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유명한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짧은 소설은 일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동양의 미를 대표하는 탐미주의 소설로 꼽힌다. 일본의 최고 다설지인 니키타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은 단 첫 문장으로 긴 터널을 빠져나온 후 펼쳐지는 고립된 눈의 고장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신비롭고도 아름다운 일본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한 중년 남자와 젊은 게이샤들 사이의 미묘한 감정 교류는 더 애틋하면서 허무하게, 또 이상하게 느껴진다. 눈이란 보통 순수함을 상징하는데, 겨울이면 눈이 많이 내리는 마을의 온천에서 일하는 게이샤들은 도심지의 사람들과는 다른 어떤 역설적인 순수함을 가지고 있다. 약혼자를 위해 4년간 게이샤로 일을 하는 고마코는 그에게 생긴 새 여자 요코와 미묘한 관계이다. 그가 병들어 죽었기 때문이다. 같은 남자를 떠나보낸 두 게이샤는 무엇에 의지해 살아야 할까. 외지인 시마무라는 두 여인에게 측은함과 호감을 동시에 느낀다. 시마무라에게 ‘모든 게 헛수고’처럼 보이는 삶은 두 게이샤에게도 자신에게도 존재한다.
외지인인 자신을 향한 호감과 애정을 그대로 발산하는 고마코, 차가워 보이지만 병든 애인을 끝까지 간호했던 요코는 내면의 뜨거운 감정을 좀채 드러내지 않는다. 마치 밤과 낮처럼 공존하는 두 여인의 삶, 공통분모였던 남자가 죽은 후 텅 빈자리를 채우지도, 떠나지도 못하는 외지인 시마무라. 그는 겨울이 되기전 죽는 벌레들처럼 자꾸 그 고장으로 돌아온다. 때로는 발산하고 때로는 절제된 그녀들의 감정은 삶의 허무함을 느껴 외딴 마을로 도피해온 남자에게 신기한 것이었기 때문일까.
사실 읽으면서 큰 감명은 받지 못했다. 눈의 고장이 궁금하기는 하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은 늘 인간을 감상에 젖게 만드니까. 아쉬웠던 이유는 일본인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과 문화가 내게는 없기 때문일지도. 하지만 이 핸디캡을 극복하고도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다. 궁금해 찾아보니 설국이 널리 알려지기까지 역시 번역에 엄청난 공이 있었다. 번역이란 다른 작품을 만들어낸다고 할 정도로 어렵고 신기하고 고된 작업이다. 과하거나 부족할 경우 모두 본래의 색채를 잃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번역은 본래 작품이 가진 농도를 더 짙게 만들기도 한다. 모든 문학 작품의 번역자에 대한 존경심이 샘솟는 한 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