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작가를 물어볼 때 나는 망설이지 않고 이승우 작가를 꼽는다. 묵직한 이야기의 힘과 문장의 깊이로 이름만 보고 책을 구입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 중 하나이다.(온전히 내 기준) 사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너무나 유명한, 긴 말 필요 없이 엄지를 올릴 수 있는 작가이다. 아쉬운 점은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 외엔 거의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화제의 축구 선수와 동명이인인 이유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더 적게 알려져 있다는 생각도 든다.
흔히 ‘홍대병’이라고 불리는, 나만 아는 가수가 티비 예능이나 방송에 출연함으로써 많은 대중에게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심리를 뜻하는 유행어가 있다. 그 유니크 함을 사랑하는 것인지, 그것을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저런 심리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내가 아는 작품이나 작가, 감독을 타인이 알고 있을 때 더 큰 희열을 느낀다.
대화 중 관련된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혼자 신이 나서 열변을 토한다. 상대가 그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뉘앙스를 느끼면 열심히 좋은 점을 설명하면서 비호감을 호감으로 바꾸기 위해 최선을 다해 변호했다. 나는 왜 그랬을까? 아마도 내가 느꼈던 감동을 상대도 같이 느껴줬으면 하는, 나의 이 벅차오르는 감성을 알아줬으면 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아니었을까.
이제는 이렇게 열심히 홍보하지 않는다. 내가 한 시간을 얘기하던, 24시간을 따라다니며 주야장천 열변을 토하던, 이미 그 사람의 인식을 바꾸기는 너무나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취향이란 개인의 영역이며 그것은 모든 사람의 개성이다. 타인을 이해하고 존중하게 됐다고 해야 할까. 이제 보니 나도 철이 든 것 같다.
책은 짧은 단편들의 모음으로, 그림과 같이 묶여 있다. 다른 장편들처럼 문장을 깎아 내려가며 깊은 사유와 고찰이 담긴 이야기는 아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것들이지만, 짧은 이야기에서 툭툭 던지는 삶의 불가해함에 대해, 이것에 대한 진득한 관찰을 엿볼 수 있다.
소설가는 왜 말하려고 하는 것을 그대로 말하지 않고, 애써 허구의 이야기를 빌려 말하려고 할까. 마치 거울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것처럼, 소설이라는 창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바라볼 때, 현실에서 느낄 수 없는 어떤 깊은 사유를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소설은 계속해서 쓰이고 읽히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최근 유튜브에는 영화나 책을 보는 시간을 아껴주기 위해 짧게 줄거리만 요약한 콘텐츠들이 올라온다. 바쁜 현대인들의 수요에서 탄생한 콘텐츠이다. 나도 몇 번 본 적이 있지만 다 보고 난 후에 남는 것이 없었다. 육개장 사발면으로 1분 만에 끼니를 때워버린 느낌이 들었다. 현대 사회는 너무 빠르게 변하고, 움직이고, 소비된다. 가끔은 느리게, 멈춰서, 조금씩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책도, 영화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이야기에 흠뻑 몰입한 후 몰려오는 여운은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건 내가 해봐서 안다. 요즘 친구들이 나를 꼰대라고 말해도 소용없다. 이건 진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