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페스트 - 알베르 카뮈

by HJS
KakaoTalk_20190721_221209198.jpg

오랑이라 불리는 작은 도시에 페스트가 창궐한다. 고통 속에 죽어가는 환자들, 페스트에 체념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가족과 생이별한 사람들, 병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 등 극한의 환경 속에서 다양한 인간의 모습, 카뮈 작품의 특징인 부조리함 속에서의 인간의 선택과 의지를 볼 수 있다.


고립된 도시에서 오랑 시민들이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해가는 과정이 굉장히 디테일하다. 마치 르포소설 같이 카뮈가 실제 전염병이 돌았던 도시를 방문한 경험이 있는지 찾아보게 만들 정도.

전염병 초기에 사람들은 관계의 단절과 고독을 경험한다. 병이 퍼지기 전 그들 주변에 존재했던 사람, 환경의 소중함을 깨닫지만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인간을 버티게 하는 최소한의 가치인 '희망'을 좀먹으며 자란 전염병은 시민들의 인간성까지 갉아먹는다. 전염병으로 사망한 시체들이 더 이상 한 인간이 아닌 숫자로 변하게 되고 죽음이 더 이상 멀리 있는 것이 아닌 도처에 널려있는 공기와 같은 것임을 시민들은 각자의 피부로 느낀다. 폐쇄된 도시에 사는 '희망'과 '공감력'을 상실한 시민들은 페스트라는 관성에 떠밀려 살아간다.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다양한 인간 군상을 대표하며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페스트에 맞서는 의사 리외, 그는 죽어가는 환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자로서 환자에 대한 공감으로 행동한다. 보건대 따위가 무슨 소용이냐고 말하는 희망을 잃은 자들에게 리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라고 말한다.

타루는 리외의 가장 강력한 아군이다. 유럽 각지에서 사회운동을 해온 그는 적극적으로 리외를 도우며 보건대를 조직한다. 타루는 어린 시절 사형선고를 당하는 범죄자를 보고 사회 부조리에 맞서게 되는 인물이다. 타루를 통해 카뮈는 페스트가 단지 병이 아닌 인간이 직면한 여러 문제임을 말한다. 파리에 두고 온 연인을 만나기 위해 경비를 돈으로 매수하는 등의 다양한 탈출을 시도하는 랑베르, 그의 자신의 행동을 비판하지 않고 의사로서의 직분을 묵묵히 수행하는 리외로부터 페스트에게 잊혀진 양심을 깨닫는다.

기존 사회질서에서 낙오된 범죄자 코타르는 전염병이 창궐한 도시에서 오히려 활기를 얻는다. 범죄자로서의 낙인으로 인해 삶을 포기하려 했던 코타르는 페스트라는 예비 사형선고를 받은 오랑 시민들과 동일한 위치에 서게 됨으로써 다시 삶의 의욕을 느낀다. 자신의 욕망과 안위를 위해 타인의 고통에는 무관심한 자, 즉 공감 능력을 상실한 사람이다. 카뮈가 말하고자 하는 '페스트'에 감염된 이가 바로 코타르이다. 공감능력을 상실한 이가 또 있다. 신부 코타르는 페스트가 신이 내린 형벌이며 신의 뜻을 기꺼이 받아들여 영생을 얻어야 한다고 설파한다. 죽음보다 신앙을 잃기를 원치 않았던 그는 결국 페스트에 걸리고 의사의 진료를 거부하며 사망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신부 역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자신의 직분에 최선을 다했다. 다만 그는 공감 능력을 상실했을 뿐이다.




결국 카뮈가 말하는 페스트는 인간으로서 공감 능력의 상실을 말한다. 바로 옆방 사람이 죽어나가는 상황뿐 아니라 심지어 자신의 가족이 병에 걸려도, 어린아이들이 고통받는 사회에도 슬퍼하지 못하고 넋 놓고 바라보게 만드는 공감 능력이 상실된 극한의 상황, 이런 '페스트'에 감염된 인간들로 구성된 사회가 돼버릴 때 우리 사회는 공멸한다.

인간이 직면한 문제는 인간 스스로 부딪혀 극복해야 한다. 이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과제이며 직분이다. 자신이 직면한 상황에서 최소한의 양심을 가지고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 이것이 타루가 찾고자 했던 인간의 삶에서 성자가 되는 방법이 아닐까.


타루가 리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것이 카뮈가 페스트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아닐까 싶었다.


'선생님 편에 서서 이 병과 싸워야 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이번에 유행한 이 병을 통해 내가 알게 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에요. 내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사람은 저마다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 세상 그 누구도 페스트 앞에서 무사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자칫 방심한 순간에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전염시키지 않도록 끊임없이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병균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 외의 것들, 이렇게 말해도 괜찮다면 건강, 청렴결백함, 순결함 등은 의지의 소산이에요. 결코 중단되어서는 안 될 의지 말이에요. 정직한 사람, 거의 아무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가능한 한 방심하지 않는 사람을 뜻해요. 절대 방심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한 법이죠! 그래요 리외. 페스트 환자가 되는 것은 피곤한 일이지만,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은 더욱 피곤한 일이에요. 그래서 모든 사람이 피곤해 보이는 거예요. 오늘날에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페스트 환자거든요.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몇몇 사람들이 페스트 환자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하면서 죽음이 아니면 빠져나갈 수 없는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는 거고요.'
이전 18화(책리뷰)나를 보내지 마 - 가즈오 이시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