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에 마스터피스를 남기고 싶었던 작가가 만들어낸 이 소설에는 조선말, 대한제국의 명운이 다하는 것을 시작으로 10명 내외의 인물들의 인생유전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실제 역사와 맞물려 우리의 현재 삶에 빗대어진 또 다른 ‘리얼리티’를 제공한다. 자신이 주인공이 된 것처럼 경험하고 슬퍼하게 하는 독자를 과거로 인도하는 ‘낡은, 가짜 리얼리티’ 대신, 과거를 현재에 연결시키는 실험으로 창조된 작가의 세계는 독자를 깊은 여운에 빠져들게 한다.
각자의 꿈을 안고 망해가는 나라를 떠나기 위해 제물포에서 출항한 배는 거대한 태평양 앞에 한없이 작은 인간의 맨얼굴을 드러내게 한다. 불안한 미래를 떠난 그들에게 닥친 현실은 그보다 더한 공포와 고통을 안겼다. 그것을 버티게 한 것은 오직 미래에 대한 희망이었다.
안착한 멕시코는 그들이 겪은 배보다 더한 지옥도였으며, 가혹한 노동과 농장주는 그들이 인간임을 잊게 만들었다. 하지만 동포의 배신과 협잡, 가족의 지리멸렬함과 같은 끔찍한 상황에서도 불구하고 희망을 품은 인간은 살아간다. 인간의 명줄이란 그들의 삶을 유지하게 하는 에테켄과 같이 질기다. 삶과 죽음, 거울로 서로를 비춘 것 같이 보이는 두 단어는 현재의 우리 주변에도, 백 년 전의 유카탄 반도 이주노동자들에게도 동시에 존재했다.
당시 노동자들의 열악하다 못해 끔찍한 현실은 아이러니하게도 현실과 기묘하게 맞물려 있다. 그들이 흘린 땀과 눈물, 피와 고름은 땅에 스며들어 멕시코의 역사 속으로 묻혔다. 현재 유카탄 반도는 관광지로(칸쿤으로 국내에 많이 알려져 있다.) 탈바꿈되었다. 백 년 전 유카탄 반도를 디디며 살아갔던 당시의 조선인들은 현재 지구 반대편으로 휴가를 떠나 발을 딛는 그 후손들을 만난다.
계급과 종교 갈등은 정반합의 과정을 거치듯 인간사에 있어 빠질 수 없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인류의 검은 유산이다. 문명이라는 빛에 의해 거대해진 그림자는 현재까지도 갈등을 이어지게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끔찍하게 만들고 있다. 불과 백 년 전 역사에서, 소설 속에서 드러나는 갈등에 있어 과거와 현재는 별반 다르지 않다.
망한 나라의 재건을 이루려는 자, 모두가 평등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꿈꾸는 자, 제 몸 건사하기 위해 동족은 물론 신념까지 파는 자, 저마다의 가치관을 숭배하는 이들은 저마다의 행동으로 자신의 삶을 쌓아나간다. 수많은 세월에 의해 쌓인 과거의 탑은 우리 현재의 삶에 투영된다. 그때 무자비하게 짓밟았던 마치 마야 문명을 이제야 보존하고 복원하려는 것처럼.
한 인간에게 국가란 무엇일까, 이 소설에서는 여러 캐릭터의 입을 빌려 표현한다. 떠나온 망국에서 타국의 혁명에 휩쓸린 이들이 국가라는 가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주인공 김이정은 죽음을 예감한 듯 그가 생각하는 국가에 대해 말한다.
p.273. ‘어쩌면 우리 모두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어. 왜놈이나 되놈으로 죽고 싶은 사람 있어?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 이정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차라리 무국적은 어때? 돌석이 말했다. 이정은 고개를 저었다. 죽은 자는 무국적을 선택할 수 없어. 우리는 모두 어떤 국가의 국민으로 죽는거야. 그러니 우리만의 나라가 필요해. 우리가 만든 나라의 국민으로 죽을 수는 없다 해도 적어도 일본인이나 중국인으로 죽지 않을 수는 있어.’
그들이 40명 남짓 인원으로 만든 나라 ‘신대한’은 그들이 죽을 때 선택하고자 했던 국가였다. 마지막 제4신전에서 탈출하지 않고 죽은 박광수가 지니고 있던 대한제국의 인장이 찍힌 여권은 나라를 잃은 한 인간, 나라 잃은 자들이 꿈꿨던, 그들이 상상했던 국가의 국민으로 죽고자 했던 작은 희망을 의미한다.
본인이 쓰고자 했던 마스터피스를 그대로 창조해낸 작가의 능력에 다시 한번 놀라움을 느꼈다. 과거의 역사 사실을 단순 배경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닌, 현재에 역사를 짜 맞추듯 순간의 장면들과 연결시키는 이야기는 현재의 삶에 대한 깊은 사유를 꽃피게 하는 토양이 된다.
이 작품을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료를 찾고 읽었을지, 얼마나 많은 인터뷰를 했을지, 그리고 약 3개월간 모든 일을 중단하고 작품을 위해 실제 멕시코를 답사했다는 정보는 이 소설이 가지는 깊이와 내용을 제외하고도 새삼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확실한 이유로 다가왔다. 작가의 이름이 작품의 보증수표가 된다는 것, 이것은 어쩌면 작가가 스스로 증명한 명예임과 동시에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거대한 무게일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