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학자이자 신경과 의사인 올리버 색스가 다양한 사례의 환자들을 접하며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이 단순하게 환자들의 증상에 집중했다면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는 그가 경험했던 환자들의 증상에서 느낀 인간이라는 존재의 의미에 대해 물으면서, 책을 읽는 독자들이 각자의 생각을 곱씹을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기억이란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고된 삶을 지탱하게 해 주는 인간의 뿌리이다. 만약 뿌리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줄기는 곧 생명력을 잃을 것이다. 기억의 상실은 곧 인간에게 죽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 기억이라는, 얼마나 얇고 깨지기 쉬운 것에 의지하며 살아가는가 대한 생각으로 씁쓸한 기분이 든다.
또한, '몸이 없는 크리스티너' 챕터에서 우리가 자신의 몸을 스스로 통제하고 그것을 이용해 다양한 활동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새삼 깨닫게 만든다. 우리 몸의 안의 '뇌'라는 작은 장기의 미세한 손상이 몸 전체에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허탈한 기분에 젖게 만든다.
신경정신학의 많은 케이스인 상실과, 결손이 아닌, 과잉으로 인한 사례는 우리에게 또 다른 생각할 거리를 준다. 흔히 뇌전증, 투렛 증후군으로 대표되는 질병은 순간적인 뇌의 신경 발작으로 인해 몸이 통제를 벗어나는 것이다. 그 신경 발작으로 인해 보통 사람이 볼 수 없는 것들을 본다던지, 예술적 영감이 고도로 증폭되게 되는데, 이것이 일상생활에서 줄 수 없는 너무나 큰 행복감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이 질병을 앓는 사람들이 질병을 치료한 후에 오히려 활기가 떨어진다는 내용이 있다.
병을 치료하는 것이 오히려 그 사람을 병들게 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건 육체와 정신의 건강한 상태이다. 일상생활이 불편하지만 이 병이 오히려 자신에게 큰 쾌감과 활력, 건강함을 가져다준다면 그 질병은 치료되어야 마땅한가? 나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우리가 보고 감동을 받는 다양한 예술 작품도 이 범주에 포함이 될 것이다. 불후의 명작을 남긴 예술가들이 이런 증상을 조기에 알아 치료를 받았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칭송해 마지않는 예술 작품들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능지수를 숫자화 한 것은 인간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 중 하나일 것이다.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능지수가 낮은 자폐증 환자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 나 역시 이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폐증 환자들은 자신만의 섬을 가진 이들이다. 그 안에서 다양한 섬을 다니는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독창성을 지니게 된다. 그 독창성은 다양하고 특별한 예술적 능력으로 나타난다. 지금은 과거보다 장애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되어 많은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종종 볼 수 있지만, 지난 우리의 역사를 되짚어 봤을 때, 우리가 단지 무심하게 지나친 보통의 인간과 다르다는 이유로 무관심하게 휴지통에 버린 재능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사실 이 책을 읽으면 유물론적 관점으로 생각이 쏠릴 수밖에 없다. 뇌전증, 기억상실, 오감의 상실 등 이런 모든 질병이 뇌라는 한 신체의 일부의 오기 능으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인간의 '영혼'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필연적으로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영혼'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현재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저자는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신경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환자의 케이스에서는 이 단어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인간은 단순한 유기체에 불과하며, 우리의 모든 행동과 심리 상태는 뇌라는 작은 장기가 발산하는 신경작용에 제어된다. 그 작은 장기가 조금이라도 손상되면 우리의 몸은 걷잡을 수 없는 절망에 빠질 수도 있다. 이는 어찌 보면 허탈하면서도 인간이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되새기게 만든다. 반면에,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고통 속에서 그 질병을 극복하기 위해 분투하는 환자들의 노력과 그 환자에 인간적으로 공감하며 병을 치료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저자의 모습은 다시금 인간의 위대함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