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 류노스케의 단편 모음집이다. 300 페이지가 안 되는 책 안에 14개의 단편이 들어있어 내용이 길지 않고, 일본 고전 설화를 모티브로 창작한 동화 같은 작품도 끼어 있어 쉽게 읽힌다. 일본 문학사에서 빼놓지 않고 꼽히는 작가인데 반면, 한국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그의 이름을 딴 안경이나 애니메이션이 더 유명하다. 작가로는 그의 영향을 받은 다자이 오사무가 오히려 더 잘 알려져 있다.
책의 타이틀을 왜 ‘라쇼몬’으로 정한 건지 궁금했다. 아마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동명 영화 ‘라쇼몽’이 국제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영화는 ‘라쇼몬’과는 전혀 다르다. 오히려 ‘덤불 숲’이 주된 모티브가 된 작품이라는 것을 나도 이 책을 보고 나서 알았다.
태생부터 사연이 깊은 작가의 삶 때문인지 전체적인 내용이 어둡고 우울하며 주로 인간 삶의 심연과 죄악에 대해 이야기한다. <코>, <엄마>, <거미줄> 등 채 20페이지가 안 되는 분량의 단편소설은 짧은 내용 안에 놀라울 정도로 집중하게 하는 이야기의 힘이 있다.
가장 좋았던 세 편을 꼽자면 <지옥변>, <덤불 숲>, <갓파>이다. 먼저 <지옥변>은 류노스케가 살아생전 추구했던 '예술을 위한 예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지옥변이 그려진 병풍을 완성하기 위해 어떤 짓도 서슴지 않는 괴이한 화가의 이야기이다. <덤불 숲>은 너무나 유명한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라쇼몽의 모티브가 된 작품이다. 한 사건을 바라보는 여러 인물들의 관점을 묘사하면서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공포를 환기시킨다.
마지막 <갓파>에서는 당시 류노스케의 주변 인물들이 자살하면서 스스로의 삶을 바라보는 태도의 변화, 환멸을 느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내용은 정신병원에 수감된 한 남자가 갓파의 세계에 갔다 온 이야기를 서술한 이야기이다. 갓파의 세계에서는 인간 세상과 모든 것이 정 반대이다. 암컷이 수컷을 사로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일종의 모계 사회가 형성되어 있다. 직공을 죽여서 그걸 풍족한 식량으로 삼는 법을 혐오하는 주인공에게 갓파들은 오히려 아래 계급을 끊임없이 착취하는 인간 사회를 들먹이며 파안대소한다. 또한 토크라는 시인 갓파는 자살을 하는데, 앓고 있던 병, 인생의 허무함, 예술의 목적 상실 등 작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문제를 동일하게 가지고 있는 캐릭터를 설정해 자신의 자살을 암시한 것처럼 느껴진다. 종교에 대한 관점 또한 지독한 현실을 잠시나마 도피하기 위한 피난처로 그린다. 이는 작게나마 남은 생에 대한 미련을 떨치고자 했던 당시 작가의 태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여태까지 읽었던 과거 일본 작가들의 작품 중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무엇보다 메시지가 뚜렷하고, 일본 설화 등을 모티브로 한 이야기도 친절하게 달린 주석 때문에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자살, 광기, 종교로의 귀의, 이 세 가지 선택지를 가지고 살았던 류노스케가 왜 자살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그의 생애를 알고 나서야 조금이나마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걸작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작가가 걸작을 창조해내는 것일까, 작가의 삶이 범작을 걸작으로 만드는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지난주에 읽은 이승우 작가의 단편집 내용이 다시 떠올랐다. 자신의 이야기를 써낸 사람, 작가의 생 자체가 또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게 아닐까. 아무튼 단편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