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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S May 19. 2019

(책리뷰)노인과 바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건조하고 무뚝뚝한 문체가 오히려 노인의 뜨거운 심장을 돋보이게 한다. 84일 동안 단 하나의 고기도 잡지 못한 노인은 다음날에도 어김없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사흘간의 사투 끝에 잡은 고기를 상어들에게 뜯기고 그 상어들을 죽이며 살아 돌아온 노인은 이 세상 속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 하나의 인간을 대변하는 듯하다.



산티아고 노인의 짧은 이야기는 우리 삶에서 노력과 실패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다른 이들에게 실패자로 여겨지는 그를 지지하는 것은 오직 한 소년뿐이다. 볼품없는 노인의 삶에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묵묵히 그의 뒤를 바라보고 지원하는 '가족'이다. 하지만 망망대해에서 고기와 사투를 벌이는 현장은 오로지 노인 혼자이다. 누구나 삶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노인의 고통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나도 억지로 하기 싫은 공부를 하기 위해 엉덩이를 붙이고, 수능을 보고,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을 보고, 중요한 프로젝트의 PT를 준비하며 긴장했던 순간들이 스쳐갔다.



고기를 잡고 있는 줄을 놔버리면 편해질 것을, 노인은 그 줄을 절대 놓을 수 없다. 그것은 노인의 삶 전부이다. 때때로 찰나의 순간이 생의 전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노인도 그래서 놓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우리가 인생에 있어 중대한 기로에서 선택을 할 때, 극한의 상황에 놓였을 때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러나 눈부신 성취 후에 오는 것은 허무함이다. 정신을 잃을 정도로 사투를 벌이며 잡은 고기의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든 상어들 그것은 우리 삶에 놓여있는 고통과 불행이다. 생에 있어 눈부신 성취와 끔찍한 고통은 필연적으로 공존한다. 이것들은 아무리 쫓아내도 상어처럼 끝없이 몰려온다. 그것이 삶 자체 이기 때문이다. 간신히 머리와 뼈들만 남기고 돌아온 노인에게 남은 것은 소년과 상어를 잡았다는 작은 영광뿐이다. 그리고 사자 꿈을 꾸며 잠드는 노인의 작은 안식, 이것은 헤밍웨이의 혼란스러웠던 말년을 헌신적으로 간호했던 부인 메리를 연상하게 한다.



인생의 황혼기에 발표한 노인과 바다에서 헤밍웨이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허무주의로 가득 찬 세상에서의 인간의 가능성이다. 거대한 자연 앞에 하나의 인간이란 너무나 나약한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살아간다.


"But man is not made for defeat, " he said.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노인과 바다 전체를 품고 있는 명문이다. 국내 번역 출판한 민음사, 문학동네, 열린 책들 번역이 조금씩 달라 번역된 문장은 느낌이 다를 수 있다. 원문 자체에서만 느껴지는 메시지의 힘, 예전에는 사실 잘 몰랐는데 이 문장을 통해 조금 알게 되었다.




모든 인간의 삶은 허무하다, 그러나 그 삶 속에 작은 빛이 있고 그것은 우리를 다시금 삶에 이끌리게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헤밍웨이는 그 허무함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작품 자체도 훌륭하지만 이 작품은 헤밍웨이의 삶과 겹쳐짐으로써 불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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