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린다. 한 인간의 가장 큰 변곡점이 되는 결혼과 출산. 농경사회부터 시작되어 현대까지 이어오고 있는 인간의 대표 문명인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 가족의 구성을 목적으로 하는 행복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쉽게 깨어질 수 있는가, 이것을 도리스 레싱은 다섯째 아이라는 작품으로 다소 섬뜩하게 표현한다.
주인공 데이비드와 해리엇은 사랑과 결혼에 있어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전통적인 가치관의 신봉자이다. 평생을 사랑할 상대를 찾고, 그 사람과 결혼해 아이를 최대한 많이 낳아 큰 집에서 화목하게 살겠다는, 오늘날에도 크게 이상할 것 없는 가족관이다. 네 번째 아이까지는 그들의 계획대로 착착 진행된다. 예전처럼 낳기만 하면 알아서 크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경제적인 압박이 있었지만, 데이비드의 아버지의 도움으로 그들의 '행복 청사진'을 그려나간다.
이것은 다섯째 태어난 아이 '벤'에 의해 철저하게 무너져 내린다. 가족 구성원 7명 중 한 명으로 인해 그들이 행복을 위해 세운 계획들은 무의미해진다. 전통적 가족관에 기반해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이렇게 쉽게 깨어질 수 있는 것인가라고 작가는 말한다.
보통의 인간과 완전히 다른 벤, 소설에서는 마치 원시인,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외모로 묘사되는데, 이것은 현재 인간이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해 문명을 이룩하기 전의 모습이다. 이것을 통해 작가는 인간이 구축한 문명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이며, 그 문명에 적응하지 못하는 다른 존재를 어떤 식으로 인식하고 배척하는가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보이고 있다.
외적인 모습뿐 아니라 인간의 문명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벤을 사회에서는 전혀 케어하지 못한다. 병원에서도, 학교에서도, 그것은 온전히 가족이 짊어져야 할 무게이다. 이 무게를 견디지 못한 가족은 무너진다. 결국 벤을 시설에 보내버리는 데이비드의 선택, 모든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벤을 되찾아오는 해리엇의 선택으로 인해 가족이 해체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내가 데이비드라면? 내가 해리엇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나머지 다섯 명을 위해 한 명을 희생시킬 것인가? 모성애라는 이름을 가진 죄책감으로 벤을 끝까지 품고 갈 것인가? 200페이지가 안 되는 내용에 이 정도 생각할 거리가 많다는 것이 놀랍고 흥미롭다. 후반부에는 벤이 변모하는 모습을 통해 이야기의 깊이를 더한다.
모든 가족 구성원에게 불행을 가져온 벤은 그럼 '악'일까. 벤은 존이라는 청년을 만나 이해되고 구제된다. 존이라는 청년은 전통적인 가족 구성에서 벗어난 캐릭터이다. 친구들과 몰려다니고, 가끔 나쁜 짓도 저지르는, 문명에서 벗어난 이들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적응하는 벤을 보여줌으써 작가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들을 던진다.
우리와 전혀 다른 존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철저하게 배척할 것인가? 포용할 것인가? 이것은 생태계의 정점에 선 인간, 문명을 이루며 살아가는 사회가 답해야 할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