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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S Apr 18. 2019

(책리뷰)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책 표지, 쓸데없이 귀엽다.


이전 책들과는 좀 다르게 가벼운 느낌의 책을 읽고 싶어 고른 책이다. 하루키의 장편소설뿐만 아니라 에세이도 어느 정도 읽은 나름 하루키 매니아이기 때문에 펄럭펄럭 재밌게 읽었다.

잡문집이라고 하지만 여타 단편, 에세이보다 내용이 알차고 유쾌하다. 번역가라는 다른 직업을 가진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사람의 냄새가 나는, 소설가로서 가지고 있는 나름의 단단한 고집과 신념을 슬쩍 훔쳐볼 수 있는 책이다. 평소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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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어 하루키는 마치 어릴 적 동네 형 같은 존재다. 문 밖을 지나 슬리퍼를 끌고 5분 이내 걸음 근처에 사는, 그 집 거실과는 조금 떨어진 골방에 자기만의 공간을 가지고 있는, 불쾌하지 않을 만큼의 홀아비 냄새가 나고 책장에는 생전 들어본 적도 없는 어려워 보이는 책들이, 벽은 각종 포스터로 덕지덕지 도배가 되어있는, 내가 사전 예고 없이 방문해도 거리낄 것 없이 누워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그런 사람, 반갑게 맞아주지는 않지만 일단 방문하면 으레 재미있는 썰을 풀어주면서 이런저런 잡지식을 알려주는 동년배 친구에게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어떤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사는 인간이라는 느낌이 드는, 그런 형 같은 느낌이다.

하루키가 49년생이니 굳이 따지고 들자면 동네 형보다는 동네 할아버지겠다. 하지만 이건 단순히 내가 하루키의 작품을 읽으며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느끼는 나만의 상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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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무라카미 하루키는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은가? 에 대해 생각해보면, 내 경우에는 이 책 내에서도 나오는 ‘체관과 멜랑콜리로 가득한’ 그 느낌이 좋아 자꾸 찾게 된다.

49년생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현재 시대의 젊은 사람들의 무기력함, 우울, 고독함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것들을 견뎌내고, 노력해서 답을 찾아내라고 채찍질하는 여타 자기 계발서, 터무니없는 ‘긍정’을 강조하는 베스트셀러들과는 다른 ‘무엇’이 있다. 

굳이 설명하자면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내면으로 깊숙이 침잠해가면서 자신만의 것으로 체화하는, 마치 바람에 몸을 맡기듯 흘려보내는 하루키만의 이야기 방식이 세계의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산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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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항상 하루키의 신작이 기다려지고, 한국어판이 출판되면 망설임 없이 구입하게 되는 이유는, 답을 정해 내려주는 선생님이나 성공한 소설가보다는, 단지 본인만의 이야기를 할 뿐 문제에 대한 답은 스스로 찾을 수 있게 해주는 옆집 형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 아닐까.




p.38. 우리네 세상사의 대부분에는 결론 따위가 없다. 특히 중요한 문제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해진다. 직접 발로 뛰면서 1차 정보를 많이 수집할수록, 취재에 시간을 더 투자할수록 매사의 진상은 혼탁해지고 방향을 잃은 채 어지러이 내달린다. 결론은 점점 더 멀어져 가고 시점은 이리저리 갈린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우리는 어쩔 줄 몰라한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옳지 않은지, 어느 쪽이 앞이고 어느 쪽이 뒤인지, 점점 더 알 수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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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8. 내가 소설을 쓰는 한 가지 큰 목적은 이야기라는 하나의 ‘생물’을 독자와 공유하고 그 공유성을 지렛대 삼아 마음과 마음 사이에 개별적인 터널을 뚫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누구든, 나이가 몇이든, 어디에 있든(도쿄든 서울이든), 그런 것은 전혀 문제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쓴 그 이야기를 당신이 ‘자기 이야기’로 확실하게 끌어안아주느냐 마느냐, 단지 그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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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4. 우리는 풍요로워지기 위해 일한다. 우리가 몇 가지 문제를 안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사회 자체가 부유해지면 그 문제들은 자연히 해소될 것이다.” 이것이 미래에 대한 기본 전망이었다. “노력하면 세상사는 좋은 쪽으로 발전한다.” 이런 인식은 유토피아적인 환상에 가까운 동시에 철저하고 효과적인 테제이기도 했다.

그런데 ‘사회의 경제적 발전이 그대로 개인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실감한 최초 세대가 이 시점에 등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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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21. 사회가 본래 제아무리 열악하다 해도, 개선의 여지가 아주 조금밖에 없다고 해도, 조금씩이라도 좋으니 우리는 그것을 보강해나가야만 한다. 그러한 의지야말로, 고통을 견디면서 사회의 개방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야말로, 우리 안의 폐쇄성을 올바르게 활성화하지 않을까. 나는 기본적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설령 상대가 그것을 원하든 원치 않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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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86. 책이란 읽는 연령에 따라 혹은 읽는 환경에 따라 그 평가가 미묘하게 변하고 오르락내리락하게 마련이다. 셰익스피어든 카프카든, 체호프든 발자크든, 소세키든 다니자키든, 독후감은 그때그때 상당히 달라진다. 다시 읽고 살짝 실망할 때가 있는가 하면, 새삼 재평가할 때도 있다. 같은 작가의 글이라도 A라는 작품이 B보다 뛰어나가도 생각했는데, 어느 시기를 경계로 B가 A보다 더 좋아지기도 한다. 그것은 소설뿐만 아니라 음악도 마찬가지다. 그런 추이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정신적 성장이나 변화를 읽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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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92. ‘사람들은 다들, 살면서 어떤 하나의 소중한 것을 찾아 헤매지만 그것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혹시 운 좋게 찾았다 해도 실제로 찾아낸 것의 대부분이 치명적으로 손상되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그것을 찾고 추구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가는 의미 자체가 사라져 버리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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