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체호프 단편선 – 안톤 체호프

by HJS


단편 하면 한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작가, 셰익스피어와 더불어 꼽히는 극작가, 그리고 의사였던 체호프는 19세기 말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작명을 떨친 세계적 작가들이 그렇듯, 가난은 그의 능력을 꺾지 못하고 오히려 불태우게 했다. 글자 수로 돈을 받던 시대였기 때문에 대부분 길었던 러시아 문학 작품들과 별개로 그는 단편을 써냈다.


그의 단편에 나오는 등장인물은 대부분 상대방의 행동에 대한 몰이해로 시작한다. 이는 불가항력으로 세상에 내던져진 각각의 인간 존재에 대한 이유를 고찰하고자 했던 체호프의 표현 방식이다.


<관리의 죽음>에서는 자신의 상관에게 재채기를 하다가 침을 튀겼다는 사실에 지레 걱정해서 계속 찾아가 사죄를 하는 남자가 나온다. 상관은 별것도 아닌 것으로 자신을 계속 찾아오는 남자가 짜증 난다. 상관에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해프닝이다. 남자와 상관이 경험한 장소와 사건은 동일하지만, 그것에 대한 기억의 무게는 너무도 다르다.

<공포>와 <베짱이>, <베로치카>에서는 남녀 간의 의사소통에 대한 아이러니를 이야기한다. 남자와 여자, 서로가 원하는 것과 표현의 방식은 너무도 다르다. 강렬하게 원했던 상대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즉시 그 욕망은 소멸하기도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도 익히 알고 있는 남녀 간의 문제를 넘어 체호프는 삶의 모호성, 생이 주어진 인간으로서 알 수 없는 무지의 공포에 대해 말한다.

초기 유머 소설을 썼던 모습이 드러나는 소설도 있다. <드라마>는 얼토당토않은 희곡을 평가해달라고 찾아온 여자의 낭독을 들으면서 정신이 혼미해지는 과정을 그렸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단편은 <미녀>였다. 아름다움에 대한 본질, 미인에 대한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뿐만 아니라, 그녀들을 바라봄으로써 각자의 인간이 각자의 향수를 자극하고 그것을 통한 슬픔을 불러일으키게 한다는 것은 막연하게 생각만 했던 안개들을 모아서 덩어리로 응집시킨 것 같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독특한 표현 방식이었다.


읽다 보면 기 드 모파상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모파상이 부드럽고 따뜻한 묘사라고 한다면 체호프는 간결하며 무덤덤하다. 하지만 더 깊고 강한 울림을 준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나는 체호프다. 무거운 주제를 띄고 있지만 이야기 자체가 어렵게 읽히지 않아 시간 틈나는 대로 읽기 너무 좋은 작품들이다. 단편선이 나온 출판사마다 수록되어 있는 작품들이 다른 것 같다. 꼭 다른 출판사의 단편선 또한 구입해 읽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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