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날카로운 잽 같은 문장들로 서사를 풀어가다 갑자기 들어오는 강렬한 훅에 정신이 멍해진다. 우리 주변의 삶에서 이 정도 깊은 여운을 끌어내는 작품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더라. 책을 덮고도 한동안 머리가 띵 해질 정도의 서늘한 기분이 든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주로 20-30대, 청춘이라 불리는 세대이다. 최초로 부모세대보다 궁핍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전망되는 세대. 취업률과 출산율이 끝없이 떨어지는, 3포, 5포 등 꿈을 생각하기보다 포기할 것을 먼저 추려내는 그 세대.
선진화된 문명 속 갈수록 커지는 파이에도 불구하고 소시민들의 세계는 건조한 땅처럼 쩍쩍 갈라진다. 언젠가 삶에 햇볕이 들기를 기다리는 막연한 행운을 소망하는 그들에게 여지없이 찾아오는 것은 비행운이다. 자신이 꿈꾸던 삶은 원래 이것이 아니었다고, 되뇌는 사이에 어느새 청춘은 사라진다. 지독한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숨을 돌리고 싶어 비행운을 뿌리며 떠나고 싶다는 단꿈을 꾼다. 작품의 표제인 비행운은 수록된 단편 속 인물들이 꿈꾸는 현실 도피와 이내 부딪히는 현실의 벽 두 가지 중의적 의미를 내포한다.
작가는 이 시대를 사는 소시민들의 삶을 조망하지만 그들에게 알량한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다만 비행운으로 가득해 보이는 인물들의 삶을 묵묵히 바라볼 뿐이다. <서른>에서 예전 순수했던 시절에 알고 지내던 언니에게 모든 것을 쏟아내듯 고해성사하는 화자는 현재의 청춘을 대변한다. 사회 시스템에 젊음을 소진당하고 있는, 타인을 희생시켜야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극단의 경쟁 사회에 파묻힌 그들을 그리는 동시에 화자를 통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인간으로 자라났는지에 대한 자기반성, 공포를 그려낸다. 너무나 복잡하게 얽힌 이 사회 문제에 대해 어떤 해결 방법을 논하는 것이 아닌 피해자가 가해자를 낳는 모순된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소설이 해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 허구가 사실을 뛰어넘는 힘을 발산한다.
<그곳의 밤 여기에 노래>는 청춘의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와 계급에 대한 문제로 확장시킨다. 용대는 왜 그리 살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세습되는 계급에 대한 문제뿐만 아닌 국내에서 가장 고된 일을 하고 있는 불법체류자의 삶을 투영한다. 계급으로 구분되는 확연한 취향과 그들이 같은 문제를 두고 대처하는 방식에 대해 섬뜻할 정도로 예리하게 묘사한다.
<큐티클>과 <호텔 니약 따>는 20-30대 여성들에 대한 탁월한 심리묘사가 돋보인다. 남성 작가라면 절대 쓸 수 없을 것 같은 그 세대만의 심리를 정확히 포착했다. 주인공 두 친구의 상반된 성격, 겉으로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 이기적인 마음과 친구사이에서 지키고픈 알량한 자존심에 대한 극사실적인 표현 방식이 눈에 띈다. 재미있는 것은 전 남자 친구 캐릭터가 대부분의 작품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보통 ‘찌질함’의 대명사로 대표되는 전남친(혹은 썸남)은 다른 단편에선 더 심한 인간으로 나온다. 주인공을 구렁텅이로 몰아넣거나, 좋은 추억을 바라게 만드는, 다시 한번 상처를 안기는 애증의 존재로 묘사되는 것이 흥미롭다. 하지만 이것이 최근 극도로 치우친 선택적 여성주의의 시선이 아닌 등장인물을 각자의 독립된, 하나의 인간으로 관찰하고 묘사했다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이미 너무나 유명하지만, 이름만으로 믿고 볼 수 있는 작가를 한 분 더 찾게 되어 기쁘다.
이 책은 위로를 건네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를 위로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춘, 소시민들에게, 이토록 지독한 비행운으로 가득한 세상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란 무엇이란 말입니까?라는 질문에 지장보살처럼 일자로 덤덤히 닫혀있는 입술, 보이지 않는 미소만 보여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