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장기 이식을 목적으로 태어난 클론, 캐시의 회상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가공할 만한 상상력이 가미된 SF 소설이 아니다. 여느 십 대 소년 소녀 간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사건과 미묘한 감정, 질투와 같은 것들이 주된 내용이다. 여기에 간병인, 기증, 클론, 건강, 등과 같은 알 수 없는 단어들이 등장하게 하면서 독자가 캐시의 회상을 더듬어 가게 한다.
이전에 읽은 ‘남아있는 나날’과 비슷한 구조로 읽혔다. 주인공의 회상으로 이루어지는 짧은 기억들의 단편, 사건마다 조금씩 풀려가는 단서들이 직소 퍼즐처럼 모이고 하나씩 맞춰져 결론에 이른다.
클론으로 태어났지만 일반적인 인간과 다르지 않은 유년 시절을 보내는 루스, 토미 그리고 캐시. 자기주장이 강하고 리더 기질을 가진 루스와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진 독립적인 토미는 해일셤 학생들이 공인하는 커플이다. 조금은 소심하지만 강단 있는 주인공 캐시는 매력적인 두 친구에게 끌리게 되며 셋은 우정을 넘어 남녀 간의 미묘한 사이가 된다.
자신들의 존재 목적, 삶이 주어진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지만 그것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은 해일셤의 금기와 같았기 때문에 누구도 명확하게 묻지 않는다. 질문에 대한 답을 듣는 순간 믿고 싶지 않은 진실을 알게 된다는 무게 때문이었을까. 작품에 등장하는 클론들이 인간과 너무나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어 더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어린 시절 어렴풋이 알고 있던 자신들의 운명에 대해 그들은 침묵한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야 자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루스를 보며 그들이 인간과 전혀 다르지 않은 존재임을 또 한 번 느낄 수 있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네버 렛 미고’를 부르는 캐시를 보며 눈물 흘리는 마담, 순진하게 미래를 꿈꾸는 해일셤의 학생들에게 결국 진실을 내뱉고 쫓겨나는 루시 선생님, 마지막 헛된 희망을 꿈꾸며 찾아온 토미와 캐시에게 진실을 말하는 에밀리, 이들 모두가 클론이 또 다른 인간임을, 그들이 인간과 다르지 않은 ‘영혼’을 가진 하나의 생명체라고 느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개인이 막을 수 없듯이 존재 가치가 주어져 태어난 클론들의 생은 인간과 구별되며 캐시의 주변 인물들은 하나씩 주어진 임무를 완료하고 생을 마감한다.
‘나한테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있나요?’
영혼을 증명하기 위해 다양한 예술 작품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해일셤의 아이들, 그들은 예술 작품이 그들의 영혼을 증명한다고 믿어왔으며, 암암리에 퍼져있는 ‘서로 사랑하는 커플이 3년의 삶을 유예받을 수 있다’는 소문을 굳게 믿는다. 그것만이 그들에게 남겨진 유일한 희망이자 구원이었기에.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헛된 바람임을, 해일셤의 교장이었던 에밀리의 입을 통해 듣는다.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던 잔혹한 진실은 가혹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후련함을 느낀다. 그래. 결국 이런 거였지. 삶과 죽음이 정해진 존재, 인간을 대체하기 위한 한낱 ‘부품’이라는 충격에도 불구하고 캐시에게 소중한 기억은 남아있다. 오직 그 기억만이 친구들이 떠나고 남은 그녀의 삶을 유지하게 할 것이다.
마지막 3장에서 보다 강한 힘을 주기 위해서였는지 단편 단편의 기억을 회상하는 방식이 읽는 입장에서 조금 힘들었다. 또 10대 여자 아이 간의 사소한 감정 다툼에 대한 묘사가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서술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지만 그들 역시 인간과 같은 감정을 느낀다는 서술을 위한 장치였다면 또 이해가 가기도 한다. 앞서 말했듯 이 소설은 흡입력 있게 쭉 읽히지 않는다. 내 경우엔 2부를 거의 다 읽고 나서야 속도가 붙었다. 하지만 여느 SF 소설과는 다른 여운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 의미 있었다.
오직 인간만이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를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이 언제까지 지속될까. 이 책임에 대한 무게는 우리 세대를 넘어 인류가 고민해야 할 근원적 문제일 것이다. 나를 보내지 마를 읽고 발전하는 기술이 오히려 인간이라는 가치를 위협하는 트리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서늘한 기분이 든다. 흔히 알려진 멋진 신세계나 1984, 혹은 필립. K. 딕의 디스토피아 소설과 달리 인류에 대한 위협이나 대단한 과학 기술에 대한 묘사 없이 단순한 남녀의 심리묘사를 중심으로 이 정도 깊이를 이끌어 낸다는 힘은 정말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