌다. 이것이 위에서 말한 역설에 대한 그의 비결일까, 어쩌면 대중들은 사회적으로 터부시 되는 죽음이라는 이야기를 가장 궁금해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주어진 삶에 더 이상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권태로움에 파묻혀 관성대로 살아가는 C와 K, 지독한 삶의 허무라는 사슬을 깨고자 스스로 생을 마감하길 원하는 유디트와 미미. 자살하고자 하는 의지, 그 씨앗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내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도록 도와주는 화자는 두 종류의 사람을 구분해 자살을 원하는 자들을 돕는다.

다섯 명은 공통적으로 권태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로 인한 결말이 계속되는 삶이든, 죽음이든, 마치 큰 몸통을 가진 나무에서 가지를 뻗어 나가듯이 각자의 방식과 선택으로 각자의 결말을 가져온다.

유디트는 권태라는 씨앗을 가장 크게 키워낸 인물이다. 그녀에게 삶이란 무의미이다. 미미는 자신의 권태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를 한다. 그 시도는 오히려 그녀의 권태를 증폭시키는 효소가 된다. 자전거가 넘어질 방향으로 핸들을 꺾고 페달을 밟아 나가듯이 어딘가 목적지를 향해 액셀을 밝고 나가는 K와 자신만의 작품으로 생의 의미를 갈구하는 C는 또 다른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죽음이라는 그물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은 주어진 삶에서 의미를 찾게 만든다. 그것을 찾지 못했을 때, 권태라는 씨앗은 자라난다. 숙주의 몸에 기생해 자라는 연가시처럼, 자라난 권태는 숙주가 스스로의 삶을 끊게 만든다. 생이 주어진 모든 인간이 평생 동안 경험하고 고뇌하는 일, 삶의 의미와 허무함, 그리고 죽음, 우리 주변에서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작가는 말한다.


간절히 원하는 일에서 재능의 한계에 직면한다던지,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던지, 평생을 바친 사업에 실패한다던지와 같은 인생이 뒤집힐만한 경험을 하지 못해서인지 나는 아직 그 끝없는 권태로움이라는 것을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나 역시 관성에 의해 살아가는 것일 수도. 다만, 죽음이라는 것이 삶에 공존하고 있으며 그것이 아직 오지 않는 한 매일매일, 순간을 즐기며 행복과 고통을 누릴 수 있는 것, 이것만이 인간 삶에 주어진 축복이 아닐까.


유디트, 마라의 죽음,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이전 02화 (책리뷰)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