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줄리언 반스

by HJS

한 인간의 기억으로부터 재구성한 사건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품게 해주는 책,

주인공 토니가 노년에 이르러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깨닫는 회한의 묘사가 대단하다.

한 인간에게 기억이란 것은 무엇인가? 두 사람의 관계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났다고 했을 때 그 사건은 당사자들에게 각기 다르게 기억된다. 그게 아무리 사소한 사건이라도 각자의 입장에서 해석되고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하물며 노년에 이르러서 회상하는 젊은 날의 기억이란 얼마나 신뢰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주인공 토니를 통해 인간이 스스로의 행동에 얼마나 관대하며, 어떤 사건에서 자신의 행위를 어떻게 정당화해 가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저주가 가득한 편지를 보냈으면서도 사십 년이 지난 후 본인의 행위가 용서받기를 원하고, 거기에 더해 베로니카와 다시 노년의 로맨스를 기대하는 토니의 모습이란! 어이없을 정도로 웃기면서도 한편으론 우리 스스로의 자화상인 것 같아 소름이 돋았다. 나 또한 내 인생의 수많은 사건들 속에서 얼마나 위선적인 행동을 해왔으며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했는가.




p.101.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 아니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깝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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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5.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는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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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1. 젊었을 땐, 자신의 감정이 책에서 읽고 접한 감정과 같은 것이 되기를 바란다. 감정이 삶을 전복하고, 창조하고, 새로운 현실을 규정해주길 바란다. 세월이 흐르면, 그 감정이 좀 더 무뎌지고, 좀 더 실리적이 되길 바라는 것 같다. 그런 감정이 지금 그대로의 삶과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응원해주길 바란다. 자신이 그럭저럭 괜찮게 살고 있다고 말해주길 바란다. 이런 심정이 일말이라도 그릇된 것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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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54. 인간은 생의 종말을 향해 간다. 아니다, 생 자체가 아니라, 무언가 다른 것, 그 생에서 가능한 모든 변화의 닫힘을 향해, 우리는 기나긴 휴지기를 부여받게 된다. 질문을 던질 시간적 여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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