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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S Feb 16. 2020

<드래곤볼 Z 카카로트> 게임 후기

추억팔이는 돈이 될 수도 있다


제대로 만든 IP 하나가 한 기업, 혹은 나라를 먹여 살린다는 사실은 재미있다. 그만큼 보이지 않는 문화의 힘은 강력하다. 80-90년대 내 또래에서 ‘드래곤볼’을 모르는 남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시대를 대표하는 타이틀이자 캐릭터로, 그 후에 태어날 모든 만화들에 대한 뿌리라 해도 과언이 아닌 엄청난 임팩트를 가진 작품이었다.



당연히 이 좋은 소스를 토대로 패미컴 시절부터 현재 게임 콘솔까지 드래곤볼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무수한 게임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중에 ‘잘 만들어진’이라는 형용사를 달 수 있는 게임은 손에 꼽는다. 대부분 대전 격투 형식의 게임으로 만화책의 추억을 떠올리게 할 만한 게임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만화책 스토리라인을 그대로 재구성했다는 이 게임의 홍보 타이틀과 트레일러 영상은 작은 기대를 품게 했다.



우선 장점부터 이야기해보면, 역시 기본 스토리에 충실하려 노력했다. 게임 중간 재생되는 컷신들은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그 이상을 떠올릴 정도로 좋은 퀄리티를 보여준다. 다만 더빙 판에 익숙해져 있던 내 기억에 손오공/손오반의 목소리가 다소 유치하게 들렸지만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내 곧 익숙해진다.

프리저 전까지 원작에 충분히 충실했던 스토리라인이 셀전부터 몇 가지 생략이 된다. 초사이어인 2로 변한 손오반이 거만을 떨다 셀에게 자폭할 틈을 주는 장면은 엉뚱하게 생략돼버렸다. 싸움 좀 한다는 캐릭터들이 모두 초사이어인으로 변신 가능한 상태의 파워 인플레에서 셀은 손오공 조차 이길 수 없는 압도적인 빌런으로 느껴져야 하는데 위 내용에 대한 생략으로 셀전 스토리의 긴장감이 팍 식어버린다. 이는 마인부우 전에서도 반복되는데, 중간 악만 남게 되는 꼬마 부우가 되는 과정을 들어내 버림으로써 추억을 구입한 플레이어를 아쉽게 만든다.



전투 방식은 역동적이지만 쉽게 질리게 설계되어 있다. 각 캐릭터마다 고유 스킬을 가지고 있지만 하다 보면 돌려 막기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단순한 콤보 반복과 스킬 연계는 그냥 컷씬을 보기 위한 숙제가 돼버린다. 하지만 동일한 IP를 가진 게임들과 비교해서 개선된 그래픽과 부드러운 동작들은 실제 게임 속 전투를 직접 재구성한다는 느낌이 들도록 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단, 게임 초중반까지만)

플레이할 수 있는 캐릭터들이 한정적이지만, 만화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를 게임에 포함시켰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각 NPC로 활약하는 캐릭터와 플레이블 캐릭터들의 자잘한 대화는 소소한 재미를 준다.



이제 단점을 짚어보자. 빈약한 사이드 퀘는 이 게임을 구리게 만드는 또 다른 요소이다. 로봇들이나 프리저 잔당과 싸우기, 뜬금없는 재료 구하기, 갑자기 대련 요청하기 등의 퀘스트는 플레이어에게 게임의 자유도를 포기하게 만든다. 캐릭터 엠블럼을 모아 커뮤니티 보드를 만든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그 엠블럼을 모으기 위한 사이드퀘에 신경을 전혀 안 쓴 듯이 귀찮다는 느낌이 팍팍 드는 퀄리티의 무한 반복 퀘는 게임 전체를 평가 절하할만한 빌미를 남긴다.



요즘 게이머들은 GTA, 위쳐 3, 레데리 2, 갓 오브 워 4와 같은 수작들에 익숙해져서 인지, 이제는 웬만한 게임에 만족하지 못한다. 출시되는 게임들은 엄한 기준으로 평가받는다. ‘드래곤볼 카카로트’ 또한 객관적으로 보면 차고 넘치는 그저 그런 게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은 할만한 가치가 있다. 어릴 적 드래곤볼, 손오공과의 추억을 가진 사람이라면, 게임성을 차치하고서라도 본 스토리 라인만 플레이하는 것만으로 약 5만원 가량의 돈을 지불할만하다. 흔히 말하는 ‘추억팔이’가 실제 돈이 된다는 점이 씁쓸하지만 그 추억을 지닌 사람에게 즐거움을,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해 준다는 점은 충분히 긍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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